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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Dec 15. 2022

술의 이중성

술은 이성이라는 적을 물리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술은 구하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리고 어젯밤에 마신 술로 인해 다음날 겪게 되는 숙취는 예상이 되고, 숙취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술은 전전두피질(PFC)을 공격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술취함의 양상은 두 가지 단계를 거친다는 점에서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 먼저, 상승 단계는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아짐에 따라 흥분과 가벼운 행복감을 느낀다. 이는 알코올이 흥분 전달 물질인 도파민과 행복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방출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알코올이 코카인과 같은 순수한 자극제의 효과를 모방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알코올은 진통 효과를 가지는 엔도르핀의 방출도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알코올은 진통 효과를 제공하고 전반적인 기분을 좋게 하며 불안감을 줄여주는 가벼운 형태의 모르핀과 비슷하다.


하강 단계에서는 혈중알코올농도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감소하면서 술은 뇌 기능을 억제하는 효과를 본다. 알코올의 억제 효과는 뇌의 세 가지 부위에 집중된다.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PFC), 해마(hippocampus), 소뇌(cerebellum)가 그 부위이다. 해마는 기억력과 관련 있고, 소뇌는 기본적인 운동 기술과 관련 있다. 이 둘 다 알코올의 표적이 되므로, 술취한 사람이 하룻밤 흥청망청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몸을 가누지 못해 넘어져 꽃병을 깨뜨리고 다음 날 아침에 꽃병이 어떻게 깨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의아해한다. 마지막으로, PFC는 추상적 추론과 ‘인지 제어’를 위한 자리이다.

전전두피질, 해마, 소뇌

인지 제어에 관해 PFC의 핵심 동맹자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ACC)이다. ACC는 충돌하는 정보를 처리하고 다른 생각이나 행동 사이의 충돌을 해결하는 뇌의 능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부위이다. ACC는 특히 의사결정과 문제해결의 맥락에서 감정적 반응의 조절에도 관여한다. 이러한 ACC는 일종의 운동장 감시 장치로서, 세계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기능을 한다. 한겨울 어느 아침에 출근하려고 문을 나섰다가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려 할 때, 이 비틀거림을 알아채고, 보통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우리의 운동계를 PFC가 넘겨받도록 신호를 보내는 것이 바로 이 ACC이다. 이제 PFC는 우리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동작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PFC의 제어를 당하는 우리의 걸음걸이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운동계는 그 자체의 장치에 맡겨둘 때 가장 잘 작동한다. 그런데 운동계가 아닌 PFC가 인지 제어하면서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빙판길에서 위험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PFC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미끄러져 넘어져 크게 다치는 일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PFC와 ACC

술취한 사람이 갑자기 빙판길을 걷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술 취한 사람이 빙판길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상황에서도 ACC는 PFC에게 문제가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술취한 사람은 PFC가 손상되어 문제의 신호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전처럼 걷는 행동을 계속하고 결국 미끄러져 넘어지게 된다. 


사실 술은 PFC만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술은 ‘약리적 수류탄’에 가깝다. 즉, 술은 사실상 주변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술에 취했을 때 ACC가 보내주는 경고 신호를 PFC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술이라는 수류탄이 뇌에서 터뜨려져 일어난 다양한 폭발로 인해 악화된다. 술취함에 영향을 받는 또 다른 대표적인 뇌 부위는 편도체(amygdala)이다. 편도체는 동기와 기억, 주의 및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이다. 그래서 우리는 술에 취하게 되면 편도체가 손상되어 두려움을 비롯한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기능이 약화되어 부정적인 자극이 실제로 어떤 일을 유발할지에 대해 무감각하게 된다. 그리고 주의(attention)가 즉각적 순간으로 좁혀져서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작동 기억과 인지적 처리 속도도 감소한다. PFC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도 손상된다. 마지막으로, 취함의 상승 단계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 급증을 경험하는 사람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느린 PFC와 ACC 팀이 경고 신호를 보내더라도 일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만 보면 술은 절대 마셔서는 안 되는 약물과 같은 것처럼 비친다. 술을 마시지 않고 이성의 지배를 받고 산다면 우리는 전혀 다칠 일이 없다. 어떻게든 외부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ACC가 경고 신호를 보낼 것이고, 맑은 이성의 PFC가 그 신호를 받아들여 더디긴 하지만 안전하게 우리의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 출근길에 빙판길이 미끄러울 때 술에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ACC와 PFC가 잘 협력하여 우리는 넘어져 다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사무실까지 가는 데 시간은 길이 미끄러지지 않을 때보다 더 걸리긴 할 것이다.


그렇다. 이성의 힘으로만 작동할 때는 ‘시간이 더 걸린다.’ 술은 문화라는 동굴에서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창의성, 협동성, 공공성을 얻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술 없이도 이 세 가지 특징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특성은 이기적인 영장류가 얻어내기는 어려운 것들로서, 번뜩하는 창의성의 순간을 얻고 이기심과 사리사욕을 없애 서로 협력하고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성을 잠시 내려놓고 감정과 정서가 잠시 등장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때 가장 편리하고 위험성이 예상되고 저렴한 것이 술이고, 그런 술취함이 인간 생존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슬링거랜드 교수는 이야기하고 있다. 


PFC는 진화상 가장 신기한 뇌 부위이고, 발달상 가장 늦게 성숙한다. PFC는 또한 틀림없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충동을 제어하고 장기 과제에 집중하며 추상적으로 추론하고 욕구 충족을 미루며, 우리 자신의 활동을 감시하고 오류를 정정하는 능력이 없다면 삶이 어떨지 상상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는 특정한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관해, PFC는 적이다. 취하는 것은 인지 제어에 대한 대항 수단이다. 즉, 취하는 것은 창의성, 문화적 개방성, 공공의 유대감에 대한 적인 PFC를 일시적으로 무력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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