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상담1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방울 May 21. 2024

엄마가 만날 울어요

1학년 고민 상담소

아이들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

통합 교과 사람들을 보면 [고민을 들어 봐요]라는 주제로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활동이다. 교과서에는 고민카드를 만들어 모둠 친구들과 나누거나 우리 반 고민 게시판에 고민을 올리는 활동 예시가  있다.


아이들 저마다의 고민을 카드에 적고 고민을 받아 들었다. 8살 꼬맹이 치고는 고민이 꽤나 묵직한데? 물론 바람처럼 피식 웃음이 나오는 깃털만큼 가벼운 고민도 들어있지만 말이다.


'모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군. 게시판에 붙여도 해결책을 나누기엔 턱 없이 부족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 상담소를 열기로 했다.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상담사들이 하나씩 사연을 소개해주고 라디오 시청자들의 다양한 해결책을 들어보기로 했다. 진행을 맡은 아이들은 쑥스러운 듯했지만 교실 앞에 따로 놓여진 책상에서 라디오 진행자라는 말에도 그저 진지하고 떨리는 듯 활동에 임했다.




#1. 첫 번째 사연

안녕하십니까? 별처럼 빛나는 꿈을 담은 아이들의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첫 번째 사연을 소개해주실 상담사 이하비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정희의 사연입니다. <아빠의 방귀 냄새가 너무 지독해요.>"

아이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깔깔거리며 웃는다. 방귀소리만 들어도 웃겨 죽는 1학년.

"저요, 저요! 아빠 똥꼬를 테이프로 붙여요!"

"아빠가 방귀를 뀌자마자 문을 닫고 도망을 가면 되잖아요"

"제발 건강한 음식만 먹으라고 해요."

"아빠한테 화장실 가서 방귀 그만 뀌고 똥을 싸라고 하면 방귀를 안 뀔 거 같아요."


듣는 내내 난리가 났다. 책상을 두드리고, 빠진 이를 드러내고 헤헤 거린다. 아이들의 아이디어는 차고 넘쳤다. 상담 의뢰인 정희는 방귀 뀌는 아빠에게서 멀리 도망가는 게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귀 냄새가 고약하면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는 걸 알고 있는 것도 신기했고, 엄마의 잔소리처럼 화장실 가서 똥을 좀 누라고 재촉하는 표정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사연만으로도 아이들은 코를 감싸쥐었다.



#2. 두 번째 사연

"혜솔이의 사연입니다. <태권도에서 띠를 못 매서 고민이에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계속 계속하다 보면 맬 수 있게 돼요. 저도 처음엔 못했는데 할 수 있어요."

"혜솔이가 못 매면 제가 매줄게요."

어머나 이 서윗한 남자는 누구인가. 우리 학교 가장 말썽꾸러기 서희 아닌가. 상담사로 나와서 오늘만큼은 얼마나 진지하고 의젓한 지. 같은 태권도를 다니는 친구라면서 자기가 혜솔이를 위해 띠를 맬 수 있게 도와준단다. 멋진 친구일세. 심쿵!

"는 혜솔이한테 매는 방법 가르쳐줄 거예요."

서희에게 질세라 성준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의지를 보여준다.

혜솔이 혼자 하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두 번째 사연도 무사히 통과.



#3. 세 번째 사연

"아시드의 사연입니다. <엄마가 맨날 울어요.>"

아, 듣자마자 마음이 물결에 출렁거렸다. 엄마가 울다니, 아이도 아니고 엄마가. 눈물이 핑 돌았다.

"아시드, 엄마가 왜 우시는 거 같아요?"

"나도 몰라. 그냥 밥 하고 울어요. 애기 울 때도 울어요."


아이들은 그 마음을 알까? 아시드의 사연을 듣고 아이들은 저마다 해결책을 모색하고 발표했다.

"아시드가 엄마가 울 때 웃긴 표정 지어서 웃겨줘요."

"아시드가 엄마를 데리고 같이 놀이동산에 가요!"

"가족들하고 여행하고 즐겁게 시간 보내면 되잖아요."

"엄마가 하는 일을 아시드가 도와줘요."


아시드의 아빠는 한국에 일하러 온 지 10년이 넘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2년 전 온 가족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 아시드의 아빠는 한국말을 곧잘 하시지만 학교에서 보내는 안내메시지나 학급방에서 보내드리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교실로 찾아오셔서 물어보신다. 아시드의 엄마는 나와 직접 소통을 하지는 않는다.  입학식 때 뵙고 다시 만난 적이 거의 없다. 구글 번역기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소통에 한계가 있으니 서로 답답한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떨까?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주변엔 아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커뮤니티가 소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어 간혹 그들끼리 만나겠지만 고향을 떠나온 마음을 달래기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다행히 교육청에는 다문화 자녀들의 적응을 돕는 지원 프로그램이 많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신청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오히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며 적응해 가지만 가장 힘든 사람은 아이들의 부모가 아닐까 싶다. 만약에 타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야 한다면 막막한 이 마음을 어찌하랴. 말은 안 통하고, 삶이 윤택하지도 않다. 돌봐야 할 아이들은 많아 힘에 부칠 것이다.


아시드 엄마가 흘리는 눈물이 어떤 건지 알 것만 같아 마음이 자꾸만 울컥거린다. 나도 엄마니까. 생각만해도 안쓰럽기만 하다.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어쩌면 손 내미는 방법조차 모를. 수도 있다. 나는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까. 아이들이 열심히 해결책을 발표하는 동안 아시드 눈에 엄마의 우는 모습이 자꾸만 비친다.



#4. 네 번째 사연


혜나의 사연입니다. <엄마가 술만 마시면 아빠랑 싸워요!>


"집에 있는 술을 다 숨기면 돼요."

"아, 밖에서 마시고 오는데 내가 어떡하냐고?" 혜나는 난감한 듯 친구들에게 덧붙인다.

"그럼 엄마를 밖에도 못 나가게 해요. 그러면 술을 못 마시잖아요."

"엄마가 스트레스 쌓여서 먹는 건데 내가 어떻게 막아? 술 마시고 오면 비틀거리다가 쓰러지고, 아빠한테 소리 지르고. 아휴."

혜나는 정말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린 딸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이 아시면 술을 덜 마실 텐데 이를 어쩌나. 아이들의 고민카드를 모두 찍어서 학급 앨범방에 올려볼까. 혹여나 보시고 찔리는 마음에 술 마시고 싸우는 일이 덜하진 않을까. 술처럼 쓰디쓴 마음을 해장하기 어렵다.


아이들을 대하면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 깊고 크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이들의 사랑도 아이의 그릇 이상으로 가득 차오른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아이들의 고민은 생각보다 깊다. 천진한 아이들에게 가벼운 말소리 안에 한숨도 들어있고 아이들에겐 들고 있기 힘든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뛰어놀며 어느새 고민은 땀방울에 담겨 떨어져 나가겠지만.

동생이 졸졸 쫓아와요
게임을 밤새 하고 싶어요
번개에 맞을까 봐 무서워요
잠잘 시건에 잠이 안 와요
학교에 매일 오고 싶어요, 어쩌죠?
강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우리 반 아이들의 고민들. 아이들은 진심으로 고민이 해결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나눴다.


고민상담소에서 내내 마음에 남는 건 아시드 엄마의 눈물이다. 밥 하다가도 눈물 지을 아시드 엄마. 문득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 하늘을 바라보며 두고 온 가족들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눈물이 아프다.


우리 아이들의 고민,  지혜를 함께 나눠주셔도 좋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상담중)중이 제 머리 못 깎습니다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