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산서원 전교당 마루에 오르세요.

성큼 다가온 가을이 느껴집니다.

by 호서비 글쓰기


"여긴 전교당이라고 하고요. 지금의 학교 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마루 끝에 걸터앉지 마시고 마루 위로 올라오세요."


도산서원에서 관광객들과 동행 해설하면서 '전교당'에 이르면 전교당 대청마루로 올라오도록 권한다. 그리고 다시 한마디 더 한다.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오라고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의 엉덩이로 마루에 쌓인 먼지를 좀 닦아 달라는 겁니다."


이 말에 관광객들은다들 '크크' 웃는다. 이에 말을 이어 간다.


"아시다시피 우리 고건축물은 모두 목재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손길과 나무를 문지르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요. 그래서 사람이 여기 살아야 오래 보존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올라와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도산서원 보존에 큰 힘을 보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이 마루에는 예전 같으면 양반이 아니면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노비나 하인들은 마루 밑에 쭈그려 앉았다가 '이리 오너라' 하는 양반의 부름이 있어야 이 마루에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굳이 오르지 않으신 분들 계시죠? 저분들은 죄송하지만 양반가 후손은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계신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루에 앉은 관광객이나 마루 끝에 걸터앉은 관광객 모두 '깔깔'하고 웃는다.


IE003543313_STD.jpg 도산서원 전교당전교당 마루에 볕이 들고 있다. 조선 시대 이곳에서 유생들이 원장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지금의 학교 교실이다

요즘 도산서원 전교당이나 병산서원 입교당은 관광객들에게 마루에 올라오도록 권한다. 서원 건축물에 좀 더 친근함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서원에 와서 건축물을 올려 보면서 관람하는 것 못지않게 서원 가장 높은 곳에서 건축물을 내려보는 것도 별미다. 앞으로만 진행하며 관람하는 게 아니라 뒤돌아보면서 서원의 색다른 모습을 보라는 뜻이다.


IE003543322_STD.jpg 도산서원 원규 기문판도산서원에서 금해야 할 4가지가 적혀있다

또한 전교당에는 전교당 현판과 함께 여러 기문판이 걸려있다. 이 가운데 도산서원 원규에 대해서 관광객들에게 이야기하면 재미있게 듣는다.


"도산서원에는 내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고, 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또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여기 한자로 적힌 원규에 이런 사실이 적혀 있답니다. 원규는 도산서원 규칙을 말합니다.


내보내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책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책이 상당히 귀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구하면 정말 아끼고 소중히 보관하고 공부했습니다. 남들에게 빌려주기를 꺼릴 정도였지요. 그래서 도산서원에 책이 들어오면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책을 바깥으로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들이지 말아야 할 두 가지는 뭘까요? 바로 여자와 술입니다. 여기는 공부하는 유생이 기거하는 학교입니다. 사립학교이었지요.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에 술과 여자가 들락날락하면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에서 금기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서원에는 유생과 함께 하인인 노비들이 한 공간 안에 기거했습니다. 유생들은 공부하기 위해 기숙사에서 공부와 생활했고 하인들은 이 유생들의 식사와 세탁 등을 거들기 위해 기거하였습니다. 그래서 노비들을 함부로 처벌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규칙으로 정해 놓은 것입니다. 사사로이 집에서 노비들을 벌주던 행위를 여기에서는 금한다는 내용입니다."


조선 시대는 엄격한 신분 사회를 양반과 평민, 노비 등의 신분 격차가 심했다. 양반들은 사사로이 노비에게 벌줄 수도 있었다. 평민들도 처벌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서 하던 행동대로 서원에서 노비를 벌을 주면 안 된다는 취지로 보인다. 도산서원 원규는 퇴계 선생이 생전에 건립했던 영주 이산서원의 원규를 그대로 받아들여 선생 사후 도산서원을 지으면서 제자들이 퇴계 선생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도산서원 원규로 정한 것이다.


IE003543323_STD.jpg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마당과 동재 박약재, 서재 홍의재, 정문 진도문이 보인다. 서원 유사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도산서원 전교당에 앉아 내려보면 바로 앞에 진도문이 보이고, 양옆으로 동재인 박약재와 서재인 홍의재가 눈에 들어온다. 동재와 서재는 오늘날 기숙사이다. 그리고 마당을 중심으로 이 건축물이 'ㅁ'자 형태를 구성하고 멀리 낙동강 한가운데에 있는 '시사단'이 나무 사이로 눈에 들어온다. 낙동강에 물이 차면 '시사단'은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된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공간이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 제자와 후학, 유림들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 그래서 전교당 뒤편에 사당 '상덕사'가 있다. 요즘 도산서원의 단풍이 제법 볼만하게 물들고 있다. 빨간 단풍잎과 노란 잎이 서원 곳곳에 수놓기 시작했고 아기자기한 단풍이 서원을 찾은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IE003543326_STD.jpg 도산서원 입구 진입로 길가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있다.


IE003543328_STD.jpg 가을이 깊어지면서 빨간 단풍이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작가의 이전글도산서원 앞 작은 섬 '시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