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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실 Feb 13. 2024

옳다, 찾았다

빠진 이가 사라졌어요.

장마가 끝난 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36도, 37도까지 기온이 치솟자 '몇 년만의 폭염', '기상 관측 이래 7월 최고의 무더위'라며 대구 날씨는 연일 뉴스 특보로 보도되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날 오후.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얼굴이 하나같이 달아올랐다. 갈증난 목을 축이고 2시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출석부를 보고 윤성이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얘들아! 오늘 학교에서 윤성이 못봤니?" "아니요!"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상하다. 윤성이는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기 때문에 자기 수업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었다. 2시 20분, 30분,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윤성이는 오지 않았다. 휴대폰도 받지 않았다. 윤성이가 아직 학원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어머님께 문자도 남겼다. 몇몇 아이들은 윤성이가 학원에 빠지려고 일부러 안 오는 것이라며 웅성거렸다. 바로 그 때, 학원 문이 열리면서 윤성이가 나타났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은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빠진 ‘이’가 사라졌어요.

아이들의 시선은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울먹이는 윤성이에게 쏠렸다. 아이는 갑자기 설움이 폭발한 듯이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나의 말에도 대답 못하고 한참을  울던 아이가 잠시 후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의 '이'를 찾아주세요.제발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갑자기 '이'를 찾아달라니?' 윤성이는 한자를 좋아하고 실력도 뛰어난 친구다. 예전에 이가 빠졌을 때 자랑처럼 내게 들고 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잖아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은 모두가 소중해요.“

그날도 윤성이는 점심시간 밥을 먹다가 평상시 흔들리던 '이'가 빠졌다, 아이는 그것을 휴지에 싸서 고이 접어 바지 앞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하교 후 문구점에 잠시 들러 ‘포켓몬’ 카드를 사고 학원 앞에 도착해 보니, 주머니에 있어야 할 ‘이’가 사라진 것이었다.

아이의 손에 이끌려 학교 정문으로 갔다. 윤성이의 기억를 되살리며 정문, 문구점, 영어학원 오는 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정문에서 문구점까지는 약 백 미터 거리다. 윤성이와 나는 허리를 굽힌 채로 눈을 크게 부릅뜨고 길거리를 헤집기 시작했다.

한여름 오후 3시, 찌는 듯한 더위에 햇빛은 왜그리 따가운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얼굴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윤성이는 학교 교문 옆 도로가까지 샅샅이 확인하고 있었다. 문구점까지는 별 소득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영어학원까지 오는 길뿐이었다. 윤성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윤성아, 너무 걱정하지마. 찾을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이 꼭 찾아줄게.“ 나도 말은 내뱉으면서 내심 걱정이 되었다.


문구점에서 영어학원 오는 길에는 여러가지 조형물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한 번씩 놀다 가곤 했다.윤성이도 한 조형물위에서 새로 산 포켓몬 카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낡은 것들은 물물 교환도 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조형물 주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바로 그때 조형물 한 귀퉁이에 콩알만한 이빨을 발견했다.

“옳다, 찾았다!”

아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이'가 포켓몬 카드랑 섞여 탈출했나 보다. 비록 생명을 다한 ‘빠진 이’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윤성이가 참 기특했다. 5년이 지났지만, 그날 잃어버렸던 '이'를 찾았을 때 환하게 웃던 윤성이의 표정은 아직도 내마음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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