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보시나요, 아님 짧게 보시나요?
대부분의 캐나다 로스쿨에는 다른 전공과의 공동 과정이 있다. 대학마다 명칭은 달라서 integrated program, joint program, combined program 등으로 불리지만 그 추구하는 바는 같다. 법에 한 가지 전공을 추가해서 두 가지 전공을 짧은 시간에 끝내는 것이다.
어찌보면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다.
대표적인 공동과정, 그리고 어쩌면 가장 선호되는 공동과정이 JD/MBA 공동 과정인데, 정상적으로는 로스쿨 3년, MBA 2년이 소요될 과정을 4년에 마칠 수 있다. 게다가 보통은 2년 이상의 직장 경력을 요구하는 MBA과정에 아무런 경력 없이 입학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그 뿐인가. JD/MBA 과정에 들어가면 기본 연봉을 높은 곳에서 시작할 확률이 올라간다.
Osgood Hall Law School 에서 내 2년 후배였던 한국인이 두 명 있었다. 둘 다 늦게 캐나다에 와서 국어가 완벽한 녀석들이라 나로서는 어울리기 편했는데, 두 명 모두 로스쿨 1학년 때 우수한 성적을 받고 2학년이 되기 전에 JD/MBA 과정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한 명은 그대로 Osgoode Hall Law School 에 남아 Schulich MBA를, 다른 한 명은 University of Toronto Law School 로 이적해서 Rotman MBA를 받았다.
내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여름에 로펌에서 연수생으로 일 할 때, 그 두 명 중 한 명은 캐나다의 큰 은행에서 여름 인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름 인턴 월급이 내가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고 변호사 연수생으로 근무하면서 받는 월급보다 높았다.
부양 가족이 있던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부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걸까?
JD/MBA 과정에 입학했다는 건, Buisness Law 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그 학생의 실력을 은연 중에 나타내는 효과가 있다. 그 공동과정 자체가 성적을 비롯한 소위 기타 "스펙"이 받쳐 줘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 두 명 모두 내노라 하는 캐나다의 대형 로펌의 Business Law 부분에서 일하다가 한 명은 Seven Sisters 라 불리는 캐나다 7개 대형 로펌 중 한 곳에서 유일한 한국 출신 파트너 변호사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역시 다른 대형 로펌에서 홍콩 지사 발령을 받아 홍콩 출신 아내와 함께 홍콩에 정착했다.
게다가 둘 다 30대 중반에 연봉은 달러로 7자리를 숫자를 받고 있다.
그러니, JD/MBA 출신들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혹할 만 하고, JD/MBA 이외에도 공동 과정에 욕심을 낼 만 하다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이 로스쿨을 간다면 꼭 고려해 보라고 추천했다.
그런데, 며칠 전 캐나다에 남은 파트너 변호사를 오래간만에 만나 술을 같이 했는데, 다시 로스쿨을 간다면 JD/MBA 공동과정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럴까 - 궁금해서 물었다.
영어로도, 체력으로도, 주량으로도, 캐나다 인들에게 밀리는 건 (연줄 말고는) 없고, 연봉도 불만은 없지만, 변호사로 사는 삶이 가끔 힘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럴 때, 만일 로스쿨만 나왔더라면 지금 MBA 를 가서 뭔가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 볼 수 있을 텐데, 너무 빨리 로스쿨과 MBA 과정을 해 버리는 바람에 그 과정들이 마땅히 삶에 끼쳐야 할 영향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고, 삶에 다른 계기를 줄 다른 과정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환경법이든, 성문법이든, 철학이든, 음악이든, 내가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야를 법을 배우면서 더 배우고 싶은 향학열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저 몸 값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공동과정을 택하는 건 내가 나중에 더 큰 가치로 누릴 수 지도 모를 기회를 쉽게 날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덕에 그 만큼 큰 기회를 누릴 수 있었잖아? 내가 다시 물었다.
지금 그 친구가 누리는 자리는 JD/MBA 과정을 거쳤으니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 왔던 터여서였다. 하지만, 그 친구 생각은 좀 달랐다. 로스쿨만 나오고 MBA를 하지 않았더라도, 과정이 좀 다르게 흘러갔거나, 바로 그 로펌이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Business Lawyer 의 길을 가고자 했다면 아마도 지금 걷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나는 아직 공동과정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MBA에서 생기는 연줄의 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로스쿨을 나오고 캐나다 정부의 무역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싶어했던 로스쿨 2년 선배가, 3년간 노력해도 갈 수 없어 할 수 없이 무역 관련 대학원을 갔는데, 졸업도 하지 전에 1년 뒤 교수 추천을 받아 원하는 부서에 변호사로 채용된 사례를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 외에도 캐나다를 주무르는 연줄의 힘을 너무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줄 없이 캐나다에 떨어진 1세에게 그런 연줄은 오누이에게 내려온 동아줄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이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평생을 행복하게 걸어달 수 있는 길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이 직업이 3번째 직업이라 잘 느끼지 못하지만, 변호사가 첫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다른 출구가 필요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건 축복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제 로스쿨 공동과정에 대한 자문을 구한 분께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 길게 보면 하나씩 밟아가도 되고, 짧게 본다면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길을 노리라고. 너무 뻔한 이야기라 도움이 안 되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