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시작부터 작업 스타트.
희미한 물안개 속에서 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5월 발매할 미니앨범.
셀 수 없는 재료와 갈래로 넘실대는 망망대해에 함께 뗏목을 타고 가고 있는 '프로듀서 클라우드 코'는 12월엔 편곡부터 이 여정에 조인했다. 내 생애 첫 크리스마스 송, 십수 년 전 만들어둔 먼지 쌓인 곡을 꺼내 10년 후 발매했다니... 이미 전생 같은 나의 청년기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소홀히 흘렀다. 나 또한 아쉽고 슬프지만 변명하지 않으련다. 그런대로 이유와 의미가 있었겠지. 다만 이렇게 쌓아둔 곡들이 앞으로도 적재적소에 등장하길 소망할 뿐. 그럴 터이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어푸어푸.
우선 매 작업이 거듭될수록 이 친구,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인연 같다고 느끼는 중이다. 나의 오랜 기도를 들으셨으리라. 나보다 나의 인생 타임라인을 더욱 세밀히 아시고 이끄시는 분.
우리는 우연히도 독특? 한 ( 나는 뭘 좀 아는, 이라 한다. ) 취향에 아주 절대적인 교집합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타이밍까지 맞아떨어져 순조롭게 손발을 맞춰가는 중이고, 회사 업무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초보 대표의 상황을 배려해 주고, 특히 작업할 때 땅굴 파는 내 방식을 아주 잘 보완해 주는 성격이라 힘이 많이 된다. 쉬이 의심 많은 내가 뭔가 좀 부족한 거 같지 않아?라고 하면 난 좋은데? 난 되려 이런 게 좋더라.라는 식이랄까. ㅋㅋㅋㅋ 어쩌면 이런 다정하고 넉넉한 태도 덕분에 ' 12월엔 '도 세상 밖으로 얼른 나와버렸지 싶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물론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자신의 작품을 너무 좋아하고 만족스러워하는 사람과 그 반대의 사람. 나는 당신들의 짐작대로 후자겠지? 그리고 그는 확신의 전자다. 역시나 다행인 팀구성.
이쯤에서 비눗방울처럼 피어오르는 나의 과거 프로듀서들 이야기로 디졸브.
16살에 처음 만났던 나의 1집 프로듀서는 교포였던 터라 생애 처음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클 잭슨이나 휘트니 휴스턴 같은 슈퍼스타들의 다큐에서나 보던 흑인 코러스 언니들과 곱슬 금발에 흰 셔츠를 입은 오케스트라 컨덕터 등 미국인 뮤지션들에 둘러싸여 정규 1집을 만드는 행운을 누렸었다. 한국인은 나 포함 딱 4명 정도, 정말 열과 성을 다했던 그때 그 전생.
기억나는 몇 씬은 애송이의 사랑을 찌는 여름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천 번 가까이 부르던, 또 고등학생이 좋아할 법한 구버잼을 듬뿍 바른 식빵과 우유를 노래하기 전 늘 준비해 준 프로듀서, 노래하기 전이나 식사 전 늘 감사 기도를 하던 장면 등등. 당시 나는 믿음은 말고 객체 없는 간절함이 그득했던 아이였는데, 이제와 보면 그때 받은 사랑이 그 구체적인 기도의 순간들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 후에도 프로듀서에 따라 얼마나 내가, 또 음악의 방향이 달라지는지, 뮤지션으로서 잠재력이 증폭되거나 아니면 심하게 왜곡 또는 퇴보되는지, 너무 잘 알기에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던 그 중요한 자리. ( 혼자 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 오랜 시간을 담가 우려내주는 동역자가 긴 레이스에는 소중하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기에. )
외로운 길을 함께 걸어주는 음악 메이트. 꽤나 MZ처럼 만난 코와는 지금까지 순풍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터뷸런스가 없는 작업자는 난생처음이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