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비 Nov 26. 2022

인간은 공공적 동물이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문화’라는 동굴에서만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의 동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인간은 ‘창의적 동물’이어야 하고, ‘문화적 동물’이어야 하고, ‘공공적 동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슬링거랜드 교수의 주장이다. ‘창의적 동물’과 ‘문화적 동물’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은 이미 살펴보았다. 오늘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공공적 동물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공공적 동물은 협력하는 동물을 말한다. 즉, 우리 인간은 문화라는 동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곤충은 개미이다. 개미는 각자 하는 역할에 따라 구분된다. 일개미는 다른 개미의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아무 생각 없고 사심 없이 일만 한다. 병정개미는 침입자를 무찌르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며 싸운다. 일개미와 병정개미의 이런 성실함과 희생은 오로지 번식을 책임지는 여왕개미를 위한 것이다. 이는 개미 집단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도 개인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점에서 개미와 닮았다. 하지만 인간은 영장류이다. 그것도 이기적인 영장류이다. 우리 인간은 개미와 달리 이기적이므로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여왕개미는 일개미나 병정개미에게 희생당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 통치자는 독살되기도 하고 투표로 공직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이는 우리 인간에게는 개인적 사심과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 DNA가 개인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대규모로 협력해야 할 필요성과 개별적인 영장류의 이기심 사이에는 이렇게 긴장감이 맴돈다. 이는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사이의 긴장이다. 이기적인 개인이 공익에 이바지하지 않으면서 공익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상황은 ‘공유지의 비극’이나 ‘무임승차 문제’라고 불린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수자원이나 토지자원 등 공유자원의 이용을 개인의 자율에 맡기면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함에 따라 자원이 남용되거나 고갈되는 현상을 말한다. 무임승차 문제는 국가재정으로 공급되는 공공재는 누구나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으므로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소비하려고 하는 데 따르는 문제를 말한다. 


이런 협력 과제를 ‘죄수의 딜레마’라는 사고실험으로 살펴보자. A라는 사람이 죄를 지어서 구금되어 기소되었다고 하자. 검사는 A에게 또 다른 용의자 B도 구금되었다고 말해준다. A는 거래를 제안받는다. A는 B를 밀고하면 1개월 형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B는 3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A가 밀고하기를 거부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되어 6개월의 형을 받게 된다. A와 B 모두 결국 상대방을 고소하게 되면 둘 다 범죄의 방조자로 기소되어 2년 형을 선고받게 된다. 물론 A와 B는 서로 소통할 방법은 없다.


침묵을 지켜 서로 협력하여 6개월의 감형을 받는 것이 A와 B 모두에게 제일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상대가 협력한다는 보장이 없다. A는 협력하는 데 상대방이 변절하는 위험을 참작하면, A에게 유일하게 합리적인 전략은 상대방을 변절하고 고발하는 것이다. B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손해를 보지 않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서로 고발하여 2년 형을 받는 것이다. 즉,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인간은 이런 딜레마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인간이 승리하려면 침팬지의 합리적 사고인 이기심과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 이성이 아닌 감정과 정서가 고개를 들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 인간은 이 딜레마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헌신적이기 때문에 종종 죄수의 딜레마에 직면하면 협력한다. 사랑이나 충성, 우정을 통해 다른 사람 또는 집단에 정서적으로 의무가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고 딜레마를 극복하며 모두에게 최적인 결과를 얻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 인간은 이성은 통제할 수 있지만, 정서는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 위기, 직장 불안, 또는 자녀 양육의 문제로 인해 부부간의 관계가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이 아닌 정서인 사랑은 이런 부부에게 어떤 고난이 있어도 서로에게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이런 사회적 정서(social emotion)는 우리에게 단기적이고 계산적인 마음의 이기심을 무색하게 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이런 사회적 정서는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자신의 사리사욕과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정서를 통제하는 사람의 사랑과 명예는 진정성이 빠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정서를 통제하여 자신의 합리적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은 합리적 이성의 부위인 전전두피질(PFC)을 완벽하게 작동을 시키고 있는 사람이다. 이 부위가 잘 작동하고 있으므로 합리적으로 계산을 해 보면 자신에게 손해 보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본 죄수의 딜레마에서 PFC의 지배를 받아서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A와 B는 2년 동안 감옥에 갇힐 것이다. 6개월이라는 감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명예나 사랑과 같은 비이성적 감정으로 PFC를 제압하는 것이다. 


슬링거랜드 교수는 사회적 정서가 어떻게 협력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 보여 주기 위해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오디세우스(Odysseus)의 이야기를 빌려온다. 영웅 오디세우스가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직면하는 많은 위험 중에는 사이렌 섬을 통과하는 것이 있다. 이성적인 선원들은 유혹적인 노래로 배를 해안으로 유인한 다음 자신들을 맘껏 잡아먹는 이 위험한 생명체를 피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결코 모험을 피하지 않는다. 완벽한 쾌락주의자 오디세우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성적 자아가 변절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즉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바다에 뛰어들지 못하게 막기 위해 선원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단단히 묶으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하여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죽음으로 뛰어드는 것을 물리적으로 제지하면서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오디세우스를 돛대에 묶은 밧줄은 ‘선다짐(pre-commitmen)’이다. 선다짐은 다른 말로 ‘사전조치’라고도 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한 행위자가 미래에 사용할 수 있는 선택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기통제의 전략을 말한다. 이런 선다짐이 바로 사회적 정서이다. 오디세우스는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혜택을 누린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사회적 정서는 ‘이성 안의 열정’이라고 말한다. 사랑과 명예는 비이성적으로 보일 뿐이다. 상황이 요구하는 순간에 통제할 수 없는 정서에 묶여 있는 것은 사실 장기적으로는 합리적 이익이다. 


사회적 정서가 결국 이익이 된다면 우리는 사회적 정서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정서의 적이 합리적 이성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전전두피질(PFC)이다. 이 PFC의 작동을 일시적으로 멈추어야 사회적 정서가 발휘된다. 오디세우스는 사회적 정서를 끌어내기 위해 돛대에 자신을 밧줄로 묶게 한다. 신화 속의 오디세우스처럼 지금의 우리도 사회적 정서를 작동시키기 위해 전략을 짜야 한다. 


슬링거랜드가 말하는 전략은 바로 적당한 술취함이다. 문화에서 상대방에게 협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없애야 한다. 이런 사리사욕은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이성을 담당하는 곳이 PFC이다. 술은 바로 이 PFC를 공격하여 그 작동을 일시 정지시킬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다. 술의 장점과 술의 미학은 PFC를 그리 오랫동안 작동 중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술의 양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평균적으로 술을 마시고 취한 뒤 술에서 깨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인간은 문화에서 무한정 상대방에게 희생만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흔히 말하는 ‘호구’라는 소리를 듣는다. 호구가 되지 않고도 공공적 삶을 살 수 있기 위해 이성의 힘으로 작동하다가 결정적인 짧은 순간에는 이성을 내려놓고 사회적 정서를 작동시켜야 하는데, 이때 적당한 술취함이 그렇게 하는 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전 12화 인간은 문화적 동물이어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