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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방울 Dec 10. 2024

고등학교 어디 갈 건데?

비평준화 학교

가까운 데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무슨 생각으로 나는 고3까지 내리 3년을 이사도 안 가고 전학도 안 갔을까? 매일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40분 넘게 버스를 타고 10분을 걸어 다녔을까? 그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그 고생을 자처했다.


책가방은 내 몸무게의 반은 족히 되었을 거다. 불안감이 높아 교과서를 바리바리 가방에 넣고 커다란 가방에 도시락 2~3개를 합하면 거의 피난 수준이지. 키 작은 원인이 거기에 있었나? 하지만 엄마 아빠 키를 보면 가방 탓은 아니다. 어쨌든 고등학생의 가방 무게는 가히 군장 같다.


정작 다닐 땐 잘 몰랐다. 상황이 그랬으니 받아들였고 그땐 어렸으니까. 잠이 부족하고 이른 아침 시내버스를 탈 때 문 앞에 꽉 끼어 가느라 힘든 거 말고는. 가방이 무거워 힘든 거 말고는. 어쩌다 차를 놓쳐 지각해서 벌 받는 거 말고는. 나열하고 보니 고생했네, 빛방울 뚝뚝.


명문고도 아니고 친구와 다니던 학교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친구를 떠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부모님은 나를 설득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러겠다고 하니 그저 들어주셨을 뿐이다.



그렇게 보냈던 나의 장거리 고등학교 시절. 아, 벌써 내 아들이 고입을 앞두고 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이 내 눈앞에 있다. 나의 아이는 가까운 곳에 가겠구나 했다. 내내 중학교도 걸어서, 고등학교도 걸어서 그렇게 다니겠구나 했다.


아들의 친한 친구가 학교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그 근처 C학교를 가겠다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거니? 가까운 게 최고야." 했더니,

"아뇨, 친구 피해 강남 가는 건데요?" 하는 거다.

"무슨 소리야?"

"울 학교 애들 거의 대부분이 다 가는 학교 싫어요."

나는 듣고 깜짝 놀랐다. 아이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말하는 게 느껴졌다. 예전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중학교에서 대거 고등학교로 옮겨 가기에 고등학교에 간다 한들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더 이상 아들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가까운 게 최고인데..."라는 말로 아들을 설득할 힘을 잃었다.


1주가 지나자, 집에서 차로 가면 얼마되지 않지만 버스를 타면 30분 거리에 있는 B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고 그렇게 고민을 하더니, 며칠 후에는 차라리  A학교를 갈까?" 하는 거다.  집에서 1시간 넘게 떨어진 A고등학교인데 그때까지 A학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였다. 찾아보니 내신이 좋은 아이들이 경기 지역에서 오는 학교 중 하나였다. 경기도 일부는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이라 고등학교를 선택하여 학교를 간다. 그런데 그냥 해보는 말인가 했지만 아이는 집 주변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A 학교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 먼저 기숙사가 있는 먼 학교를 이야기했을 때 적잖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아들의 생각에 반가웠다.


나와 남편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보낼 생각을 하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잘하는 것일까? 학원도 안 다녀보고 공부를 제대로 탄탄히 해보지도 못한 아이가 열심히 하는 성적 좋은 아이들이 몰리는 곳에 가서 제대로 버틸 수 있을까? 괜히 내신만 상대적으로 낮게 나와서 자존감만 떨어지는 건 아닐까? 대학에 불리한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들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지금 하려는 선택이 아들에게 결코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분위기로 휩쓸려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여러 지역에서 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어렵게 공부하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결론이었다. 대학을 잘 가고 못 가고를 떠나서 일반고와 다른 분위기에서 기숙 생활도 해보고, 낯선 환경에서 자신을 좀 더 확장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3년의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지만 어떤 결과가 있든 아이에게 긴 인생을 놓고 보았을 때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지 않겠냐고.



내내 집 근처 학교를 염두하고 상담도 그렇게 해 온 터라서 담임 선생님은 놀란 듯 전화를 해오셨다.


"제가 담임으로서 우리 초록이를 그 학교로 보내는 것이 맞는가 싶어요. 동네에서 다니면 1등급을 받기가 쉬울 텐데 그 학교에 가면 어려울 게 당연한데 고민이 많이 돼요, 어머님."


"네, 선생님!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부모로서 초록이에게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 주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초록이가 그 학교를 가보겠다고 했을 때 놀랐지만 아이가 도전해 보는 기회를 응원해주고 싶어요. 여전히 걱정도 많고 불안감이 있지만 실패하면 어떤가요? 초록이가 자신의 위치도 깨닫고 열심히 하는 속에서 치열하게 노력도 해보고, 좌절도 하고 때론 성취감을 느끼면서 성장할 수 있게 되길 바래요. 단기적으로 대학을 목표로 두면 그  학교에 보내면 안 되지만, 장기적으로 길게 인생을 놓고 보면 초록이에게 오히며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믿어요."

 


가서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실패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 또한 아이가 배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격해서 다니게 된다면 초록이가 잘할 거라고 믿지만 힘든 순간은 당연히 올 것이다. 우리는 부모로서 내내 도닥이며 응원해 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에 학교 생활이 정말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버틸 수 없겠다고 한다면 그때는 다시 돌아와도 괜찮다고 여겨졌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고민하지 않으리라. 그저 가능성을 열어두고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선생님은 처음과 달리 내 이야기에 내내 공감해 주시며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맞아요, 어머님! 어머님 말씀이 정말 맞아요. 길게 보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학교에서 초록이가 열심히 하니까 그곳에 가서도 힘들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부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다양한 활동에도 초록이의 잠재력을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일단 A 학교를 선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전개가 펼쳐질지 상상하지 못했다. 아들이 학교에서는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지만 학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는 내내 게임에 빠져서 사는 우리 아들이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간다고 한다. 사춘기가 절정을 치닫던 아들과 대치하며 싸우다가 "이 녀석, 기숙사 있는 학교나 가!" 하고 홧김에 외쳤던 말이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어제는 남편이 잠자리에서 "우리 아들이 많이 컸어."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밤새 잠을 설쳤다고 한다. 주말에만 볼지도 모르는 아들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오늘은 운동하고 오는 길에 "나 어떡하지?" 한다.

초록이 군대 갈 때 진짜 울 것 같다면서. 나보다 남편이 '갬성'에 젖어 벌써 떨어져 지낼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


"생각해 봐라. 이제 우리 함께 살아갈 시간이 별로 없어."

"그렇지."

"고등학생 되면 3년, 그리고 대학 갔다가 군대도 다녀오면 어느새 어른 되어서 장가가고 떠나는 거야."

"......"


고입 선택을 앞두고 아들에게 여전히 부담감과 걱정이 느껴진다. 

"아, 가서 내신 망하면 어쩌지? 그냥 동네로 갈까?"


아들의 이야기에 속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아들에게서 불안감이 느껴지니 나도 덩달아 불안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빠져나갔다. 잘하는 선택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 선택이 최선의 길로 갈 수 있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원서를 쓰고 도장 찍고 합격이 되기 전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그저 아들의 선택을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도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들은 무언가를 향한 용기 있는 걸음을 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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