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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Mar 30. 2024

어디갔니, 홈홈 마이 스윗홈

하우스는 있는데 홈이 없다.

이사를 했다.

살던 곳과는 불과 10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지만, 지역이 바뀌었다.

도민에서 시민이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학기를 마치고 가자며 만류하는 나를 무릅쓰고 

전학가겠다 고집을 부렸던 아이들도 학년의 말이자 학기의 말에 전학을 감행 했다.

아이들의 학교는 신도시 답게 유입되는 전학생이 많았다.

'안녕! 나는 XX에서 전학온 OOO이야'를 꿈꾸며 새로운 생활을 기대했던 내 아이들은 

학기 말에다, 이미 그룹이 다 형성된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기를 어려워했다.

잠시 겪어봐도 이전에 살 던 곳보다 아이들의 언행이 험해 다가가고 싶지 않다 했다.

그간 메뚜기처럼 3년마다 이사를 세번 네번 해서 타지에 적응을 잘 해온 아이들이었다.

단 한번도 어려워한 적이 없었던 내 아이들이 전학한지 며칠 되지 않아 울면서 내게 애원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다시 돌아가요! 다시 이사해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는 돌아갈 집도 없고, 상황 상 다시 돌아가서도 안되었다.


나 역시 애절하게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엄마도 빛이 늘어 정말 힘들지만 잘 한 번 버텨볼게, 너희도 딱 2년만 버텨줘.

그때도 지금과 같은 마음이라면 엄마도 여기 정리하고 

너희들을 위해 새로운 곳으로 떠나든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해볼게."


배가 되어버린 부채로인해 더해진 매달 부담해야하는 이자.

그 결과 줄어든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고 늘어난 것은 포기와 미루기이다.


"빨리 2년이 지나면 좋겠어.

나 진짜 이대로 2년을 버틸 수 있을까.

혼자 버티는 게 버거워서 나까지 나자빠지면 안되는데."


집 한 채 얻었을 뿐이데, 그동안 가진 게 없던 내가 덤으로 얹어 받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빚, 불안, 공포, 두려움 등.


내가 30대 중반즈음, 남편의 사업이 망해 수십억짜리 계약이 물거품이 되며 그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나를 속이고 무리를 한 그가 용서되지 않아 이혼을 했고 완전히 끝을 내며 헤어지려했다.

나와 아이를 진창에 구르게 하면서도 엎어져 일어나지 못한 무력한 그가 원망스러웠다.

남편을 탓하고 미워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집안에 압류딱지가 붙었던 게 수치스러웠다. 

불기둥처럼 화가 나고 절망스러웠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는 지금만큼 나약하지는 않았었다.


바닥에 누워 뒹굴며 세상을 잃고 뻗은 그를 두드려 깨워 일으키고

젖먹이까지 있는 내 자식 셋을 챙겨야만 하는 책임이 버거웠지만 버틸만 했다.

남편이 망한 덕에 나는 내 일을 찾아 시작할 수 있었으니, 지나고 보면 그건 또 다른 기회였다.

여자가 아니라 엄마라서 버티는 것이 가능했다고 하기엔 나의 모성애는 그 때도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다만, 가진것이라곤 애셋과 이혼한 남편 밖에 없으니, 더는 지킬게 없어서 마음은 편했다. 

그래서 억지스러운 무리를 하고 모험을 해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 세월을 버티는 사이 행운도 따라와 청약에 당첨되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차도 가졌다.

모두 다 빚을 내어 산 것들이라 내 지분은 핸들 하나, 현관 한쪽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가진 자가 되었고, 잃을 것들이 생겼다.


그래서 무섭다.

겁이 난다.

두렵고 불안하다.


양도 소득세 없이 이 곳을 팔려면 반드시 2년이 지나야 한다.

1주택자이고 내 집은 당연히 9억이 넘지 않고, 시세 차익도 기껏해야 1,2억 남짓 일 테지만.

그 돈은 내가 평생 살면서 여지껏 쥐어보지도 못한 돈이다.

벌어서 모으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그러다보니 지금 내가 사는 이 집은 

내 인생, 더 나아가 내 아이들의 인생까지도 모두 걸려있는 집이 되었다.


그래서 이사를 한 처음부터 이 집이 "홈"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게 있어 내 이름으로 된 이 집은

지켜내야할 소유의 대상이고, 비싼 값에 팔아치워야 할 상품이 되어버렸다.


돈이 없던 목2동 다세대 가구의 전셋집에선 사랑이 넘쳤고, 

나아질 바 없이 부족함이 많았던 목3동 빌라에서는 행복이 흘렀다.

정말 떠올리기만해도 따뜻하고 안정적인 나의 스윗홈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보다 더 비싼 집, 더 비싼 차를 갖고 있음에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어쩌나하며 심장이 벌렁거리는 불안을 겪고 있다.

언제부터 내 집은 하우스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게 되었다.


"2년만 지나면, 좀 한적한 시골 같은데 가서 살고 싶어.

아이들이 다 크기 전에 좀 더 가깝게 붙어서 지낼 수 있는 곳에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


남편에게 말을 하자, 그가 나를 비웃으며 물었다.


"네가? 여지껏 붙잡고 있던 걸 내려놓고 포기를 한다고? 진짜? 정말? 너 그렇게 살 수 있겠어?"


왜 못하냐고,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러냐고 반문하고 싶은데.

울컥. 

눈물이 솟구칠 뿐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전세값이 대출금액만큼만 되면 안팔아도 되지만....."


결국 그에게 내비친 내 대답은 여전히 버리지 못한 내 욕심이 차고 넘친다.

욕심을 버릴 수 없는 나인 걸 그는 너무나도 잘 안다.

부모형제가 두 팔 벌려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아무도 없는 곳에 애를 쓰고 기를 쓰고 용을 쓰며 버티고 있는 나는 사실 욕심쟁이이다.


나는 망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금의 환향을 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도 버겁고 힘들어서 간절하다.

시골살이라도 좋으니 내 아이들과 살 부비며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따뜻한 집이 너무나도 고프다.


다시 나의 홈을 찾고 싶다.

홈. 홈. 마이 스윗 홈.


너무 늦지 않게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길.

부디 강제가 아닌 자의에 의해 욕심을 버릴 수 있는 2년 후까지 내가 잘 버텨낼 수 있길.

나의 하우스가 홈이 되는 그 날까지 최선과 열심을 다 해봐야겠다.

이렇게 버티다보면 어쩌면 하우스도 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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