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움직이는 자를 좋아한다
나에게는 오래도록 품어온 꿈이 있다.
그 꿈을 피우기 위해 긴 세월 동안 조용히 마음속에 꽃망울을 키워왔다. 하지만 아직 그 꽃은 피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선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살고,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면,
언젠가는 나만의 ‘때’가 오고,
그때 ‘인연’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긴 기다림 끝에 돌아온 건
작은 기회도, 따뜻한 손길도 아닌
텅 빈 실망감뿐이었다.
“그때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
아니, 오기는 오는 걸까?”
불가에서는 말한다.
“시와 절이 맞아야 결실을 맺는다.”
이를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한다.
때가 무르익고, 인연이 맞아야만 일이 성사된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도,
일과 기회의 흐름도,
사랑과 재물의 크기까지도
이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때가 되어 인연이 찾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하고 기다려도 무대는 주어지지 않았다. 때로는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부정직하고 저급한 인간들이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왜 나는 아니지?”라는 서운함이 자주 찾아왔다.
결국 나는 감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감이 저절로 입안에 떨어지기를 바라며,
한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나는 나의 인연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기다림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 자리에만 머무는 기다림은
삶의 핑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꽃은 봄이 와야 핀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 꽃도 피는 건 아닐까?
내가 먼저 햇살이 되고,
내가 먼저 따스한 바람이 되어야
그 꽃망울도 나를 알아보고 기지개를 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멀리 있는 기회를 바라보지 않기로.
누군가가 불러주는 무대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무대는 내가 만들기로 했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걸어가기로 했다.
더 이상 운명을 기다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인연은 결국, 움직이는 자를 좋아한다.
정지된 기다림보다,
작더라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시절인연을 불러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때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먼저 움직이는 용기다.
스스로 봄이 되어야 꽃은 핀다.
그리고 그 꽃은 누군가의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삶을 피워준다.
시절인연은 기다림의 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 나아가는 발끝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