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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Dec 01. 2022

아이의 마음 되찾기

가상적 청년

《취함의 미학》에서는 아이의 마음을 되찾는 방편 중 하나가 술에 취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아이’라는 말이 나오니 대학 때 읽었던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1844~1900)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내용이 생각난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변화 단계를 이야기는 부분이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세 가지 단계로 변화한다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단계는 낙타의 단계이다. 낙타는 주인에게 절대복종하고 비판하지 않으며 겁이 많다. 두 번째 단계는 사자이다. 사자는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과 자신이 사막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고자 한다. 낙타의 단계에서는 주인의 말에 무조건 순종했지만 사자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려고 한다. 사자의 단계는 상당히 고독하고 불안함이 엄습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어린아이의 단계이다. 니체는 궁극적으로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아이는 매 순간을 즐기고, 나쁜 일도 금방 잊어버리는 순수함을 지녔다. 어딘가에 구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모습을 통해 삶을 이끌어 나가려 한다. 니체의 말을 빌려보자.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은 문화라는 동굴에 갇혀 사는 이기적인 영장류 동물이다. 이런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창의적 동물이어야 하고, 문화적 동물이어야 하고, 공공적 동물이어야 한다고 슬링거랜드 교수는 말한다. 이 세 가지 동물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성과 논리와 합리성의 부재이다. 즉,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 PFC)의 작동이 일시 중단된다는 것이다. 전전두엽피질은 완전히 발달하고 충분히 성숙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20년이 훨씬 넘게 걸린다. 전전두엽피질의 미완성은 감정과 정서가 지배하는 아동기의 특징이다. 바로 이게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의 특징이다. 어린아이가 매 순간 즐기고, 순수하며,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PFC의 지배를 받지 않고 감정과 정서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태적 지위인 문화의 동굴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창의적이고, 문화를 흡수하고 전달하며, 타인을 신뢰하고 자신을 헌신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어린아이처럼만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한다. 아침에 억지로 일어나서 직장에 출근해서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퇴근하고 집으로 와서는 저녁을 먹고 다시 잠을 잔다. 그다음 날 또다시 오늘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우리 성인들은 직무에 집중하고 산만함과 유혹에 저항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인 인지 제어(cognitive control)가 발달해 있다. 이 인지 제어 능력은 PFC가 완전히 성숙한 성인에게서 발휘되는 이성적 능력이다.


어린아이들은 사실 우리 어른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하듯이, 어린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아직 쓸모 있는 존재는 아니다. 즉, 어린아이를 믿고 어떤 일을 맡기고 나서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가령, 어머니가 가스레인지를 켜고 보리차를 끓인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어머니가 가스레인지를 켜 놓고 어린아이에게 주전자가 끓으면 가스레인지를 끄라고 말하고 출타를 할 때, 그 후에 일어날 일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그런 상황에서 어린아이를 믿고 맡기기보다는 가스레인지를 끄고 돌아와서 보리차를 다시 끓인다.


어린아이가 창의적 동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창의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특허를 어린아이가 받는 경우는 없다. 또한 성인 발명가가 자녀로부터 아이디어를 빌리는 사례도 찾기 힘들다. 성인은 때때로 아이들이 불쑥불쑥 내뱉는 두서없는 말이나 행동에서 영감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유용하고 실용적인 문화적 혁신을 인식하고, 창의적인 약진을 이용하고, 통찰력을 상품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그런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즉, ‘실용적인 성인의 아이 같은 마음’이 문화적 혁신의 열쇠가 된다. 문화적 혁신은 그냥 아이의 마음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이 문화를 발전시킬 실용적인 능력을 가진 성인이 참여해야 한다. 즉, 실행 가능한 문화적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이상적인 사람은 어른의 몸을 가졌지만 짧은 기간 동안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뇌와 몸은 성인이어야 하지만 마음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이기적이고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유인원임에도 불구하고 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으로서 훌륭하게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인간 성인은 인지 제어의 자리인 PFC가 온전히 성숙한 동시에 아이 같은 마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몸과 마음 모두 다시 실제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아이 같은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우리는 아이처럼 창의적이고 낯선 사람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만, 성인처럼 하기 싫은 업무를 하기 위해 힘겹게 아침에 일어나 제시간에 출근도 해야 한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 제시간에 출근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영적 완벽함이나 도덕적 완벽함이 아이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라고 했다. 〈마태복음〉에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하리라”고 선언한다. 《도덕경》이나 《노자》에서는 완벽한 현자를 완벽하게 개방적이고 세상을 수용하는 유아나 어린아이에 비교한다.


그러면 몸과 뇌는 성인이지만 마음은 아이인 이 ‘가상적 청년(virtual youth)’이 되는 방법이 뭘까? 완전히 실용적인 성인에게서 일시적이지만 강력하게 아이 같은 창의성과 수용력을 증진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명상이나 기도도 그런 방법이다. 그러나 더 빠르고 더 간단하며 훨씬 더 대중적인 것은 뇌의 발달과 인지적 성숙을 일시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화학물질인 술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취함의 미학》에서 성인이 아이 같은 마음을 되찾는 방법으로 술취함을 추천하고 있다. 문화의 개념이 개입하는 순간 니체가 말하는 아이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순진무구 창의성은 정답이 아니다. 그때는 ‘실용적 창의성’이 정답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실용적 창의성을 위해 니체의 아이 같은 마음을 갖고 와서 술취함의 개념을 추가한다. 성인의 이성은 이제 문화에서 실용적 창의성을 위해 ‘술취한 이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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