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한 달 살기를 목표로 했지만 제주 온 지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막상 여기서 산다고 나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은 아니다. 스무 살 이후로 호주, 덴마크, 군대를 지나 제주에 왔다. 워낙 타지생활에 익숙한 터라 평소와 다름없이 똑같이 여행하고 쉬고 일하고 반복된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 일상을 재밌게 보내는 나만의 여행 방식이 있다. 바로 남들이 주로 하지 않는 것들을 해보는 것이다. 이전에 작성했던 '우리가 바라본 바다들'에서 나는 바다를 산책하다 냅다 빠져버린 적이 있다. 이렇게 나는 빠진 해수욕장을 낭만 있게 여행하는 방식이다. 누구에게는 "뭐야 그냥 x친놈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제주라는 지역을 특별하게 여행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꼭' 해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물론 바다에 한 번쯤은 갑자기 빠지는 것을 해보라고 추천하지는 않는다.
제주를 대표하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 제주 흑돼지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들, 상큼한 제주 감귤을 비롯한 한라봉, 천혜향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레드향, 황금향등 직접 과일을 먹는 것 외에도 이 감귤을 이용한 과자나 초콜릿 그리고 커피에도 감귤을 이용한 메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만 봐도 귤을 이용한 제주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 그래도 토속음식을 안 먹으면 한 지역을 여행했다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제주도 토속음식으로 흔하게 알려진 고기국수, 옥돔구이, 성게미역국, 오메기떡 외에도 '몸국'이 있다. 처음 들으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주도에서도 나름 거리를 지나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음식이다. 몸국은 돼지고기와 모자반(톳과 비슷한 해조류)을 이용한 국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 맛보았을 때는 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그리고 옆에 소금, 후추, 고춧가루가 있기 때문에 각자 입맛에 맞게 먹으면 된다. 뜨거운 열기를 참아가며 땀을 뻘뻘 흘리고 먹는 구수하면서 걸쭉한 몸국은 제주도의 보양식 중 하나이다. 물론 제주에는 다른 맛있는 음식들도 많지만 대중화되어있지 않은 몸국을 한 번쯤은 꼭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자연, 재미 넘치는 테마파크, 경치가 이쁜 카페도 좋지만 제주에는 한번쯤은 꼭 기억하고 방문해야 하는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 4.3 평화공원'이다. 사실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사람도 한적하니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들어가려고 했다. 공원을 둘러보면 이 역사를 함께하고 기억하기 위한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구조물이 있었다 바로 길 가다 보이는 벤치의자들이다. 걷다가 힘들면 쉬어가는 공간인 이 의자들을 과연 앉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끔찍한 이 7년간의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 보았던 지역 이름 밑에 적혀있는 숫자들을 보면 가슴이 아려진다.
공원 중앙에 있는 위령탑을 주변으로 무수히 적혀있는 희생자분들의 이름과 지역들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과 남녀노소 구분 없는 죽음들이 눈물을 훔친다.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고 얼른 평화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서둘렀다. 기념관 안에는 나의 기존 생각의 틀을 부숴버린 잔혹함과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사실 이 글에 '제주 4.3 사건이란 무엇인가?' 작성해보려 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서 글을 작성하려면 어떤 것인가 내가 직접 알아봐야지 당당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기념관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검색과 여러 동영상 등을 보면서 자세히 알아보았다. 심지어 나는 2003년에 쓰였던 제주 4.3 진상보고서들을 읽어보면서 사진들과 그 당시 어떤 과정을 걸쳤는지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을 모두 알아보니 감히 내가 무엇인가? 이렇게 정의 내리기 힘들었다. 7년간의 그 과정이 길기도 했고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서는 직접 알아보는 것이 더욱 진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지켜본 사람들이 '제주 4.3 사건이 뭐지?'라고 생각이 든다면 직접 알아보기를 희망한다.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49년이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피해자 및 유가족분들의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사건 55년 만에 국가원수로서 사과를 하고 2005년에 국가차원에서 최초로 공식 사과를 했다. 무려 지난 55년 동안은 우리는 외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긴 세월 동안 말도 하지 못하고 피해를 인정받지도 못 한채 돌아가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그들이 억울한 세월을 보냈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살아갔다는 것을.. 제주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면 접수대에 눈에 띄는 글이 쓰여있다. '제주 4.3 피해자 유족 및 며느리 무료 진료 지정병원입니다' 이 글을 보면 아직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제주에서 지내면서 나름 관광지도 방문하고 맛집도 탐방하면서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점점 더 제주에 대한 마음이 애틋해지고 마치 제2의 고향이 된 것처럼 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이 마음을 나누고자 제주에 오면 한 번쯤은 꼭 '몸국'을 맛보고 '제주 4.3 평화 공원'을 방문해 보기를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