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sight Queen Dec 13. 2022

(1화) 아이와 함께 사는 세상

1화. 아이를 낳고 첫 50일의 기억

아이를 낳고 1000일이 넘게 흘렀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돌이켜 보면 참으로 대단하고 신비한 일이다. 계속 되는 입덧 때문에 변해가는 체형 때문에 느긋하게, 로맨틱하게 생각할 수 도 없었다. 경력이 단절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스멀스멀 공포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출산일, 수술실에서 아이가 태어나며 내는 첫 울음소리와 표정 그 모든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한층 더 자신있어졌다. 이 세상에서 내가 못할 일은 이제 아무것도 없을것 같은 위풍당당함이 나를 감쌌다.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1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병실에 누워있어야 했다. 부작용 때문인지 아주 작은 티비소리도 크게 들렸다. 전날 수술로 인해 배 윗부분까지 가득 발라진 빨간약을 남편이 정성스럽게 지워줬다. 하반신이 마비 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나의 모든 것이 되어준 그 시간을 떠올리면 우리남편에게 눈물나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람은 이래서 결혼을 해야하나보다. 묵묵하게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신생아실에서 수유콜이 올때 처음으로 젖을 물려보았다. 아주 작은 아기가 손가락도 있고 발가락도 있고 눈도 코도 입도 다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엊그제 배안에 있었던 아이라니 아직 촛점이 안맞지만 내 목소리에 반응하는게 느껴졌다.


작은 입으로 나오지 않는 젖을 빨때는 기분이 이상했다. 아주 예전부터 오랜 시간 전부터 이 아이와는 알던 사이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직접 만난 기분. 나를 닮은 이마. 아이 아빠를 닮은 코. 작은 얼굴안에 모든 가족들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작은 입을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 신기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쑥쑥아. 너의 태명을 부르면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의례 한다는 아기들의 발달 검사를 신청할때는 웬지모를 염려 때문에 잠을 설쳤다. 심장에서 잡음 소리가 들린다던 의사의 팩트-중심적 말에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 엄마는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지레 겁을 먹고 1시간이 넘게 친정엄마를 붙잡고 울었다. 울던 내 모습을 보던 나를 걱정하던 우리 엄마의 큰 눈망울도 곧 눈물이 날것 같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간호사 출신의 원장님에게도 들은 결과 커가면서 나아질 것이라는 말에, 의사 선생님의 진료실까지 달려가 여러번 묻고 안심되는 말을 몇번이고 들은 다음에야 나는 안심했다. 그리고 며칠 뒤 잡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수유실에서 너를 만날 때 마다 얇은 모포를 사이에 두고 네 발을 만지작 거렸다. 이 작고 귀여운 발이 엊그제 내 왼쪽 갈비뼈 아래에서 만져졌던 네 발이었구나. 세상 모든 것을 평화롭게 만들어버리는 아기 냄새. 네 목덜미에서 나는 냄새와 숨소리는 내 마음을 녹여버렸다.


새벽 1시가 넘어 부르는 수유콜에 달려가 너를 안았다. 너와 나 뿐인 조용한 수유실에서 맺은 클래식 FM 라디오와의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듣던 라디오 음악 소리가 익숙해서 일까. 배우지도 않은 피아노를 치는 흉내내는 네 모습을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행복감이 밀려온다.


신생아를 잘 안을 수도 없어서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 안고 걸어나왔던 산후조리원을 퇴소하던 그 날의 막막함을 잊을 수가 없다. 분유는 잘 타겠지만 네가 응가랑 쉬야를 할때 어떻게 안아서 기저귀를 갈아줘야할지 몰랐다. 네 아빠는 만난 이래로 강심장이 아니었던 적 없던 단단하고 강한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봤다고 한다. 작은 네 몸을 어떻게 만져야할지 모든게 조심스러웠다.


잠이 많은 내가 두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수유를 하는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네 아빠가 부지런해서 내가 그래도 많이 쉴 수 있었다. 첫 50일은 아침에 8시 45분에 와주시는 산후조리이모의 초인종 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새벽녘 못 잤던 잠을 보충하느라 이모님이 여러번 초인종을 눌러도 못 일어났던 적이 부지기수였다.


1단계 기저귀는 정말 손바닥만했는데, 금세 2단계가 3단계가 되더니 5단계가 6단계가 되었다. 기저귀 값 2만원이 조금 넘는 돈은 처음에는 부담이 없었는데 끝도 없이 사게되는 것을 보면서 언제 끝날까? 우리 작고 작은 아기가 쉬야를 가리는 그 날이 올까 잠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