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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Apr 22. 2024

내 아이를 꼭 보내야 할 두 가지 특성화 고등학교

실패? 경험? 성취? - 내 아이에게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내가 오타와 로폄에 취업이 되어 온 가족을 토론토에서 오타와로 데리고 갔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가족을 전담으로 봐 줄 가정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캐나다는 모든 진료를 가정의를 거쳐야 한다. 가정의가 없으면 매 번 walk-in clinic  (누구나 방문 순서대로 진료 받을 수 있는 가정의 사무실)를 찾아 가야 하는데,  토론토에서는 그런 경우 대기 시간만 보통 3-4시간을 써야 했다. 


그런데, 오타와는 토론토 사정이 더 열악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가정의 사무실이나 병원에는 이미 수용 가능한 환자 등록이 다 차서 새로 오타와에 오는 가정들은 대부분 walk-in clinic  (누구나 방문 순서대로 진료 받을 수 있는 가정의 사무실)밖에는 갈 수 없어서, 오타와의 대기 시간은 토론토보다 더 길다고 했다. 


애들이 자주 아픈데 그럴 수는 없다, 싶어서 여기저기 오타와 가정의를 알아보다 보니, 한인 가정의가 한 분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몇 분의 외국 의사들과 함께 병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래서 전화를 하니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를 받았다. 의사와 통화하고 싶다고 하니, 메모 전달만 가능하고, 등록된 환자에게만 call-back을 한단다. 그래서 가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그 병원은 이미 환자 용량이 다 차서 새로운 환자 등록을 받을 수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할까. 나는 괜찮지만, 애들이 문제고, 아내는 영어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꼭 한국인 가정의가 필요했다. 고민했는데, 다른 방법이 없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한 번 더 두드려 보기로 했다. 국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한 가정의가 꼭 필요한 이유를 구구절절이 써서 한인 가정의 앞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어차피 안 된다고 했으니, 믿져야 본전 아닌가.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났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의사가 우리 가족을 새 환자로 등록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가정의를 구했고, 다들 놀라워했다. 나도 사실 놀랐다. 


한국에서 오래 교육 받은 분들이 캐나다에서도 어려워 하시는 게 이거다. 안 될 것이 뻔한 일을 시도해 보기. 


안 된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시도해 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렇다. 아이들이 자주 아프지 않았다면, 아이들 문제로 절박하지 않았다면, 나는 굳이 시간 들이고 공 들여서 실패가 뻔히 보이는 편지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믿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한 것이지만, 사실 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니 성공하지 못하면 본전은 아니지 않은가. 믿지는 것이라 보는 게 밎다. 그리고 믿지는 건 실패다. 어려서부터 실패는 나쁜 것이라고 배웠는데, 왜 실패할 일을 하겠는가.


그런데, 캐나다에서 교육받은 동료 변호사들과 일하다 보니 이 친구들은 이 "믿지는" 일을 나보다 훨씬 쉽게 시도한다는 걸 알았다. 안 되는 걸 아는데, 그냥 해 본다. 그러면, 당연히 대부분 안 된다. 그런데, 드물게 가끔 되는 그 케이스들이 중요한 케이스가 된다. 알았다. 녀석들은 내가 다니지 못한 캐나다의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그 고등학교의 이름은 "아님말고"다.


아님말고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남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굳이 하고나서 "거 봐,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바보야?" 라는 핀잔 듣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이 있다. 뻔히 안 될 것을 시도하더라도 "거 봐,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바보야?"라고 핀잔주지 않는 문화다. 그리고 캐나다에는 그 문화가 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아님말고"라는, 한국에는 없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다. 


이 "아님말고" 라는 특성화 고등학교에서는 어려서부터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경험을 쌓게 한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캐나다 아이들은 두 번째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은 성공으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이 두 번째 특성화 고등학교의 이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이 고등학교에서는 각자가 생각하는 한계가 사실 한계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사실 본인 뿐 아니라 모두의 눈에 보이는 한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한국에도 한계를 뛰어넘은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캐나다는 누군가의 한계가 다른 사람과의 차별점이 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모두가 협력하는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지체장애인들이 외출을 무서워 한다고 들었다. 한 번 외출을 하려면 너무 불편한 것이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모든 버스는 버스의 차체 자체를 낮출 수 있게 되어 있다. 한 사람을 태우기 위해 버스가 천천히 땅바닥 쪽으로 차체를 낮추었다가, 그 사람이 탑승하면 다시 천천히 차체를 들어 올린다. 그 시간동안 차에 탄 사람들도, 줄을 선 사람들도 모두 기다려야 한다. 어찌보면 과도한 에너지 소비요, 시간 낭비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당연히 나에게도 남들이 배려할 것을 깨닫는다. 배려받을 것을 믿다보니, 내 한계를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몸이 불편해도 그냥 외출한다. 일단 외출할 용기만 내면 많은 이들이 도와주어 내가 필요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한국에서 나온 고등학교를 자랑스러워 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나는 경험할 필요가 없는 것은 경험하지 말라고 배웠고,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이 나를 성공으로 이끈다고 배웠다. 하지만, 캐나다에 와서 보니 내가 배운 것은 그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캐나다 친구들이 "아님말고"에서 경험을, "그럼에도 불고하고"에서 자신감을 익히는 동안,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졸업장으로 받았다. 


지나고 보니 경험과 자신감이 고등학교 시절에 꼭 익혀야 할 기초 체력이었다. 캐나다 친구들과 맞짱을 떠 보니, 나는 기초 체력이 부족했다. 성인이 되어 닥치는 대부분의 문제는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요구한다. 기초 체력이 없어도 정답은 찾을 수 있지만, 기초 체력이 없다면 해답은 찾을 수 없다. 자랑스러운 나의 고등학교는 나에게 기초 체력을 길러 주지 않았다. 


"아님말고"를 졸업하고 체득한 경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졸업하고 얻은 자신감은 한국의 명문 고등학교를 나와서 얻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큰 힘이 있다. 


물론 혹자는 말할 것이다. 한국에도 "아님말고"는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있다고. 그렇다. 나도 안다. 하지만 캐나다에 비해 너무 드물다. 그래서 캐나다에 널리고 널린 이 두 가지 특성화 고등학교를 한국에도 시급이 도입하기를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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