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후회로 바뀔 때 사람은 늙는다.
2019년 8월 5일 월요일 저녁 8시
고향 집에서 여름휴가 중
친구를 만나기 전, 집 앞 편의점을 들렸다. 입구 문을 들어서자 내 시선으로 익숙하고 그리웠던 한 남자가 판매대에 서있었다. 7년 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차장님이었다. '왜 회사가 아닌, 이곳에서 일하고 계실까?' 짧은 몇 초 사이 궁금해졌다.
"차장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아... 이름이 뭐였지? 아, 기억난다. 진짜 오랜만이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반가웠지만 동시에 어떤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머뭇거리는 내 모습에 차장님은 먼저 침묵을 깼다.
"그래. 글은 계속 쓰고?"
"네, 계속 쓰고 있어요. 덕분에."
"덕분은 무슨. 내가 너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순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말씀해주신 한 마디가 큰 용기가 되었다고.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취업했다. 여러 업무를 경험했고, 일하시는 분들도 좋았다. 때때로 거친 입담을 자랑하시는 사장이 불편하긴 했지만, 제때 들어오는 월급을 확인하며 대충 넘겼다. 사회초년생에겐 적지 않은 월급이었다.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진급까지 했다. 나름 괜찮은 첫 직장생활이었다. 딱, 여기까진 좋았다. 내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제외하곤.
남몰래 품었던 꿈은 3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글을 쓰고 싶었고 이왕이면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지망하던 언론사는 딱 하나였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기사 쓸 수 있는 그곳. 하지만 이미 다섯 번째 낙방 한 뒤였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그 누구에게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멋진 결과로 내 꿈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번번이 무너졌다.
운이 좋았을까, 아니면 나빴을까. 그토록 지망하던 언론사는 시야에서 멀어지는데, 별생각 없던 회사에 덜컥 합격했다. 내게 생전 처음으로 ‘졸업 전 취업’이라는 미션을 선사하신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선물 같은 결과였다.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다짐했다. ‘그래, 일단 입사하자. 퇴근하면 계속 준비하자. 1년 안에 승부 내자.’
주경야독. 퇴근과 동시에 도서관을 찾았다. 새벽 1시까지 공부하고 글을 썼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주변에 말했지만 힘들었다. 눈에 띄는 향상도 없었다. 박카스를 물 마시듯 마셔도 체력적인 한계는 극에 달했다. 업무는 계속 늘어 출근 시간은 점점 당겨졌고, 퇴근 시간은 도통 가늠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치른 시험에도 낙방. 그저 울고 싶었다.
처음부터 헛된 꿈은 아니었을까. 헌책방에서 책 한 권 읽었다고, 글 쓰는 삶과 기자를 동경하다니. 세상에 실력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경쟁상대로 낄 수도 없을 그 무대에서 용쓰고 있지 않았을까. 할 만큼 했으니, 단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지금 직장에서 자리 잡고, 적당한 때에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고 그렇게 늙어가는 삶도 나쁘지 않을 텐데. 내 인생에서 굳이 등장할 수 없는 장면을 그렸을까. 아픈데, 더 아프고 싶은 날이었다.
그때였다. 온종일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던 나를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현 직장에서 11년을 근무했고, 몇 개월 뒤 셋째를 출산하는 삼 형제의 가장. 늘 온몸에 공장 기름 냄새로 가득했던, 그걸 훈장같이 여기던 분이었다. 내 곁으로 다가와 “퇴근하고 뭐하냐. 소주 한잔하자.”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기운을 빌렸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꿈을 말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과정과 심정도 읊조렸다. 말없이 한참을 듣던 차장님은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나는 조용히 소주잔만 기울였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삼겹살은 하염없이 탔다.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차장님은 내게 말했다. “네 삶을 살아라. 후회하지 말고. 결정할 때다. 아무도 탓할 사람 없다. 선택을 믿고 가라. 그게 전부다.” 더듬거렸지만, 진심이 담긴 그 말에 저릿한 무언가를 느꼈다. 당시 마주했던 문장도 떠올랐다.
사람은 꿈이 후회로 바뀔 때
비로소 늙는다.
그때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늙지 말자. 어떻게든 해보자. 노력했던 지난 시간과 고생한 내게 기회를 주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괜찮다. 후회만 남기지 말자.
심각한 표정으로 3시간 가까이 소주잔을 비웠던 차장님은 다음 날 내게 “어제 무슨 말을 했었지? 기억이 안 난다.”라고 말했다.
이후, 내 삶을 살았고 그 동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다니던 첫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꿈을 향해 뛰어들었다. 우연한 기회로 언론단체에서 일하게 되었고, 월급은 3분의 1로 줄었지만 행복했다. 즐비하게 놓여있는 전문 서적을 읽으며 공부했다.
매일 읽고 쓰다 보니, 삶이 특별해졌다. 여러 기회가 닿았다. 정기적으로 칼럼을 썼고, 문화방송 시사 라디오 DJ로 활약했다. 글쓰기 및 동기 부여 강연도 진행하고, 청춘의 절반 이상을 채웠던 아지트 ‘영록 서점’ 박희찬 대표님을 수차례 인터뷰하여 인문학 강연을 준비하고 독립출판물도 만들었다.
차장님도 많은 일이 있었다. 몇 년 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회복 기간 도중 다니던 직장이 부도났다.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하여 다른 곳으로 이직했고 아르바이트로 월, 화, 수 편의점에서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일한다. “우리 첫째 아들이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다. 시간 빠르지?”
큰 파도가 밀려왔지만, 덤덤하게 말하는 차장님은 예전과 그대로였 다. 고단한 삶이지만 몸에 잔뜩 배어있는 기름때를 훈장처럼 말하던, 그걸 자랑으로 여기던 장면이 떠올랐다. 멋진 남자. 편의점으로 계속 들어오는 손님 덕에 긴 대화는 못 나눴지만 서로 바뀌지 않은 번호를 확인했다.
“종종, 연락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뭘. 네 삶을 살아라, 안 까먹었제?”
거짓말쟁이.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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