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날 부른다

내 이름은 한입만

by 빛방울

"자기야, 라면 먹을래?"

"아니, 괜찮아."


라면 물이 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빠샤삭 라면봉지를 통째로 '툭' 뽀개서 갈라진 틈 사이로 라면을 꺼내어 집어넣는다. 힐긋거리며 거실에서 주방 쪽을 바라본다. 수프가 끓는 물 위로 흩어지고 퍼지는 풍경이 자꾸 그려진다. 코를 실룩거리게 하는 라면 수프의 냄새. 뇌가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 라면의 맛에 내 입안은 어느새 침이 생기기 시작한다. '계란 탁, 파 송송' 넣는 소리가 들린다. 라면을 끓이는 남편의 옆모습 배경으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라면 향기. 라면 냄새는 나를 식탁 앞으로 불러 앉힌다.


"다 끓였어?"

식탁에 냄비 받침을 고이 올려놓고, 수저를 세팅해둔다. 숟가락, 젓가락 마주 보며 다정하게 두 세트.

"자기 안 먹는다며?"

"아, 난 한 입만 먹을게."

처음엔 남편도 내가 '한 입만'했을 때 젓가락을 순순히 내어주었다. 숟가락에 국물 한 수저 담아 라면 돌돌 올려 한 입 맛있게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맛있지? 젓가락 가져와, 같이 먹자!"

이제 남편은 나의 정체를 알아채버렸다. 한 입만이 두 입이 되고 세 입이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

우리 엄마가 말씀하셨다. 한번만 주면 정 없다고. "엄마, 한 숟가락만 더 주세요!"라고 해도 밥을 한 숟가락만 준 적이 없으시다. 두 번, 세 번 더 떠주신다. 어떤 음식이든 한 개만 주시는 법도 없다. 내가 한 입만 먹는다고 한 입이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엄마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내 이름은 어느새 한입만에서 두입만으로, 두입만에서 세입만으로 개명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먹을 거면 미리 얘기해야 넉넉하게 하지."

"에이 그냥 무슨 맛인가 맛만 보는 먹는 건데 뭐."

젓가락을 뺏긴 남편은 망연자실 나를 보고 헛웃음을 짓는다.


이제 남편은 나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는 먹는다는 양의 1.5~2배가 넘게 준비한다.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겠지. 충분하면 맛이 덜하다. 음식이 넉넉하기보다 모자란 듯해야 아쉽고 맛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한입만'하고 달려들 것이다. 감칠맛 나게 뺏어먹는 맛을 놓칠 수 없지.



얼마 전 여행을 가서 물놀이를 마친 아이들과 남편은 배가 고팠는지 컵라면을 하니씩 가져온다.

'후후, 후루룩!'

이젠 젓가락도 준비하지 않고 묻지도 않은 채, 국물을 후루룩 마신다. 남편의 라면도 한 젓가락, 아들의 라면은 패스, 딸의 라면도 한 젓가락. 라면 하나 다 먹기는 부담스럽고, 한 그릇에서 고작 한입만 먹었으니 별차이 없지 않은가. 대신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내가 먹을 타임인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먹고 난 딸의 라면 용기에서 한 젓가락을 가져온다. 국물을 먹은 딸은 입안이 뜨겁고 매우니 물을 마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날름 한 입 호로록. 아들은 워낙 양이 많으니 동생에게서 몇 젓가락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뺏어 먹을 수가 없지. 남편은 아무 때나 달라고 손을 내밀 수 있다. 만만하니.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 듯, 적응하고 스며들며 사람이든 상황이든 받아들여진다. 자연스럽게.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젓가락을 내어주는 내 사람들. 편하니 할 수 있는 나의 만행.


오늘도 '한입만씨'는 냄비 앞에 젓가락을 들고 뻔뻔하게 서있는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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