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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Dec 08. 2022

왜 하필 술인가?

사리사욕으로 가득한 영장류인 인간이 문화라는 동굴에 살게 되고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세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창의성, 협동성, 공공성이다. 이런 문화에서 생존하기 위해 영장류인 우리 인간은 창의적 동물이어야 하고, 문화적 동물이어야 하고, 공공적 동물이어야 한다. 이성의 응결체인 사리사욕을 가진 인간이 되어서는 이런 동물이 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슬링거랜드 교수가 《취함의 미학》에서 제안하는 방식이 ‘술취함’이다. 이성과 논리와 합리성의 부위인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 PFC)을 공격해서 그 작동을 잠시 멈추게 하여, PFC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성인에게서 어린아이와 같은 인지적 유연성이 작동하고 ‘정서’가 그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술취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PFC를 공격하는 무기가 왜 하필 술이어야 하는가?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PFC를 제압하여 창의성을 자극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두개자기자극술(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은 전도 전자기 코일로 발생시킨 자기장으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여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비수술적 뇌 자극의 방법이다. 머리 가까이에 전도 전자기 코일로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키면 이 자기장이 두개골을 통과하면서 경두개 피질의 신경세포를 자극한다. 이때 자기장의 빠르기에 따라 대뇌피질의 활성도를 높이거나 낮게 할 수 있다. 우울증과 같이 대뇌피질의 활성도가 낮은 경우는 고빈도 자극을 이용하고, 불안증이나 조증과 같이 활성도가 너무 높은 경우는 저빈도 자극을 이용하여 활성도를 조절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장치는 비싸고 휴대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드문 경우이지만 졸도나 경련 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편감, 고통, 경조증, 인지 능력의 변화, 귀울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며, 특히 금속 보철물을 삽입한 경우에는 의도치 않은 전류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문제도 있다. 

경두개자기자극술

술 이외의 화학적 약물도 술과 비슷하게 PFC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대마초(마리화나)가 그중 하나이다. 대마초(마리화나)는 마취 또는 환각 작용이 있는 대마의 잎이나 꽃을 말려서 담배처럼 말아서 피울 수 있도록 만든 마약의 일종이다. 문제는 대마초는 몸과 마음에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마단속법에 의해 취급이 규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시빈 버섯도 PFC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하지만 이 버섯은 심한 위장장애, 심한 방향감각 상실, 망상을 일으킬 수 있고, 장시간 동안 현실 감각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문화도 저녁 식사 전이나 친목 모임에서 이런 실로시빈 버섯 섭취는 권장하지 않을 것이다.


술을 비롯한 앞서 본 화학적 취성물질 외에 다양한 비화학적 의식도 PFC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도한 운동은 도파민을 자극하고 PFC를 하향 조절하여 ‘러너스 하이’(달리기 애호가들이 느끼는 도취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과도하게 긴장된 몸이 항상 에너지를 갈망하는 신피질(新皮質)로부터 자원을 빼앗아 즉각 필요한 운동계와 순환계로 돌리기 때문이다. 러너스 하이는 자아감 상실과 강렬한 행복감을 준다. 다양한 종교 전통에서 행하는 고통스러운 포즈(책상다리하기, 무릎 꿇기)로 하는 긴 명상, 개인적 고행(자기 태형, 피어싱), 그리고 극단적인 호흡 운동도 모두 PFC로부터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증가시키는 비슷한 종류의 높은 황홀감을 제공한다. 과도한 육체적 활동이 동원되는 이런 비화학적인 의식은 건전해 보인다는 점에서 술취함보다 더 권장할 만한 PFC 공격 방법 같다. 문제는 이런 행위들이 너무 번거롭다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경험을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것이다.


PFC를 공격하여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의 자아감을 상실하게 하고 황홀감을 느끼게 하며 무엇보다 창의성, 협동성, 공공성을 위해 정서를 발휘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라면 제일 좋을 것 같다. 첫째, 경두개자기자극술과 달리 비싸지 않은 로우테크여야 한다. 둘째, 불법이지 않고 예상 밖의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 셋째,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과도한 신체적 활동이 수반되지 않고 번거롭지 않아야 한다. PFC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정지시키고 우리를 정말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지만 몇 시간 정도만 지속해야지 과하면 안 된다. 그것은 어디에서든, 거의 모든 것에서, 누구나, 적당히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여야 한다. 만약 섭취하기 좋고 음식과 궁합이 잘 맞으며 춤을 비롯한 다른 공공 사회성의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보너스 포인트이다.


술은 복용하기 쉽고, 그 효과는 사람들마다 안정적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효과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증가하다 약해지며,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알코올 화학적 취성물질의 단점과 비화학적 수단이 요구하는 엄청난 시간, 노력, 고통을 고려하면, 우리들 대부분이 몇 잔의 맥주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기분을 좋게 하고 PFC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싶다면, 맛있는 액상 신경독인 술이 가장 빠르고 즐거운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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