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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 Jun 14. 2023

어느 선배

'동지 환영합니다.'

'노조 가입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잘해봐요.'

'가입 전까지는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다. 이해해 줘. 축하해.'


노조 가입서를 작성하고 단체 채팅방에 초대받았을 때 그곳에 있던 동료들이 나에게 보낸 

문자들을 아직 기억한다. 올바른 가치와 이상을 가지고 구태를 혁신하려는 세력의 일원이 됐다는 설렘과 동시에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나에게 닥쳐올까?' 하는 긴장감도 드는 순간이었다. 


나는 노조 출범 약 7개월 후에야 가입했다. 출범 현장을 지켜보지 못했다.

나는 재입사자였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으로 8개월 동안 외도(?)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다시 일할 수 있게 도와주고 받아 준 동료들에게 고마웠다.


이제야 말하지만 노조의 필요성은 내가 갓 언론사에 몸 담았을 때부터 주창했던 바이다.

인턴 신분으로 사회부에 배속된 후 어느 날이었다. 

동인천 삼치골목에서 편집부(편집기자)들과의 늦은 저녁 자리가 있었다. 


나는 당시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다. 맞은편에 앉은 편집기자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불킥'을 할 질문도 했다. 


"CTS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편집기자 입지가 많이 좁아질 것으로 생각되는데, 선배께서는 앞으로 신문사 내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하실 생각이세요?"

"컴퓨터가 편집을 다 한다고는 해도 취재원의 입장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취재기자는 좀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은데, 선배께서는 취재기자로 넘어오실 생각은 없으세요?"


하지 못 할 질문은 아니었지만 소위 말하는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에 맞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갓 들어온 인턴 후배의 질문에 선배는 대답했다. 

"아니 뭔 편집기자 세미나에서 나올법한 질문을.... 갑자기..."


그날. 상아색 상의에 연청바지를 입은 또 다른 편집기자 선배 한 분이 내 옆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경상지역 언론사에서 이직하셨고, 지금은 회사를 떠나신 그 선배는 술을 한 잔 따라 주시면서 나에게 물었다.

"우 기자는 회사에서 뭘 하고 싶어요? 아니면 회사에 뭐 말하고 싶은 거 있어요?"

편집기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힘든 취재기자였던 탓에 나는 물어봐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 


"저는 사회부 사건기자가 기자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도 많이 다니고 사람들 많이 만나서 좋은 기사 쓰고 단독도 해서 기자상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노조가 없는 것 같은데 임단협도 하고 직원 복지 향상하려면 노조를 빨리 설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뎅말고 점심시간 만들어서 당당하게 밥 먹으러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큰 소리로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대답이 끝나고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다른 선배들은 각자 이야기를 하고 잔을 부딪히며 화제를 돌렸다.

당시에 나는 일반기업들과 달리 힘을 견제.감시하고 정의 사회 구현을 추구한다는 언론 사명에 비춰봤을 때

조직의 속사정과 입장이 다를지언정 대의적 측면에서 노조의 정당성과 그 필요성에 대해 묵시적 합의가 끝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천진한 생각이었다. 


그날 회식자리에는 훗날 경영진의 주구가 돼 노조 탄압의 선봉에 섰던 간부들이 있었다.

노조와 뜻을 달리했던, 지금은 '어공'이 된 선배도 있었고.


회식이 끝나고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하신다던 그 선배와 또 다른 선배 한 분을 바래다줬다. 차 안에서 그 선배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기자생활 하는 동안 직원들 앞에서 노조가 필요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 우 기자가 처음이에요. 대단해요. 보통 그런 이야기 못 꺼내거든요. 나중에 노조활동 할 생각 있어요? 노조활동하면 진짜 잘할 거 같아요. 힘내고요."    


내가 재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배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 선배와 있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그 선배와의 깊은 추억은 없다. 

퇴사한 이후에도 간간히 연락해 안부를 물었지만, 휴대전화를 바꾸며 전화번호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잊혀버렸다.  


그때 그 선배와 나눈 이야기처럼

후에 나는 정말 노조에 가입했고, 조합원으로 또 간부로 지내며 많은 일들을 겪었다.

할 말 못 할 말 해가며 잘 이겨내고 버텨냈다. 긴 시간이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난 이곳에서 홀로 새로운 장(章)을 맞이한다.

떠난 그 선배의 근황이 궁금하다.

전화해서 잘 지내느냐고 그때 그렇게 말했던 거 기억하느냐고

나름대로 잘해왔다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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