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지치면, 개그도 진지해진다.
처음에 로스쿨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는 기쁘기는 했지만, 그 동안 LSAT 이며 이력서며 영어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소비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만큼 큰 기쁨은 아니었다. 짐작컨대 아마도 로스쿨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작업은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로스쿨 생활은 달랐다.
처음으로 동기들을 만난 자리에서, 도대체 나랑 이야기하는 녀석의 이름이 Stanford인지 Sanford 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면서부터 생긴 영어에 대한 작은 두려움은, 내가 선택한 나의 영어 이름 Albert를 말하는 나의 발음을 동기와 교수님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데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내가 과연 로스쿨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하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내 상황상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영어가 부족할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남들보다 더 시간을 써야 할 각오 정도는 되어 있었다. 남들보다 시간을 더 써서 읽고, 쓰면 되지 않겠는가.
까짓거, 남들 8시간 잘 때 4시간 자는 거, 고 3때 매일 하던 거잖아,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캐나다 동기들에게 체력으로도 밀린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놀고 먹지만, 리포트나 시험이 있을 때에는 2-3일씩 밤을 새기도 하는데, 이 녀석들은 그닥 피곤해 하지도 않는다. 이 정도면 게임에서 말하는 사기캐나 다름 없다. 영어도 잘하고, 체력도 좋고, 머리도 좋고. 굳은 각오로 간신히 세워 놓은 내 자신감은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졌다.
가진 자산이 시간과 체력 뿐이었던 내가 정말 가진 것을 다 털어 넣고도 도저히 다른 동기들을 따라 가지 못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이 녀석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겠구나.
그렇게 여러 날, 여러 주, "이길 수 없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가 문득 대학교 선배님 한 분이 기억이 났다. 같은 업계의 다른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시던 이 분은 내가 말단이던 시절 이사로 근무 중이셨고, 1년에 3-4번은 함께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던 분이셨다.
이 분의 성함은 "이 길수"셨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길수 선배님이 두 눈 시퍼렇게 뜨로 살아계신데, 이길 수 없다니, 이게 후배로서 무슨 무례한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이 길수 있다!
그런데, 또 생각하니 이 길수 이사님은 대 선배신데, " 이 길수 있다" 라니, 너무 불경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이 길수 계시다!
그 후로 나는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이 길수 계시다"를 자그맣게 외쳤다. 마음 속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이 길수"가 계시다는 건 거짓이 아니니 그 말을 진지하게 뱉어 낼 수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길수 계시다"를 외치고 나면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책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개그다. 참 우스운 이야기다. "이 길수 계시다!"라니 - 그 땐 그 말이 왜 우습지 않았을까. 어떻게 그런 말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을까.
짐작컨대 나는 아마 그 때 완전한 방전 상태였던 것 같다. 커피를 물로 삼고, 머리가 베개에 닿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면서, 가진 머리, 가진 영어, 가진 체력을 다 갈아 넣었는데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너무 지쳐서 기도도 할 수 없을 그 때가 되니, 개그도 진지해 질 수 있었다.
그 후로 로스쿨을 다니면서도, 로펌을 다니면서도, 나는 "이 길수 계시다!"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마도 계속 따라가기 벅찬 나날들이었나보다.
하지만, 로스쿨에서 한 학기가 지나고, 다시 3년이 지나고, 로펌에서 다시 3-4년을 보내는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던 절망감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고,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졌던 자신감은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이제 내가 한국에 이 길수 이사님 (지금은 은퇴하셨을 수도 있지만)이 계시다는 것을 잊고 산 지가 꽤 되었다.
"이 길수 계시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이겨가며 산 날이 꽤 되었다는 뜻이다.
내 고객 중에 사업으로, 학업으로, 돈 문제로, 그렇게 고민하는 분이 계시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고 하는 분이 계시면, 난 이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그럼, 대부분 피식 웃으시며, 내 개그를 따라해 보겠노라 말씀하신다.
그 분들은 이 길수 이사님을 몰랐기에 그렇게 힘들어 하신 것이다. 그러니, 이 길수 이사님을 알아서 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내게 있어 "이 길수 계시다!" 는 내 경력에서 최고의 개그였다.
개그로라도 그렇게 버티게 해 주신 이 길수 이사님, 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