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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Dec 17. 2022

문명의 창시자로서 디오니소스

인류 문명(civilization; 文明)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문명이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기술적·사회구조적 발전을 말한다. 즉, 인류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시킨 세련된 삶의 양식을 뜻한다. 한자 번역어 文明(문명)에서 文은 만물을 인식하는 사람의 언어를 말하고, 明은 어둠에 대비되는 밝음을 뜻한다. 즉, 인식의 주체인 인간이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인류의 물질적 산물을 밝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문명은 인류와 자연이 경쟁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유리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만을 위한 것만도 아니다. 자연은 인류를 비롯한 미생물을 포함해 온갖 동식물의 종을 위한 포괄적인 거대한 환경이다. 인간은 이 거대한 자연에서 생존에 위협적인 온갖 시련을 겪는다. 인간은 이 시련을 극복하여 인류에게 유리하게 이 자연환경을 개조해야 했다. 인류는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자연을 극복하여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신석기 혁명에서 시작된 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기원전 3,000년경 전후에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해 이집트, 인도, 중국의 큰 강 유역에서 문명이 탄생한다. 이런 문명을 세계 4대 문명이고 하고,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이라고 부른다. 

세계 4대 문명

그렇다, 문명은 농업혁명이 그 근간이 된다. 기원전 8,000년경 오늘날의 이집트에서 시리아를 거쳐 이라크와 이란에 이르는 중동의 반원형 구역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수렵채집인은 매우 생산성이 높거나 맛있는 야생 곡물과 콩에서 씨앗을 구해서 작은 공터에 옮겨 심었다. 그리곤 다시 수렵채집 생활로 돌아가 생활하다가 주기적으로 다시 돌아와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면서 곡물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 양이 충분히 많아지면서 수렵채집 생활을 정리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얼마 후, 중국의 황허강과 양쯔강 계곡에서 밀, 기장, 쌀 재배나 아메리카에서 옥수수 재배와 같은 비슷한 과정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농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런 농업혁명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하지만 슬링거랜드 교수는 농업혁명이 문명을 이끌었다는 부분에 이의를 제기한다. 물론 이런 이의 제기는 슬링거랜드 교수의 독자적인 생각은 아니고 1950년대 무렵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생각이다. 일반적으로는 우리는 ‘농업 ⟶ (술) ⟶ 문명’이라는 공식을 따른다. 농작물이 충분히 생산되면서 초창기의 농부들은 다음 해에 먹도록 농작물을 비축하게 된다. 빵을 만들려고 곡물을 으깨어 물에 담가 두고는 깜빡 잊는 일이 발생한다. 물과 섞인 으깬 곡물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변했다. 맛을 보니 특이하고 냄새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 맛과 냄새에 익숙해져 먹다 보니 취하게 되었다. 이것이 술 발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농사를 완전히 터득한 뒤 우연히 알게 된 술 정체를 알고 그때부터 의도적으로 담가 마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술은 농업 이후에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농업혁명에서 술은 크게 중요한 현상이 아닌 우연한 사고로 인한 부수적인 것이었다. 공식 ‘농업 ⟶ (술) ⟶ 문명’에서 ‘술’에 괄호를 친 것은 술의 부수성과 우연성을 나타낸 것이다. 어쨌든, 농업 이후에 술이 우연히 만들어지고, 이런 농업이 결국 문명을 이끌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슬링거랜드의 《취함의 미학》에서 그 순서를 ‘술 ⟶ 농업 ⟶ 문명’로 재배열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공식에서는 ‘술’에 괄호가 없다. 이는 ‘술’이 농업과 그 이후의 문명에 필연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공식은 농업 이후에 문명이 시작되었지만 농업 이전에 술이 있었기에 사실은 술이 문명을 이끌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실 이런 배열 순서의 기반은 1950년대 무렵 ‘빵보다 맥주가 먼저(beer before bread)’ 가설이다. 이 가설에서는 다양한 증거를 바탕으로 농업 이전에 술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술을 마시며 벌이는 대대적인 잔치가 농업이 정착되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예는 현대 튀르키예에서 발견된 유적인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에는 곡물 저장고나 다른 식품 저장 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수렵채집인은 기원전 1만 년에서 8천 년 내내 정기적으로 모여 가젤이라는 야생동물을 마음껏 먹고, 원형 구조물을 건축하며, 신비로운 그림문자와 동물 모양으로 새겨진 거대한 T자 모양의 석회암 기둥을 세웠으며, 어쩌면 그 당시 모두 술에 거하게 취했을 것이다. 이처럼 괴베클리 테페는 농업의 출현보다 앞서기 때문에 확실히 11,000년 이상 전에 수렵채집인이 만들었을 것이다. ‘빵보다 맥주가 먼저’ 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40갤런(약 151리터)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돌 웅덩이, 흩어진 술잔의 잔재, 야생동물을 마음껏 먹는 성대한 잔치의 증거와 함께 이 유적지를 고대 인류가 어떻게 처음으로 취함과 의식을 통해 대규모 집단으로 모이게 동기부여 되었고 그다음에 농업이 출현했는지를 보여주는 실례로 간주한다.

괴베클리 테페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연구하던 고고학자들은 가장 초기의 유적지에서 사용되는 특정한 도구와 재배되는 곡물이 빵보다 술을 만드는 데 더 적합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최근의 발견에서는 14,400년 전 요르단 북동부의 한 지역에서 술이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나왔다. 이는 농업의 출현보다 적어도 4천 년 앞선 것이다.


술 생산이 농업을 선행하는 동일한 패턴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테오신트라고 불리는 옥수수의 원종(原種)은 농부들이 적당한 옥수수를 생산하기 훨씬 전인 9천 년 전에 중남미에서 재배되었다. 테오신트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역에서 여전히 마시는 맥주 같은 음료인 치차의 기초이다. 어떤 학자들은 호주에서 취성이 있는 피처리(코르크나무의 잎이나 잔가지를 말려서 만든 흥분제)의 성분을 재배하려는 욕구가 특정 지역에서 농업 발전을 이끌었다는 증거를 지적했다. 이와 비슷하게, 북미와 남미에서, 특히 토착 분포구역 밖의 지역에서 행해진 담배 재배가 다른 식물 종을 교묘히 다루어 농업을 시작하게 하는 데 영감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술에 취하려는 욕구가 농업을 발생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액체 신경독이나 흡연 가능한 신경독에 대한 우리의 취향, 즉 전전두피질(PFC)의 기능을 일시 정지시키는 편리한 수단에 대한 취향이 농업의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취성물질은 우리를 문명으로 유혹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명화를 가능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취성물질은 인간에게 적어도 일시적으로 더 창의적이고 문화적이며 공공적이게 함으로써, 즉 유인원 본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곤충처럼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 인간에게 진정으로 대규모 집단을 형성하고, 점점 더 많은 수의 동식물을 길들이며, 새로운 기술을 축적하고, 그리하여 우리를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초대형 동물로 만들어 준 뻗어나가는 문명을 창조하게 했던 스파크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엄청 많은 술을 마시고 유혹하는 피리를 부는 디오니소스가 바로 문명의 창시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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