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부모에 대해 늘 고민하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 실천하곤 했다.
5~6년 전, 유난히 나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어머님 한 분이 있다. 첫 상담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구두 굽이 10센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을 키우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었다. 아이의 이전 영어학습 이력과 자신이 원하는 학습 목표를 정확하게 전달하시는 모습이 똑 부러졌다. 어머님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10년 동안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를 위해 올인하고 계셨다. 딸의 교육을 위해 우리 학원 근처로 이사 온 지 한 달째. 주변 몇몇 분에게 물었더니 ** 영어 학원이 꼼꼼하게 잘 가르쳐준다고 소개 받았다고 하셨다
상담한 다음 날, 첫 수업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그때 "또각또각, 또각또각!" 교실 밖에서 선명하게 울리는 구두 발소리!
보통 6학년쯤 되면 혼자서 수업하러 오는데 이날도 어머님은 학생과 함께 오셨다. 유난히 크고 동그란 눈, 까맣고 긴 생머리에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어머님을 똑 닮은 예진이. 이전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급 반장도 했었다는 어머님 말씀처럼 똑똑한 아이였다.
예비 중등반이었던 예진이는 2시간 수업을 마치고, 다음 시간 만나자는 작별 인사를 했는데도 자리를 정리하지 않았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는 나의 말에 아이는 엄마를 기다린다고 했다. 예전 학원에서도 그랬고, 예진이가 어딜 가든 항상 어머님께서 동행하셨단다. '예진이 집은 학원에서 5분 거리인데? 어머님이 마중을 나오신다구?'
맙소사! 초등 저학년도 아니고, 낼모레면 중학생이 되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시다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진이의 말처럼 잠시 후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고, 예진이는 어머님을 따라 귀가했다. 그 후로도 예진이는 언제나 어머님의 구두 발소리와 함께 등 하원했다.
중학교 입학 후 사춘기가 찾아온 예진이는 어느 날부터 숙제도 해 오지 않고, 짜증이 늘기 시작했다. 한 번씩 교실 밖에서 엄마와 다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엄마의 구속에 답답함을 느낀 예진이가 반항을 시작한 것이다.
학부모 상담은 시험 전후로 하는 게 보통이다. 예진이 어머님은 예외였다. 수시로 전화가 왔고, 예진이 수업태도며 숙제 완성도에 대해 꼼꼼히 확인하셨다.
초등학생 때 말 잘 듣던 아이가 중학교 와서 뭐든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속상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예진이 믿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격려해 주시고요."
상담을 요청하실 때마다 사춘기 아이들의 특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사춘기는 성인이 되기 전, 아이들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인 만큼 간섭보다는 믿고 지켜봐 주는 게 필요하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사춘기를 겪으며 느낀 점이다.
어머님과 예진이의 갈등은 나아지지 않았다. 2학기가 되자 아이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예진이의 가출 소식이 들려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집착이 '화'를 부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진이네는 이사를 했다.
나와의 학습 기간은 1년 반 남짓.
또각또각! 지금도 학원 앞으로 지나가는 구두 발소리가 들리면 예진이 어머님이 생각난다.
자식은 내 배 아파서 낳았지만, 나와는 완전히 다른 독립된 인격체이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에는 자아를 스스로 확립할 수 있도록 존중해 주고 믿고 지켜봐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