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2023.아르코 발표지원 선정 시)

by 연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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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개울가에 서 있을 때

내 발목이 물살을 거스르고 있는 것을 알았어요.

순종의 역사란 곧

흘러가는 물의 역사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발목은 반항하는 여울이에요.


순종은 취약 지점을 알고 있어 난폭해요.

가장 높은 곳을 꺾을 수 있는 곳에 깃들어

봄날은 빳빳하게 싹트지만

바람이 스며든 풀들은 부드러워지죠.

온순한 짐승들이 여름의 풀을 즐겨먹는 이유죠.


메뚜기는 바람이 불 때를 알고 있어요.

바람이 부는 방향을 타고 멀리 날 수 있는

순종을 숨기고 있어요.

신이 메뚜기의 날개를 기억하는 방식이죠.

또 한밤에 뒤란에서 쿵쿵 모과가 떨어진다면

순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리예요.

약간의 순종은 덜 미안해도 된다는 알림이죠.


그러니까, 무릎을 걷어 올린 바짓단은

순종의 각오일 거예요.


나는 어릴 때 겨울 날 정오에게

순종하는 소리, 복종의 화음을 배웠어요.

처마 밑 순종의 반짝임, 고드름을 기억하고 있어요.

날것의 곡식이 닭들을 불러 모을 때

구구구 엄마의 입속을 순종하던 마당이 있었어요.


빌딩의 목에 순종하는 자라목들의 아침

순종을 긁으면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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