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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비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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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Jan 02. 2024

나비인간2. (단편소설)

정확히 한 달 뒤, 그녀들은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엔 타는 기차였다. 

 ‘서울역. 고향 다녀온 지도 한참이네.’

 지온은 명절에도 내려가지 않고 자신의 자취방에 남아 늘 무언가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기 바빴다. 지금까지의 생활을 돌아보니 한순간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참에 즐겁게 놀다 오지 뭐.’

 지온은 귀에 줄 이어폰을 꽂았다. 이어폰에서는 제아, 이영현의 ‘하모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래된 노래였지만, 이 노래는 무언가 그녀의 마음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과거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생각만 하는 그녀였지만, 노래를 들으면 그녀 또한 감상에 젖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리는 대전에서 차를 끌고 오기로 했고, 수은은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셋의 카톡방은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설레는 마음은 셋 다 마찬가지인 듯했다. 1박 2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으나, 그만큼 더 아쉽고 즐거울 것이란 생각에 지온은 마음이 들떴다. 

 오전 11시. 새벽부터 달려 먼저 도착한 유리가 역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지온! 여기야 여기!”

 지온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힘차게 흔들었고, 잇몸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본 유리는 전보다 더 말라 있었고, 단발이었던 머리는 허리춤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하고 맑은 눈빛은 그대로였다. 지온은 3년 넘게 보지 못한 친구가 어색할까 걱정했으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둘 사이에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유리는 자신의 차를 대놓은 곳으로 지온을 안내했다. 작지만 실속있는 크림색 소형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차 바꿨어?”

 “아. 예전 차는 남편이 끌고 다니거나 애들 데리고 다닐 때 쓰기로 했고, 이건 내가 출퇴근용으로 따로 마련한 거. 차가 두 대니까 어휴, 말도 마. 보험료에 기름값에 내가 미쳤구나 싶더라. 그래도 이제 없으면 더 힘들걸 아니까 아주 열심히! 죽어라 일하고 있어. 쿡쿡.”

 “차 너무 귀엽고 예쁘다. 아. 나도 한 대 장만할까? 나이 들어서 아침마다 사람들 사이에 껴서 다니려니까 너무 힘들다. 지하철 아주 지겨워 죽겠어.”

 지온이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나는 지하철 타더라도 서울 살고 싶다. 친구야. 그런데 수은인? 아직 멀었나?”

 유리는 말함과 동시에 핸드폰을 내려다보았고, 금방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온 또한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고, 수은이 10분 정도 뒤 도착 예정이라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둘은 느닷없이 불어온 찬바람에 몸을 떨었고, 얼른 차 안으로 몸을 피했다. 수은은 정확히 10분 뒤 도착했고, 양손에는 짐과 함께 커피 세 개가 아슬아슬하게 들려 있었다. 유리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수은! 춥지? 얼른 타! 아니 짐도 무거운데 뭘 또 커피까지 사 왔어. 그냥 오지!”

 “너네도 나 기다린다고 고생했는데 이게 뭐라고. 이지온! 완전 오랜만이네?”

 “한수은. 너 뭐냐? 왜 이렇게 예뻐진 겨? 비법이 뭐냐? 그 풀메이크업은 또 뭐고? 아. 나도 힘 좀 주고 올 걸 그랬네. 한수은한테 완전 밀렸는데?”

 지온과 수은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리는 수은의 짐을 싣고, 각자의 손에 커피를 쥐여주었다. 그리고는 운전석에 타 야무지게 안전벨트를 맸다.

 “다들 안전벨트 잘 맸지? 자. 이제 출발한다!”

 “유리 기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려요. 김유리 기사님. 베스트 드라이버 김! 유! 리!”

 “손님들. 운잘러가 뭔지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그게 뭐야?”

 “운전 잘하는 사람.”

 “엥? 별 걸 다 줄여 진짜.”

 지온, 수은, 유리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지온은 마치 자신이 학창시절로 돌아가 교복을 입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수은과 유리를 만나자 한순간에 과거로 되돌아 간 것만 같았다. 외모만 달라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음을 느끼자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자신을 감싸는 것 같았다.     

 셋은 경주 곳곳을 누비며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각자의 핸드폰 앨범에는 수백 장이 넘는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들은 배가 터질 정도로 먹고 또 먹었다. 온갖 디저트까지 섭렵하고 커피까지 마셔준 후에야 먹는 것을 멈추었다. 셋 다 바지 윗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 진짜 너무 배부르다. 근데 이제 숙소가서 바비큐 먹어야지. 안 그래? 큭큭.”

 수은이 말했다.

 “바베큐. 무조건이지.”

 “그럼 그럼. 오늘의 메인 숙소로 갑니다.”

 유리의 차가 부르릉- 하며 출발을 알리는 소리를 냈다. 유리의 옆에 지온이 탔고, 수은은 뒷좌석에 앉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앉았다. 수은은 피곤했는지 어느새 곯아떨어졌고, 지온도 눈이 감겼으나 운전하는 유리 옆에서 자기가 미안했다. 갑자기 유리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온아. 미안한데 스피커 폰으로 좀 눌러줘. 응응. 고마워.”

 지온은 스피커 모양을 눌렀고, 이내 우렁찬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엄마! 재밌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뭐해요?”

 “서아야~ 엄마 운전 중이야. 저녁은? 뭐 먹었어요?”

 “#$!##$^#*&@*!(!@)!()!!”

 “서야야! 아빠 좀 바꿔주세요~”

 “툭. 덜커덕. 투둑. 탁. 어, 자기야. 여행 재밌게 잘하고 있어? 서아랑 이준이랑 지금 저녁 먹으려는데 엄마 보고 싶다 해서 전화했지. 노는 데 방해해서 미안하네.”

 “아니야. 방해는 무슨. 이준이는 안 울고 잘 있어?”

 “이준이 아까는 계속 울더니 제풀에 지쳐서 좀 자다가 배고픈지 지금 밥 잘 먹네. 걱정하지마요. 지금은 괜찮아.”

 순간 유리의 눈빛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변했으나, 이내 다시 활기를 찾았다. 정신없던 전화가 끊기고 차 안은 수은이 얕게 코 고는 소리만이 들렸다. 


 숙소에 도착한 셋은 숲속에 싸인 숙소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숙소는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주인은 노부부 둘이었는데 두 분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할 뿐 허리가 꼿꼿하고 힘찬 걸음으로 건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셋은 순서대로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아. 온몸의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아. 어우. 개운해.”

 수은이 말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씻고 싶었던지. 바비큐 먹으면 천국이겠는데?”

 지온이 엄지를 치켜들고 씩 웃으며 말했다. 유리는 막 나와서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닦던 참이었다. 셋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따로 마련되어 있는 바비큐장으로 향했다.

 “와. 대박. 우리 밖에 없어! 너무 좋다.”

 “그러게. 최곤데?”

 빨갛게 타오르는 숯불 위, 때깔 좋은 삼겹살을 집어 올렸다. 고기를 굽는 건 지온의 담당이었다. 학생 때도 그랬던 것처럼. 셋은 빠른 속도로 소주 세 병과 삼겹살을 남김없이 비워냈고, 노부부에게 삼겹살을 조금 더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새 소주는 네 병째였다. 지온은 취기가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유리는 어느새 취했는지 젓가락을 몇 번이고 떨어뜨리는 중이었다.

 “지온이 넌 sns보니까 진짜 자유롭게 잘 사는 것 같더라. 새벽 기상에, 운동에, 공부에, 거기다 승진까지. 못 하는 게 뭐야?”

 “에이. 아니야. 아기를 둘씩이나 키우는 너에 비하면 나는 어른 되려면 한참 멀었지.”

 “야. 너 비꼬는 거지?”

 유리가 혀 꼬인 말투로 물었다. 갑작스레 날카로워진 그녀의 말투에 지온과 수은은 약간 놀란 듯했다. 수은은 술을 먹기 전후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무슨 말이야 그게?”

 “그래. 나 애 키우는 거 말고는 하는 거 없다. 왜. 불만이야? 불만이냐고.”

 “유리야. 네가 갑자기 왜 그렇게 말하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

 “나는 내가 정말 잘 살 거라 자부했어. 늘 부족함 없이 살았으니까. 지금도 나름 풍족한 삶을 사는 편이고. 근데 딱 하나 부족한 게 있더라. 내 시간. 내 시간이 하나도 없는 거야. 너무 없어. 내 방, 내 공간, 나만의 시간이 미치도록 필요한데,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혼자 있을 수가 없는 거야. 회사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찾지, 집에서는 더 찾지. 진짜 절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더라. 다 포기하고. 근데 너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거 있지? 이지온. 너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 나 보라고. 나 질투하라고! 내가 이만큼 잘 산다 이런 걸 꼭 그렇게 올려야겠어? 넌 친구라면서 내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거야?”

 유리가 주먹으로 상을 내리치는 바람에 컵에 담겨있던 소주잔이 쏟아지며 상 위를 적셨다.

 “김유리. 너 이제 술 그만 먹어. 왜 이래? 빨리 방에 가서 자.”

 수은이 젖은 상을 닦으며 말했다.

 “아니. 나도 한마디 해야겠어. 야. 김유리.”

 “지온이 너까지 왜 그래. 쟤 지금 취했잖아.”

 “아니. 나도 할 말은 해야겠어.”

 수은은 한숨을 쉬며 자신 앞엔 남아있던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 말해 봐.”

 “야. 너야말로 친구 맞아? 너 결혼하고 나서 바쁘다는 핑계로 나랑 수은이 한 번 보러 와준 적 있어? 맨날 우리가 너 있는 대로 갔잖아. 오늘 하루 빼고. 그리고 네가 보기엔 내가 편하고 좋아 보일진 몰라도 나는 내가 어떻게든 원하는 삶 살려고 노력하는 거야. 한심하게 너처럼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을 시간 없다고.”

 “뭐? 신세 한탄?”

 “그래. 그게 신세 한탄이 아니면 뭔데? 너야말로 맨날 남편한테 뭐 받았니, 어딜 갔니 자랑질 좀 그만해. 넌 뭐 결혼식이며 돌잔치며 네가 원할 땐 사람 오라 가라 그러더니 이젠 뭐 자격지심 때문에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뭐야? 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네가 가까이서 봐서 더 잘 알잖아. 우리 엄마 나 버리고 아빠랑 나랑 단둘이 사는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가 더 잘 알면서 너야말로 친구 맞냐? 어?”

 지온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릴수록 취기가 더 심하게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수은은 어느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한숨과 함께 연기를 뱉었다.

 “왜 그러는데. 대체. 뭐가 문젠데. 싸울 거면 니들 둘이 따로 싸우던지. 경주까지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인데?”

 수은의 목소리가 한층 차갑고 무거워졌다.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유리는 여전히 취한 듯 꼬인 혀로 말을 이었다.

 “한수은. 넌 진짜 여전히 철없다. 우리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담배나 피면서 부모님 밑에서 캥거루족으로 사는 거야? 너 얼마 전에 내가 소개해 준 사람 대놓고 꼽줬다며.”

 “내 스타일 아니었고. 재미도 없었고. 굳이 만남 이어나갈 필요가 없는데 굳이 왜 실실 웃으면서 비위를 맞춰줘야 하냐? 그리고 말이 좀 그렇다? 캥거루족? 네가 나한테 생활비를 줘, 담배를 줘?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냐?”

 수은은 담배를 바닥에 힘껏 내던진 후, 발로 세차게 비벼 남은 불을 껐다.

 “네가 그러니까 아무도 못 만나는 거야. 자꾸만 재고 따지고 하니까. 거기다 네가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출난 것도 없는데 누가 널 봐주겠냐고. 정신 차려. 진짜 네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유리는 여전히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정신 차려야 할 건 너야. 김유리. 네 남편이 네 이런 모습 아냐? 진짜 찌질해서 못 봐주겠다. 부족한 거 없이 산다며. 근데 네가 제일 부족해 보여. 애정결핍 같애. 너.”

 유리는 그 말을 들은 후 지금껏 너한테 소개팅해주고 상담해준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수은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더 물었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온은 급격히 피로해짐을 느꼈다. 삼겹살은 차게 식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온 또한 말없이 엉망이 된 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울다 지친 유리는 어느새 비틀거리며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수은은 좀 더 바깥에 있겠다고 했고, 지온은 술기운이 더욱 올라온 나머지 속이 안 좋았다. 곧장 화장실로 향한 그녀는 위장에 있던 모든 음식을 쏟아냈고, 격하게 양치질을 했다. 그녀는 거실에 뻗어있는 유리를 대충 이불로 덮어주고는 방으로 가 누웠다.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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