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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Jul 07. 2023

한 학생이 물었다…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 할 거예요?"


몇 해 전이었다. 아는 분 소개로 지역아동센터에서 초등생(4~6학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 수업은 특별하지 않았다. 공통 주제를 알려주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쓰도록 했다. 분량 제한도 없었고 맞춤법이 틀려도 지적하지 않았다. 총 16차례 진행된 수업에서 내 목표는 딱 하나였다. 모든 과정을 마치면 아이들이 ‘글쓰기는 좋은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면 하는 정도였다.


그날은 세 번째 수업이었다. 주제는 '과거'였는데 유독 감수성이 풍부해 몇 차례 나와 손 편지를 주고받았던 아이가 물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내 주변 친구들도 분주하게 끄적이던 연필을 멈추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떤 근사한 말을 원하는 것 같았다. 심심한 답변을 내놓으면 무척 실망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소신껏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거든."


답변이 끝나기 무섭게 적당한 비명과 고함, 야유가 들려왔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선생님이 비록 나이 든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이래 봬도 산전수전 다 겪어봤는데 겨우겨우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건 좀 가혹하지 않느냐고... 물론 되돌아봤을 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잔상은 남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만족할 정도로 충분한 결과를 얻은 것도 아니고 자주 실패하기 바빴던 지난날이지만, 그래도 썩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질문을 했던 아이는 도저히 못 참겠던지 씩씩 거리면서 외쳤다. "쌤, 알겠다고요. 그런데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시냐고요!" 그 울분에 못 이겨 두서없이 말했다.



글쓰기를 더 일찍 사랑했을 것 같다. 학창 시절 내내 일기를 써왔지만 혼자 읽는데 그쳤다. 블로그도 일찍 시작해서 차곡차곡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을 더 힘껏 기록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스무 살을 넘기기 전에 첫 책을 출간하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번째 스무 살을 맞으면 학업은 밤으로 돌리고 낮에는 작은 신문사라도 들어가 곧장 경험에 투자할  같다. 물론 돈도 벌면서. 회사의 규모나 질에 상관없이 곳에서 1 기자가   군대에 입대하고 제대하면 곧장 애정하는 정통시사주간지에  번만에 합격할 것이다. 쓰고 싶은 취재 아이템을 하루에도 수십  끄적이며 아이템 고갈의 압박 없이  충만하게 일하고  사랑하겠지.


아 그리고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내 손가락에 남는, 허물없이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는 한두 명이면 족하더라.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그들에게 계속 더 집중할 것. 그리고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인데 더 빨리 전라도 광주로 향해서 그녀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 사랑하는 아들도 더 일찍 만나고. 조금은 더 체력이나 능력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주름살이 덜 있는 아빠이자 남편이 되고 싶다.


그쯤이면 아는 선배가 물을 거다. 어리지만 밝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글쓰기를 가르쳐보면 어떻겠냐고. 그럼 니들을 다시 만나 지금보다 더 근사한 쌤의 삶의 일부를 소개해줄 수 있지 않을까.  


막상 주절주절 말하고 나니 얼추 비슷하게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헛. 이것은 자뻑일까.


혼자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아이들이 잠깐 입을 벌리며 감탄하다가 뭔가 쓰고 싶은 게 생겼는지 경쟁하듯 끄적이기 시작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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