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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하지 않으면, ,,,.

우울하기 때문에(15)

by 김파랑

아부를 하지 않는다.

아부를 떨지 못한다.

아부한다...

아부라는 말은 아주 먼 옛날부터 부정적인 의미를 쓰였다.



아부한다... 아첨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둘 다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뜻한다. 설명해 무엇하는가. 크고 작은 조직에서 누구나 겪고 보는 일이 아닌가.


아마도 이 말은 엄청난 부정의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아부 떨다, 아첨하는 놈...처럼 어미나 말미가 꼭 이런 식이다.

나는 그 부정적인 의미의 그 말을, 그 행동을 싫어한다. 그리고 내 남편도 싫어한다. 싫어하는데 그치지 않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깟것 말한마디를 못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사회생활을 못한다.



가끔은 생각했다. 내가 정의롭기보다는 못해서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과하지 않는 선에서 이 행위를 적당히 하는 사람을 존경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남의 기분을 맞출 수 있는, 자기 조절능력이 대단한 사람 같아 보인다.

허나 이런 마음이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조직에서 나온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고 그 조직 구성원이었을 때의 기분은 잊히질 않는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이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보곤 오장육부가 울렁울렁거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때, 나의 바로 윗사람이 상사에게 엄청난 아부를 떨고 아첨을 부리는 자였다. 내가 그런 자를 싫어하고 또 남의 비위를 조금도 맞추지 못하는 비사회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쩔 때는 다른 이처럼 해보려 노력도 했다. 하지만 그 끝은 '그러느니 홀로 가난 속에서 고독하게 살자'라는 각오만 되뇌는 나란 인간을 마주해야 하는 것뿐이었다.

젊을 때는 그 딱딱함을 안쓰럽게 봐주는 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딱딱하게 구는 행동은 점점 미움만 사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랬다.

그리고 결국 그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오게 되었다.




남편이라는 울타리로 들어가 정말 행복하게 사는 나날이었다.

회사만 아니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잔소리가 하고 싶어질 때면 나를 그 사회로부터 구해준 이라는 고마움으로 바꾸어 생각했다.


문제는 나에게 행복이라는 울타리를 준 남편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이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어깨에 가장이라는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매일 그 속으로 들어간다.

아부하지 못하고 아첨하지 못하며 소처럼 일하고는 부당한 대우를 받기 일쑤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려 칼을 휘두르는 이에게 클릭 한 번으로 평가를 당한다.

그래서 매번 낙담하고 불타오르는 감정에 오장육부가 녹아내릴 지경이다.


혀 한번 날름하고 눈짓 한번 찡끗하는게 머 그리 어렵다고...

그 한 번이면 1년을 편안하게 보낼 것을 그 한 번을 하지 못하고 그이가 파놓은 함정에 그저 빠져버리기만 한다. 경쟁사회에서 그 구덩이에 빠지면 나오느라 세월 보내는 사이 경쟁자들은 저 앞에 가게 될 것이다. 분명 제일 앞서서 가장 부지런히 밭을 갈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한자리만 계속 삽질을 한 꼴이 되어버린다.


남편일이고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알랑알랑 한번 해~! "라고 말이다.

가족이니까 우리를 위해서? 아니 그저 본인이 감당을 못하니까 말이다. 부당함을 참고 분노를 삼키고 차갑게 있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너무 잘 알아서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몇 날 며칠을 술과 함께 살아야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도 나는 그깟 혀놀림 한번을 못 해 술을 들이부어야 하는 그 심정을 알기에 그저 술독에 빠진 이 남자를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도록 오랜 시간 위에서 손을 뻗고 기다려야만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단한 일이다.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견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우울이라는 커다란 구멍으로 서로를 잡아당길 것이다. 그리고는 아이들까지 그 속으로 잡아당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꿋꿋하게 버텨야만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묵묵히 튼튼하게 옆에 서있어 줄 나무가 될 준비를 해야만 한다.


아첨하지 않으면 이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오늘도 나는 절대로 우울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한다.

굳고 무거운 혀를 가지고 이토록 무서운 세상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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