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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Jan 04. 2022

저릿한 자극을 주는 남자

『유일한 일상』3부 : 아버지와 샌드위치

벚꽃이 흩날렸고, 나는 스무 살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그 낯선 긴장감이 좋았다. 조금은 어설펐지만 마음은 늘 고무되어 있었다. 평소 대화를 곧잘 나누던 선배는 대뜸 내게 누군가를 만나러 가자고 말했다. 나는 여자 친구라도 소개해주는 거냐며 망설임 없이 따라나섰다. 날은 점점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왔다. 비슷하게 닮은 골목길을 미로처럼 지났다. 축축한 공기가 맴도는 곳에 이르렀다. 선배는 목 적지에 도착하자 능숙하게 삐걱거리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곧 TV 잡음이 들렸다.『개그콘서트』로 기억하는데 방송에서 나오는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따라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방은 몹시 어두웠고, TV에 나오는 불빛을 통해 웃는 사람의 표정을 흐릿하게 살필  수 있었다. 그때,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웃고 있는데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어 흘러내렸다. 나는 놀란 나머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선배는 조용히 다가가 이름을 부르며 “학교에서 또 친구들이 괴롭혔어요?”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또 웃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아팠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가슴이 먹먹했다. 짧은 대화를 통해 이제 막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왔으며, 학교에서는 지독한 왕따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에 이사를 거듭했다. 어머니는 이내 집을 나갔다. 아버지와 두 형제만 남았다. 모든 것이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나는 밥 먹듯이 그 집을 드나들었다. 고생해서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그에게 맛있는 순대나 떡볶이 등 음식을 사줬다. 먹성은 얼마나 좋았던지, 늘 먹여도 배고프다고 난리였다. 때때로 차비까지 다 털어서 사줬다가 집까지 한참을 걸어갔던 적도 있었다. 가끔 주말이면 함께 등산을 다녔고, 목욕탕에서 등도 서로 밀었다. 괴롭히던 친구들도 몰래 만났다. 두 시간가량 대화를 지속했다. 오해했던 지점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학교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또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내게 진로와 관련하여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따뜻하지만 엄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00 씨는 공부와는 먼 사람이잖아요. 대신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 꾸미는 데 관심 많은 사람이니까 그쪽으로 한번 찾아보는 게 어때요?”라고 답했다. 며칠 고민하더니, 미용고에 진학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내 합격했다. 


사람과 대화하는 데 서툴렀던 그는 말 더듬는 버릇이 심했다. 그걸 고쳐주고 싶었다. 매주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3회 이상 만났다. 함께 신문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하며 토론을 지속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더듬거렸지만 혼내지 않았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 말만 해줬다. 내가 스물두 살에 입대를 했으니, 그전까지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늘 그렇게 만나 대화했다. 입대 전날에는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나 가 족들보다 더 펑펑 울며 내게 매달렸다. “돌아오실 때까지 더 멋진 모습으로 있을게요.”라고 어김없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사히 군 제대 후, 그를 만났다. 헤어숍 스태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은 더듬거렸다. 또다시 시작했다. 신문을 읽고, 서로 대화를 나눴다. 어느새 서로 술도 오갈 수 있는 연령으로 성장했기에, 때때로 술잔을 부딪쳤다. 늘 그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고, 나는 시크하게 다른 말로 넘겼다. 시간이 흘러 그가 처음 디자이너가 되어 내게 명함을 건네줬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괜히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우린 긴 세월을 함께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5년 전라도 광주로 오게 되었던 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나를 배웅했다.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지 마요, 왜 그래요. 다른 사람들 보면 오해하겠다.” 정말 그럴 만한 장면이었다. 또 그는 약속했다. 더 성장하겠다고.  이후로 5년이 더 지났다. 이제 그는 내게 선배 유튜버의 입장으로 매일  질책한다. “편집이 좀 부족하잖아요!” “자막을 좀 넣으세요.” 등등 잔 소리가 들끓는다. 


오늘도 한참 잔소리와 핀잔, 간헐적인 격려(?)를 듣다가 문득 이 사 람과 관련된 추억을 써보고 싶었다. 쓰다 보니 두서없이 길어지고야 말았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주변 분들에게 다양한 핀잔도 들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때 당시 나도 어렸으니까 별다른 답변 대신 “그냥”이라고 응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에게 해줬던 모든 격려는 되려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성장했다. 스무 살 첫 일기장에, 서른이 되면 좀 근사한 남자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썼는데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비슷하게 가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생각한다. 여하튼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나는 매일 그에게 핀잔을 듣게 될 예정이다.


p.s 몇 해 전, 쓴 글인데요. 그는 디자이너에서 이제 원장이 되어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개 영상  https://youtu.be/ah1jXl4MaGo

알라딘 인터넷 서점 http://aladin.kr/p/0fT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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