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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오 Dec 08. 2023

벨기에산 흑표범, 맨시티의 새로운 날개 되다

2021년 7월 3일, 코로나로 1년 늦게 열린 유로 2020 8강전, 벨기에는 이탈리아에게 전반전에만 두 골을 얻어맞으며 1대2 석패했다. 팀의 주포 역할을 해야 했던 로멜루 루카쿠와 에이스 케빈 더 브라위너가 침묵한 가운데, 끝까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헤집었던 것은 19살의 앳된 소년이었다.


출처 - 도쿠 개인 sns


마치 흑표범을 연상케 하는 유연성과 탄력, 뛰어난 드리블 실력을 갖춘 소년은 이날 8회의 드리블을 성공시키면서 경기 내내 이탈리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 때 벨기에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던, 프랑스의 레전드 공격수 티에리 앙리는 “당신이 그와 일대일 상황에 마주한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하는 것뿐이다” 라며 이 선수의 능력을 극찬했다.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펩 과르디올라는 이 선수를 두고 “그에게 공이 주어지면 그는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가 드리블을 시작하면 모두가 흥분하기 시작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세계 최고 공격수였던 앙리와 세계 최고 감독인 과르디올라가 극찬한 선수는 누구일까. 맨시티의 새로운 날개로 거듭나고 있는 벨기에의 흑표범, 제레미 도쿠가 그 주인공이다.




선수 소개


출처 - 도쿠 개인 sns


제레미 도쿠는 2002년생 173cm, 77kg의 체격을 지닌 벨기에 국적의 윙어다. 폭발적인 드리블이 돋보이는 도쿠는 21세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14경기 2골의 A매치 기록을 보유할 만큼 뛰어난 재능의 선수로, 차세대 벨기에의 공격을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평가받는다.


도쿠는 벨기에의 명문 안데를레흐트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18/19 시즌, 16세의 나이로 벨기에 1부 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도쿠는 19/20 시즌, 벨기에 1부 리그 기준 21경기 3골 4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도쿠의 잠재력은 유럽의 여러 클럽들의 구미를 당겼다. 도쿠는 수많은 구단들의 구애 속에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스타드 렌을 선택했고, 스타드 렌은 당시 클럽 레코드인 2600만 유로 (약 372억 원)을 지불하며 20/21 시즌 도중 도쿠를 영입했다.


보다 큰 무대인 프랑스 리그에서도 도쿠의 활약은 이어졌다. 20/21 시즌 리그 1 기준 30경기 2골 3도움을 기록한 도쿠는 21/22 시즌 햄스트링과 무릎 부상을 겪으며 주춤했다. 하지만 22/23 시즌 몸상태를 회복하는 와중에도 리그 1 기준 29경기 6골 2도움을 기록하며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을 말끔히 털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툴루즈와의 리그 1 23라운드 경기에서 홀로 11번의 드리블을 성공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이는 유럽 5대 리그 기준 첫 번째로 한 경기에 10개 이상의 드리블을 성공시킨 것으로, 두 번의 햄스트링 부상과 한 번의 무릎 부상에도 도쿠의 기량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였다.


이처럼 여전한 기량과 잠재력을 증명한 도쿠에게 드리블러를 찾고 있던 맨시티가 손을 내밀었고, 23/24 시즌, 도쿠는 3년 간의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꿈의 무대인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선수 장점


도쿠는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가능성을 보인 것과 그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맨시티는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클럽이다. 과정보다는 매 순간 결과를 요구하는 클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맨시티는 21살의 어린 선수에게 무엇을 보았을까. 그가 정확히 어떤 재능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자.


드리블


출처 - 도쿠 개인 sns


도쿠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드리블이다. 맨시티는 마레즈에 이어 유망주였던 콜 팔머까지 떠나보내며 뛰어난 드리블러 둘을 잃었다. 도쿠의 드리블 능력은 맨시티의 또 다른 공격 옵션이 될 것이다.


도쿠는 22/23 시즌 리그 1 기준 90분당 볼 운반 거리 356m를 기록했다. 이는 유럽 5대 리그 기준 가장 높은 기록에 해당한다.


도쿠의 22/23 시즌 리그 1 기준 프로그래시브 캐리 분석 차트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프로그래시브 캐리 - 5m 이상 볼 운반을 뜻함


도쿠는 프로그래시브 캐리 기록에서도 225회를 기록하며 90분당 15.8회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그의 포지션이 상대 진영에 주로 머무는 윙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도쿠의 기록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이뿐만이 아니다.


도쿠는 22/23 시즌 리그 기준 90분당 6.8회의 드리블을 성공시켰다. 이는 유럽 5대 리그 선수(900분 이상 출전 기준) 중 가장 높은 수치이며 2위였던 알랑 생-막시망의 4.9회를 한참 상회하는 것이었다.


22/23 시즌 유럽 5대 리그 기준 드리블 성공 횟수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비록 선발과 벤치를 오가며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은 출전 시간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도쿠는 유럽 5대 리그 기준 96회의 드리블 성공 횟수를 기록, 단순 횟수에서도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와 리오넬 메시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비니시우스는 348회, 메시는 193회의 드리블을 시도했지만, 도쿠가 시도한 드리블 횟수는 단 169회였다.




다양한 포지션 이해도


과르디올라 감독은 다양한 포메이션을 사용하고, 선수들의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전술을 구사한다. 센터백을 미드필더처럼 올리거나, 풀백 없이 수비진을 모두 센터백으로 세우는 등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감독이다.


도쿠 또한 이미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 본 경험을 갖고 있다.


22/23 시즌 리그 1 기준 도쿠의 포메이션별 출전 분포도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위 데이터는 22/23 시즌 도쿠가 리그에서 소화한 포지션을 나타낸 데이터이다. 그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출전했다는 것과 표본이 적지만,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심지어 중앙 미드필더로도 출전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맨시티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하거나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할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하지만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해 봤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동료들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도 적응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경험은 도쿠가 과르디올라 감독의 축구에 녹아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 점검


12월 5일 기준, 도쿠는 맨시티 소속으로 17경기에 출전, 4골 7도움을 기록하며 클럽의 새로운 돌격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11월 4일 본머스와의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경기는,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경기라고 해도 무방한 경기였다. 도쿠는 1골 4도움을 기록하며 맨시티의 6대1 대승을 이끌었다. 이날 경기로 그는 프리미어리그 기준 한 경기에서 5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최연소 선수 (21세 161일)가 되었다.


도쿠의 활약은 데이터를 살펴보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맨시티 첫 8경기 기준 공격 포인트 순위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위 데이터는 맨시티 입단 이후 첫 8경기에서 기록한 공격 포인트에 대한 순위이다. 엘링 홀란드와 세르히오 아게로가 비정상적인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1위와 2위에 올라있는 가운데, 도쿠는 가장 적은 시간을 뛰면서 케빈 데 브라위너와 같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사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드리블을 우선순위에 두는 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에 많은 드리블러를 영입했을 때도 선수들의 드리블 횟수를 조정해 왔다.


가장 최근의 예시로는 잭 그릴리쉬를 꼽을 수 있다. 그릴리쉬는 아스톤 빌라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90분당 평균 4.5개의 드리블 시도를 기록했지만, 맨시티 입단 후 해당 수치는 매 시즌 평균 90분당 3.5개 미만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23/24 시즌에는 2.1개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이처럼 자신의 전술 성향에 맞춰 선수들의 장점에도 제한을 두었던 과르디올라 감독도 도쿠에게만큼은 드리블에 대한 ‘그린 라이트’를 부여한 모양새다. 프리미어리그 기준 도쿠는 23/24 시즌 58.1%의 성공률로 90분당 5.3번의 드리블 성공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유럽 5대 리그 기준 가장 높은 수치이다.


23/24 시즌 프리미어리그 기준 도쿠의 프로그래시브 캐리 분포도 / 출처 - 옵타 애널리스트 


단순히 수비진에 도전하는 드리블뿐만이 아니라 프로그래시브 캐리 기록에서도 도쿠는 독보적인 수치를 보인다. 도쿠는 프리미어리그의 미드필더와 공격수 중 가장 많은 90분당 17.2회의 프로그래시브 캐리를 기록했다. 이는 거리로 환산하면 총 90분당 212m가 되는데, 그가 운반한 212m는 유럽 5대 리그 기준 우스만 뎀벨레의 219m에 이은 2위의 기록이다.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첫 4개월 만을 보고 도쿠의 성공을 점치는 것은 너무나도 섣부른 판단이지만, 그가 보이는 퍼포먼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고무적이다.


특히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동안 선수들을 제한했던 자신의 전술적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이 젊은 선수에게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계속하도록 용기를 주는 것은 도쿠의 재능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벨기에에서 도쿠를 가르쳤던 한 코치는 스포츠 전문 매체인 ‘디 애슬래틱’과의 인터뷰에서 도쿠에 대해 “그는 정말 수줍음이 많고 겸손했다”라며 내성적인 도쿠의 성격을 이야기했다.


출처 - 도쿠 개인 sns


하지만 그라운드에서의 도쿠는 야성적인 선수였다. 그는 지난 시즌, RMC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드리블로 상대를 찢어발기는 것에 스릴을 느꼈다. 내가 16살 때 원했던 것은 상대 수비수가 나와 경기한 후 밤새 잠을 못 이루는 것이었다. 나는 수비수를 죽이고 싶고, 울게 만들고 싶다. 그가 경기가 끝난 직후부터 나를 미워하게 됐으면 좋겠다” 라며 자신의 공격성과 야성을 드러냈다.


19살의 나이로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헤집던 소년은 어느새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클럽의 돌격대장으로 거듭났다. 도쿠는 프리미어리그 수비수들의 악몽이 될 수 있을까. 첫 단추는 잘 뀄다. 이대로라면 그를 상대하는 수비수들은 불면증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기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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