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산타는 없거든

괜찮아, 울어도 돼.

by 춘프카

산타 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나는 조금 일찍 알았다. (깨닫게 된)그날의 기억. 7살, 유치원 다닐 때였다. 크리스마스 전날 선생님은 예쁜 색지를 우리에게 한 장씩 나눠주셨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쓰세요.”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신다는 엄명을 듣고 눈물도 자주 삼켰다. 연필을 잡고, 꾹꾹 눌러썼다. 평소 갖고 싶었던 게임기를 색지에 써놓았다.


다음 날, 선생님이 호명한 순으로 한 사람씩 나와서 선물을 받아 갔다. 선물을 뜯던 친구들은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색지에 써놓은 선물을 가져다 줬다며 껑충껑충 뛰었다. 선생님의 입에서 드디어 내 이름이 나왔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선생님 손에 쥔 선물은 한눈에 봐도 게임기의 사이즈라고 하기엔 너무 커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 선물을 잡았다. 한쪽 구석으로 가져와서 포장된 선물을 뜯기 시작했다. 포장지를 다 벗기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예상한대로 게임기가 아닌 익숙한 인형 하나였다. 우리 집 한 구석에 놓여있던 거였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부끄러워서 참았다. 주위 친구들은 내 선물을 보고 “너 취향 독특하네.”라고 말했다. 나는 답변했다. “그래, 난 남자답게 인형을 썼다. 부럽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는 것도.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 여동생은 나처럼 유치원에 갈 수 없어서 집에 있다는 것도. 집을 들어가니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는 듯 했고, 나는 태연한 척 별말 없이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누워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시간이 제법 지나서 다 기억하진 못한다. 다만 ‘절대 크리스마스라는 핑계로 엄마한테 무언가 요구하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우리 집 형편은 나아졌고, 내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버는 어른이 되었다. 그때는 아팠지만, 지금은 괜찮다. 덕분에 상상속의 산타는 희미해졌지만, 그 사이로 사랑하는 가족이 보였다. 산타 할아버지는 믿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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