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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ayyj Nov 30. 2022

모닥불

essayyj 소설

 #1

 “아... 감사합니다.”

 바비큐용 숯과 모닥불을 다 피웠다며 멍하니 뭐 하고 있냐는 사장님께 주머니에서 구겨질 대로 구겨진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집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한적한 시골로 캠핑을 왔다. 고기도 사고, 새우도 조금 사고, 빠질 수 없는 술도 사고.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근처에 있는 마트를 돌아다니며 항상 사던 양만큼, 혼자 먹기엔 넘치도록 많은 양을 습관처럼 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이렇게 해야 텅 빈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질까 싶어서.     


 #2

 은박지에 싼 새우를 먼저 굽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기보다 새우를 먼저 먹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렇게 다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타닥거리는 새우 익는 소리와 함께 소주를 한 잔 두 잔 들이켰다.     

 “저기 고기 좀 드실래요? 제가 너무 많이 사 와서요.”

 근처에서 여자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한숨을 내뱉었다.     

 “새우 다 타요!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주위에서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고 다시 소주를 한 잔 마시자, 누군가 내 눈앞에 손뼉을 치며 다시 말을 건넸다.     

 “저기요! 새우 다 탄다고요!”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여자가 손으로 새우를 가리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네? 아... 네. 그렇네요.” 타버린 새우를 비닐에 대충 털어 넣고 잔을 채워 소주를 한 잔 마셨다.     

 “무슨 소주를 안주도 없이 그렇게 무식하게 마셔요? 새우는 다 태워서 버리고, 혼자 왔죠?”

 혼자 왔냐는 여자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차디찬 침묵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는 다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같이 먹어요. 이거.” 내가 반응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맞은편에 앉았다. 원래 일행이라도 된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있던 플라스틱 소주잔을 꺼내어 내게 잔을 내밀었다.     

 “뭐해요? 혼자 마시지 말고 한 잔 따라봐요.”

 어이가 없어서 살짝 나올뻔한 허탈한 웃음을 참고 술을 따라주자, 그녀는 잔을 바로 비우고 새우를 까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술만 마시면 몸 버려요. 젊다고 몸 막 다루는 거 아니다? 안주도 같이 먹고 그래야죠.”

 “자 먹어봐요. 아무한테나 껍질 벗겨주는 사람 아닌데, 그쪽이 너무 죽상이라 오늘만 특별히 해드리는 거예요.”          


 #3

 껍질을 벗겨 든 새우를 받아 드니 전 여자 친구 생각이 났다. 착잡한 마음에 새우를 접시에 내려놓고 술을 한 잔 다시 비워냈다.     

 “거 참 말 안 듣네. 당신 헤어졌죠?”     

 “네. 그렇네요.”     

 “왜 헤어졌는데요?”     

 “그냥. 헤어졌죠. 남들이랑 똑같이.”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어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서. 힘들어요?”     

 “그럼요.”     

 “그럼, 잊고 싶어요?”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진 않은데, 이렇게까지 힘들어지고 싶지도 않아요.”     

 “많이 사랑했나 봐요?”     

 많이 사랑했냐는 질문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서로의 몸을 껴안고 데일만큼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 길거리에서 언성을 높이고 죽도록 싸웠던 기억. 반복되는 다툼에 지쳐 서로를 포기해버린 기억.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그때는 소중한지 몰랐던 그런 사랑. 멍하니 한참을 생각하다가, 또다시 이렇게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많이요.”


 #4

 나지막이 대답하고 일어나 모닥불 근처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저 모닥불처럼 뜨겁게 사랑했어요.”

 “너무나도 사랑해서 저 불이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장작을 계속 넣었죠.” 그녀를 등지고 남은 장작을 하나씩 던져 넣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사랑하기 위해 넣은 마음만큼 힘이 드네요.”     

 “부러워요. 그 여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뭐가 부러워요?”

 “이렇게나 그리워해주는 남자가 있으니까요.”     

 “퍽 이 나요. 걔는 제 생각도 안 하고 있을걸요?”     

 “그럼 그쪽도 이제 그 여자 생각 안 하면 되겠네요!” 그녀가 발끈하며 말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씁쓸한 마음에 자리로 돌아와 술잔을 채워 잔을 들자 그녀가 저지했다.     

 “그만 마시고 더 얘기해봐요. 그쪽 취하겠어. 오늘 속이나 풀고 가요.”     

 “이것만 마실게요. 담배 태워도 되죠?” 잔을 비우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저도 알아요.” 속처럼 타들어가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여 탁한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우린 너무나 달랐고, 많이 싸웠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더 부드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왜 그렇게 이 악물고 다퉜는지.”     

 “헤어질 때는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그녀와 함께한 좋은 기억들만 떠올라요.” 눈을 감으면 그녀 생각이 나고, 맛있는 밥을 먹을 때도 그녀 생각이 나고, 심지어 괜찮아지기 위해 떠나온 캠핑장에서 조차 그녀 생각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앞자리에 앉은 여자는 나의 푸념에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5     

 “견뎌요.”     

 “네?”

 오랜 적막을 깨고 그녀가 꺼낸 첫마디는 나를 당황케 했다. 운동 같은 취미 생활을 해봐라, 다른 여자를 만나라 등. 주변에서 수 없이 들은 뻔한 조언을 할 거라 생각했다.     

 “저기 모닥불 보이죠. 되게 아름답잖아요. 저 불을 계속 보고 싶어서 장작을 마구 넣어 버리면, 당연하게도 불은 커져요.”

 “이젠 그만 보고 싶어도 불은 넣은 장작만큼 오래 살아있어요. 꺼지지도 않고.”     

 “그게 무슨 뜻이에요?”     

 “당신이 불같이 사랑하기 위해 지핀 장작만큼, 그녀를 잊기 위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6

 “진심으로 사랑했다면서요. 어떤 방법도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거예요. 많이 사랑해서 장작을 계속 넣었다면서요. 그 장작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견뎌요.”

 “많이 사랑한 만큼, 그녀를 많이 기억해줘요. 밥 먹다가 생각나고, 꿈에도 나오고. 더는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지겨워서 이젠 그만 생각하고 싶어질 때쯤이 되면 당신도 괜찮아질 테니까.” 그녀의 눈에 서글퍼 보이는 눈물이 고였다.     

 “왜 그쪽이 울어요. 헤어진 건 난데. 뒤 돌아 있을 테니까 이걸로 좀 닦아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휴 왜 내가 눈물이 나지. 주책이네요. 정말.”

 그녀에게 등을 지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참 당연한 말인데 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7

 “다 됐어요. 돌아도 돼요.”

 “무슨 일 있어요? 왜 울고 그래요.”     

 “제가 헤어졌을 때 생각이 나서요. 그 새끼는 헤어지고 일주일 만에 다른 여자 만났거든.”

 “그래서 부럽다고 한 거예요. 웃기죠. 갑자기 울기나 하고.”

 그녀는 울어서 퉁퉁 부은 새빨간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래서 견디라고 말했어요. 저도 그렇게 털어냈으니까. 그렇게 괜찮아지면, 그때 나 한번 만나보든가.”     

 “지금 작업 거는 건가요?”     

 “네. 꼴은 말이 아니지만요. 울어서 못생겼죠. 지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뭐야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진짜 못생겼나 보네.”

 애교 섞인 그녀의 모습이 투정 부리는 고양이 같아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뇨. 예뻐요.”

 “참나. 그쪽 설레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요. 이제 갈게요. 늦었으니까. 술은 인제 그만 먹어요.”     

 “많이 예뻐요. 농담 아니에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새빨간 얼굴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고마워요. 오늘.”     

 “됐어요. 나 이제 진짜 가요!”

 수줍은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를 배웅하고 텐트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견뎌라, 사랑한 만큼 아픈 것이다. 참 당연한 말인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간다면 결과가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리운 것은 그때이지 그대가 아님을 알면서, 참 미련하다.     





 에필로그

 “그때 왜 나한테 고기 갖다 주러 왔어?” 맛있게 구워진 뜨거운 새우 껍질을 벗겨내며 말했다.     

 “어휴 말도 마. 죽상으로 술만 마시는데 얼마나 안쓰럽던지.”

 크게 웃었다. 스스로도 한심해 보였다는 것을 알기에.     

 “뭐야 그게 끝이야?”     

 “그리고 뭐 좀 잘생겼기도 했고.”     

 “참나. 오늘도 그때처럼 작업 거는 거야?”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해맑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응 오늘 밤에 잡아먹으려고. 뜨겁게 장작 좀 지펴 볼까?” 그녀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새우나 드세요. 껍질 다 벗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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