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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 Young Dec 19. 2024

(37)손도장

기억과 역사의 흔적

 손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도구이자 상징이다. 손끝에 새겨진 모든 흔적은 우리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역사를 반영한다. 손은 생존을 위한 노동의 수단일 뿐 아니라, 창조와 표현, 그리고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인간 문명 발전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작은 신체 부위가 가진 의미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문화와 역사 속에서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우리의 손은 곧 정체성을 나타낸다. 손가락 지문은 각자 고유하며, 법적 서류나 도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사용된다. 한 개인의 손은 그 사람의 노동, 능력, 그리고 삶의 궤적을 담아낸다.


 농부의 손에 남은 굳은살은 대지와 함께한 시간을 말해주고, 예술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은 그들의 내면을 드러낸다. 작가의 손은 펜과 키보드를 움직이며 세상을 향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요리사의 손은 정성과 창의성을 담아 음식을 만든다. 이처럼 손은 단순한 생리적 도구를 넘어, 우리의 삶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가 된다.


 역사적으로 손은 중요한 흔적을 남겨왔다. 고대 동굴 벽화에서는 사냥 장면과 함께 손의 형상이 자주 발견된다. 이는 당시 인류가 남긴 첫 기록으로, 자신들의 존재와 활동을 후대에 전하려는 시도였다. 한편, 현대에 이르러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남긴 손도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기억의 흔적을 남긴다. 이들의 손도장은 팬들에게는 꿈과 열정을 상징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매개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독립운동의 길에서 조국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손도장을 통해 후대에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인 흔적을 넘어, 민족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안중근 의사 손도장/인터넷 다운

 한편, 인도의 라자스탄 메헤랑가르 성 정문 벽면동판 에는 31개의 손도장이 남아있다. 슬픔과 희생의 상징이다. 무굴 제국에 맞서 싸운 메와르 왕조의 여인들은 남편이 전사한 뒤 스스로 화장 장작더미에 몸을 던지는'사띠'를 단행하며 손도장을 남겼다.

 

 이 손도장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지켜낸 정절을 담고 있다. 이러한 손의 흔적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생명과 가치를 공유하며 다음 세대에 전하는 메시지다. 나는 이 손도장들을 어루만지며 슬픔에 복받쳐 눈물을 훔쳤다.


 디지털 시대 현대에 들어서 손은 다시 한번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기술과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손은 화면을 터치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도구가 되었다. 과거에는 벽화와 조각으로 흔적을 남겼다면, 이제는 손끝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우리의 삶을 기록한다. 예컨대, 디지털 서명과 지문 인식 기술은 우리가 남기는 흔적을 보안과 신뢰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동시에,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사용하는 우리의 손은 이제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진보 속에서도 손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손은 여전히 인간의 창의성과 의지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문명을 이루는 핵심이다. 건축가의 손끝에서 설계도가 태어나고, 의사의 손길은 생명을 구하며, 음악가의 손가락은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손의 흔적은 형태를 바꿔가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다.


손, 인간 삶의 축소판이다.

손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살아 있는 역사다. 우리는 손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고, 연결하고, 또 기억한다. 손은 우리와 타인을 잇는 다리이며, 그 위에 삶의 흔적을 쌓아 간다. 예컨대, 악수를 통해 우리는 신뢰와 우정을 나누고, 손글씨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전달한다. 또한,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부모의 손을 잡는 순간부터,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는 순간까지 손은 사랑과 인생의 무대를 함께한다.


손끝에 새겨진 우리의 흔적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미래로 이어질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한다. 손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담은 작은 창문과도 같다. 당신의 손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는가? 앞으로 남길 흔적은 어떤 모습일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우리 삶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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