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8. 2022
드라마에서 보듯 응급실의 풍경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명절이라 그랬던 건지 매일이 그런 건지 아, 그저 정신이 번쩍 드는 죄송한 풍경들.
나 다음 실려온 8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 딸의 죽음에 닫힌 문을 잡고 통곡하는 엄마, 내 옆 침대에서 피가 흥건하게 고인 아버지의 다리를 누르고 있던 아들, 씻거나 잠도 잘 처지도 못돼 보였던 의사들의 지친 그래도 온화하려 노력하는 얼굴..
내가 누운 침대를 한 의사가 밀어서 CT 촬영하는 곳에 다다라 검사할 것들을 하고 아무 이상 없다는 소견을 듣고 나서야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고 명절기간에도 입원을 받아줄 병원을 찾아 입실했다.
코로나로 병원 전체가 보호자 면회도 어려웠던 시기여서 그 밤 입원실에 나를 혼자 두고 걱정되어 잠을 못 잤다던 동생, 나 역시도 그랬다. 모든 게 생뚱맞았다. 난 왜 이곳에 있는 건지, 과연 오늘 그 일들이 정말 현실이었던지 실감 나지 않았다. 너무 놀랬던 탓인지 아픔도 잘 모르겠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저 얼떨떨함, 그저 살아있음에 안도, 감사함만이 내 작고 싸늘한 입원실에 빈 공기와 함께 존재했다.
' 죽지 않고, 어디 부러지지도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다 뜻이 있으신 거 알잖아. '
저번 교통사고 때 훈련이 돼서 미리 사둔 적외선 조사기로 온몸을 뜨겁게 덥히고 온종일 송장처럼 뻗어서 끝없이 잠을 잤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한 일주일을 잠만 내리 잤던 것 같다. 열흘 삼주..
내가 떠난 뒤 애처로운 내 피아트의 견인 당시 찍힌 사진을 보니 중앙선에서 겨우 몇십 센티 떨어진 곳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는데 모두가 기적이라고들 했다. 중앙선을 넘었더라면이란 상상은 아무 쓸모없지만.
내게 배달된 이 시간은 생의 한가운데에서 '꼭 그래야 할 것들'은 정리하고 넘어갈 시간을 주시겠다는 의미라고 이해했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가치가 맞는 건지?
후반기에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야 좋을지?
삶의 터닝포인트를 주시려고 혹은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기회인 걸 알지만 난 사실 고난보단 칭찬에 더 반응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쿨럭.
아직도 이렇게 키보드를 치거나 밥그릇에 밥을 더는 일에도 손목이 따갑고 손등이 아프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시간이 약인 것을. 유아기 걸음마 떼듯 처음 발을 딛고, 걷고, 이제 아프지 않네, 조금 더 빨리 걸어볼까? 뭐 그런 일련의 과정을 다시 겪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의 지금, 나의 십자가가 무엇이든 지고 나아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