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르코 발표지원 선정 시)
숨쉬듯
혼자 말하듯
바람이 눈에 담긴다
따뜻하게 이별하지 못한 영혼들은 슬픔이라는 단어를 빌려 다시 태어나고
슬픔은 마지막 종소리를 듣는 귀가 없어 안녕이라는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다.
슬픔은 그리움에 기대어 사느라 다른 세상의 주소를 놓치고 있다
젖은 눈에 말려든 구름의 등이 아득하다
가을 수묵화의 숨을 구부리면
한지에 스며든 온기가 숨을 열어주었다
그리움 안에서 눈을 뜨고 잠자는 너무 많은 영혼들
오동나무 살결을 따라 검은 한지를 바르면
묽은 풀이 먼저 손가락을 쓸어주었지
일회용 비닐장갑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락스 방울이 스며들고
한지는 온전히 오동나무의 상처에 편입되고 말지
살짝살짝 스쳐간 상처는 한지가 감추고 싶은 어둠의 시간,
그렇게 몇 날이 지나면 연두의 색들이 슬쩍슬쩍 어둠의 시간들을 덮어주지
어떤 상처는 오래 마르지 않아 한 계절 숨만 쉬고 있지
닥나무의 안부가 궁금한 오래된 한지의 숨결은 여위어 가고
풀리지 않는 우문들 보이지 않는 숨을 모아
당신들이 사는 세상은 몇 시인가요
혼자 삼키는 말이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