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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Nov 12. 2023

무의식의 흐름

어느새 크리스마스 재즈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걸치기 시작했다. 트리를 닮은 녹색과 앵두의 빨간색을 적절히 섞은 두툼한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거리를 나선다. 포근한 감촉에 기분이 좋아진다. 아주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겨울만이 가져다주는 감성과 낭만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애정한다. 11월 중순 즈음 듣는 크리스마스 노래라던가, 막 꺼내 입은 니트의 감촉, 털이 복슬복슬한 양말, 어묵탕에 소주 한 잔 같은 것들. 추위는 싫지만, 계절이 주는 느낌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11월 중순이라 올해를 완전히 정리하기에는 이른 느낌이 있다. 나는 아껴두었다가 12월에 23년을 정리하는 글을 써 볼 작정이다. 지금 그 글을 쓰면 12월은 왠지 의미 없는 한 달로 느껴질 것 같아서다. 23년은 정말이지 기복이 심한 해였다. 고요하고 차분한 시간들도 많았지만, 상처받고 힘든 시간들도 분명 있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기도 했고. 정말이지 삶이 재미없을 수가 없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데, 23년은 특히 내게 의문을 가장 많이 일으켜 준 한 해였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의 23년은 어떠했을까. 무조건 평온하기만 한, 무조건 불행하기만 했던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좋은 일은 하루에 몇 가지씩 있고, 좋지 않다고 여기는 일보다 훨씬 더 잦은 횟수로 일어나지만 우리가 자각하는 건 부정적인 일들이다. 부정적인 일에 시선을 집중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하루를 세밀하게 관찰해 보면 감사할 일들이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애써 회피한다. 습관이 되어버린 이도 적지 않다. 그들 중 한 명은 나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언제나 돌아보려 애쓰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돌아보고, 나를 돌본다고 해도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검고 어두운 면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빛과 어둠을 적절히 지닌 자가 있는 반면, 어둠이 한 인간을 완전히 잠식시킨 경우도 있고 반대로 빛이 어둠을 완전히 장악한 사람도 더러 있다. 후자는 아주 소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후자들로만 이루어진 세계였다면,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남아있지 않거나, 인간으로서 존재 의미가 더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원래 철학을 무시하는 한 인간이었다. 철학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라고 치부했고, 감히 판단했다. 철학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나 철학만큼 내게 깊이 사유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준 무엇은 없었던 것 같다. 종교도, 그 무엇도 내게 완전한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철학적인 사고는 나를 우물 안 개구리에서 우물 밖까지 이끌어내 주었다. 여전히 나는 우물 밖에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개구리 한 마리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철학적 사고는 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한 철학적 사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의 철학적 사고만이 존재할 뿐. 나는 철학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지 않으며 자유로운 점. 그리고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점. 그런 점이 자꾸만 나를 철학으로 이끈다.

23년을 떠올리며 갑자기 철학적 사고까지의 흐름까지 간 나라는 사람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한 인간을 단 한 부분도 빠짐없이 알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까? 영겁의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만큼 복잡하고, 신비롭고, 수수께끼에 쌓여있는 존재는 없으므로. 여전히 한 인간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신비도 조금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정신적인 부분과 그 외의 것들까지 포함된다면, 한 인간에 관해 알 수 있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여전히 나는 자기 자신을 찾지 못했다. 이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선주'라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진정한 자기 자신과 삶의 의미에 관해 알아채는 날이 올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고, 명상을 해도 티끌만큼도 찾아내지 못한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다른 생각으로, 조금 더 나은 생각을 한다는 걸 인식하는 일은 꽤 즐겁고 유쾌하다. 그러나 너무 자만해서는 안된다. 가장 많이 알고 있을 때가 가장 모르는 것과도 같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이 과정을 그저 즐기기로 했다. 내가 무언가 알려고 집착하고, 애쓸수록 그것은 더 멀어지기 마련이므로. 머리가 점점 무겁다. 글은 이쯤에서 그만 쓰도록 해야겠다. 이럴 때는 요가로 몸을 이완해주어야만 한다. 나는 너무 많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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