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인데, 이것도 나일까.

빈 자리.

by 담하dam ha

빈 자리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보다 빈 자리를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도 그 많은 사람 중에 하나이다.

태어나서 처음 빈 자리를 느낀적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장 커다란 빈자리는 기억난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회사 동료의 부재같은 작은 빈자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요한 인물들의 빈자리는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키우던 병아리인 삐약이가 세상을 떠난 날이라던가, 토끼 친구 삼이가 사라진 날이라던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라던가, 어릴때 부터 기르던 강아지들이 강아지 별로 떠난 날이라던가, 똑똑한 고양이 둘째와 함께할 수 없게 된 날이라던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라던가, 그런 날들이 있은 다음에는 어김없이 빈 자리가 내게 놓여졌다.

그 빈자리들은 채워지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짧게는 2주를 길게는 몇 개월을 괴로워했다.

어릴 때 삐약이를 묻어주면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산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을 철썩같이 믿고 삐약이를 산기슭에 묻은 후에 기도해 주었는데,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나는 또, 계속 또, 매일 삐약이를 찾아갔었다.

그런다고 빈 자리가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매일 삐약이가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삐약이의 무덤이 파헤쳐져 있었고 삐약이의 날개 한 쪽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삐약이가 사라진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서 그대로 멍하니 보기만 하다가, 외할아버지께 가서 무덤이 사라졌다고 난리가 났다가 외할아버지께서 산에 여우가 나오니 여우가 물어갔다고 하시는 바람에 삐약이를 여우에게서 되찾아 오겠다고 바로 나가 산에 갔다가 집이 뒤집어졌었다.

나는 삐약이를 찾을 수 없었고 삐약이가 무덤에서 사라져서 천국에서 행복하지 못할까봐 엉엉 울었다.

그 빈자리가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빈 무덤.

한 쪽만 남은 삐약이의 몸.

어둑한 산 속.

미끄러지던 흙밭.

더러워진 손.

흙 투성이가 된 옷과 신발.

빈 손.

빈 자리.

빈 걸음.

채워질 수 없다는 절망감.

어린 나는 다시는 삐약이의 몸을 찾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삐약이를 왜 하필 데려간 걸까.

흙으로 조금 덮인 작은 무덤.

어린 나는 그 무덤이 야생 동물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여우가 너무 미워졌었다.

이름도 모르고 생김새도 모르는 여우가.

다른 짐승일지도 모르지만 여우라고 들은 순간부터 여우가 너무 미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은 당연했고 여우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여우는 밉지 않아졌지만.

빈 자리는 잊혀지질 않고 남아있다.

나는 아직도 작은 병아리를 보면 다가갈 수가 없는데.

가까이 갔다가 만졌다가 다치면 어떡하나, 하는 과한 걱정을 한다.

작은 흙무덤을 보면 삐약이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빈 손으로 돌아가야 했던 박탈감도 느껴진다.

삐약이의 빈 자리는 내게 무력감을 주었다.

그런 빈 자리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하나씩 늘어만 가서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갔다.

상실감이나 무력감이 점점 구멍을 키워갔다.

이 빈 자리는 여기에 구멍을, 저 빈 자리는 저기에 구멍을이 아니라.

한 구멍을 계속 커다랗게 키워갔다.

빈 자리가 많아질 수록 채워야할 것들이 늘어만 갔다.

인형이나, 스티커나, 미술용품이나, 다이어리나, OTT나...그런 것들이 대신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로 채워나갔다.

채우지 않으면 밀려오는 공허감을, 커다란 구멍을 어찌할 바를 모르니.

작은 것들로 채워도 괜찮았다.

채우려고 하는 시도나 채우려고 했다는 결과물이 채워지게 했으니.

그렇게 계속 채우고 채우고 채우고.

쉬지 말고 채우고 채우고 채우고.

그렇게 채우다가 빈 자리는 채워야만 사라지는 것이란 것을 아주 나중에야 깨닳았다.

뭔가 굉장한 깨우침을 얻고 깨닳으면 빈 자리에도 괜찮을 수 있는 줄 알고.

스스로를 혹독하게 대했다.

누군가 굉장한 깨닳음을 얻은 누군가가.

혹은 굉장히 성공한 누군가가.

그렇게 말 했다.

빈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고.

그런 것이 뭔가 대단히 실수하거나 뒤쳐지는 것처럼.

하지만 빈 자리는 채워야만 하는 것이었다.

빈 자리를 그대로 두고 말아버리면.

나중에는 더 커지고 더욱 커져서.

손 쓸 수 없는 공허와 무력감과 우울에 빠져든다.

채워지는 시간도.

채울 물건도.

채울 존재도 필요하다.

아무리 작은 빈 자리여도 기억에 남지 않아도 채워져야하는 것들이다.

그 채움이 무엇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채움의 행위와 채우는 것이 있다는 상황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

나처럼 작고 귀여운 스티커가 될 수도 있고.

새로 구매하는 오일파스텔이 될 수도 있고.

달콤한 케이크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과하면 안 되는 것이니.

과할 것을 걱정해서 그러면 안돼. 그건 회피야. 하고 말할 수는 없다.

빈 자리를 계속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빈 자리에 먼지가 앉는지도 몰라서 새로운 존재가 그 자리에 앉으려다가도 언제 청소를 하려나...기다리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을 모른다.

스티커로 채웠다가 떼어내고 새 존재를 또 앉혀서 마음을 쌓아가고 채워가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거부한다.

빈 자리를 채우려고 발버둥치는 모든 순간과 시간은 소중하다.

괴로움을 받아들여야한다는 충고가 많지만.

빈 자리의 괴로움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발버둥도 치고, 채우려고 움직이기도 하는 것이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만 둘 이유는 없다.

이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다.

괴롭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받아들였기에 빈 자리를 채워보려고 하는 것이다.

회피라는 말을 요즈음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빈 자리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15년간 연재되던 만화가 사라질 때의 공허감이 어마어마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그 빈 자리를 채우려고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빈 물통을 버리기도 하지만.

채우기도 한다.

하지만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이전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이다.

어느 것도 버리지 않았고 잊지 않았고 피하지 않았으며,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채우려고 한다.

버리거나 피했다면.

다른 것으로도 채울 수 없어 괴로워만 했을 것이다.

오늘의, 지난 날의 작은 빈 자리는 어떻게 채웠는지 떠올려보자.

잘 채워왔고. 잘 채우고 있고. 잘 채워갈 것이다.

단단하게 채워서 전보다 더 단단하고 튼튼해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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