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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May 28. 2023

늦은 새벽, 오은 시인과 곽진언

1. 충혈된 눈은 도통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읽다 접어둔 오은 시인의 '없음의 대명사'는 한쪽 구석에서 내 손길을 기다린다.


매일 무능을 직시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의 목소리와 어렵게 입수한 수백 장의 문건들. 여러 차례 확인을 거쳐 끄적이듯 취재노트에 기록한 흔적과 사유. 덧붙여 서로 다른 입장까지. 머릿속에 잔뜩 채워둔 그것들을 다시 글로 풀어내고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장을 다듬는 모든 순간까지. 나는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된다.


가끔 마감의 압박보다 더 괴로운 순간이 있다. 끙끙대며 수정을 거듭한 기사가 다시 읽었을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 괴롭다. 분명 다 썼는데, 개운하지 않은 느낌. 그럴 때마다 혼자 한숨을 내쉰다. 언제쯤이면 그런 날이 올까. 단번에 빠른 속도로 이해하기 쉽고 선명한 문장으로 기사를 써낼 수 있을까.


어렵게 사연 말하는 그들을 내가 느낀 시선과 가슴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데, 여전히 부족한 실력을 부끄럽게 탓한다.


2.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화장실에 갔다


혼자는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었다가

사람들 앞에서는

왠지 부끄러운 것이었다가


혼자여도 괜찮은 것이

마침내

혼자여서 편한 것이 되었다


화장실 거울은 잘 닦여 있었다

손때가 묻는 것도 아닌데

쳐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볼꼴이 사나운 것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처럼

웃다가 그만 우스꽝스러워지는 표정처럼


웃기는 세상의

제일가는 코미디언처럼


혼자인데

화장실인데


내 앞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었다


오은 '없음의 대명사' 중에서


3. 곽진언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https://youtu.be/t59yGMGn60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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