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원래 집에 가만히 누워서 먹고 자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 기본적으로 외출 자체를 싫어하는데, 명절 연휴는 차례 지내고 나면 무조건 여행 가는 걸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 때문에 거의 끌려 나가다시피 한다. 우리 집은 명절에 친정 가는 걸 되도록이면 피하고 있다.
결혼하고 몇 년 동안은 명절날 차례 지내고 치우고 나면 친정에 내려갔는데 그때 이동을 하니 평소라면 2시간 30분이면 내려갈 청주를 명절에는 4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하고, 올라올 때 역시 차가 막혀서 비슷한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내버리면서 올라와야 한다. 그래서 차 막히는 명절을 피해 미리 다녀가거나 아니면 명절이 끝나고 내려간다.
이번 연휴는 작년 12월부터 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인스파이어 리조트를 다녀왔다.
차가 막히면 꼼짝없이 고속도로에 갇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명절 여행에는 되도록이면 근거리, 그리고 이동시간이 짧은 거리에 있는 경기도 위주로 움직이는데, 영종도에 새로 생긴 리조트에 구경 갔다가 차이나타운에 가기로 일정을 정한 후 아침 일찍 움직였다. 작년 12월에 가오픈을 하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와 SNS에 홍보를 해서 미디어파사드를 꼭 구경하고 싶었는데 이번 연휴를 이용해 다녀왔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 하고 잠들기 때문에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휴일에는 늦잠을 자는데 아침에 늦게까지 자고 출발 시간이 늦어지면 차 안에서 남편의 구시렁 거림을 들을 건 불 보듯 뻔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출발 준비를 마쳤더니 인스파이어에 도착했을 때는 주차장도 리조트도 한가했다.
인스파이어는 새로 생긴 리조트답게 전체적인 시설도 깔끔하고 포토존도 많았다. Maroon5가 다음 달 내한 공연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하기 때문에 광고가 크게 붙어있었다. 아무래도 대형 공연장의 부재로 인해 내한공연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 인스파이어가 새로 오픈하면서 이곳에서 첫 대규모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오로라 광장 천장과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환상적인 미디어 파사드를 볼 수 있는데 정각에 시작하기 때문에 55분부터는 사람들이 광장에 빼곡하게 모여있다.
미디어 파사드를 지나면 키네틱 샹들리에가 있는 로툰다 원형 홀이 나오는데 키네틱 샹들리에는 15분과 45분에 미디어 아트 쇼를 보여준다. 키네틱 샹들리에가 뭘 보여줄지 기대하고 갔다가 좀 실망해서 뭔가 허탈하기는 했다. 로툰다는 솔직히 마카오의 갤럭시 호텔 로비에서 보여주는 다이아몬드 분수쇼에 비교하면 뭔가 많이 부족한 수준이기는 하다.
인스파이어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차이나 타운에 갔다가 인파에 깜짝 놀랐다.
차이나 타운에 가면 하얀 짜장을 먹기 위해 연경을 가는데 우리가 연경을 방문한 이래로 이번에 줄이 가장 길었다. 이렇게 까지 줄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닌데 어제 차이나 타운의 중식집들은 어딜 가나 줄이 길었는데 그중에서도 연경이 가장 긴 편이었다. 차이나 타운은 그야말로 명절 대목을 맞이했다.
점심 먹는데 남편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중국어에 아들에게 알아듣냐며 묻는다. 중국어 공부 안 한 지 10년 넘는 나도 알아듣는 수준의 대화인데, 우리 집에서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남편밖에 없기에 어딘가에서 중국어가 들리면 꼭 아이에게 물어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먹는데 바빠서 시큰둥하다.
외국어를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를 굉장히 궁금해한다. 나 역시 그랬었다. 내가 지금 아들 나이였을 때도 우리 집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뿐이었기에 어디서 영어만 들리면 친정 식구들이 알아듣냐며 꼭 물었는데 같은 질문을 남편이 아들에게 하고 있으니 외국어를 하면 평생 이 질문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점심 먹고 나온 후 디저트로 탕후루 하나 사서 남자들 둘이 나눠 먹고, 집에 가져가서 먹을 월병을 샀는데 월병 가게에서 새로 오픈한 밀크티 가게로 가면 샘플 파우치를 준다고 하길래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밀크티까지 한 개 받아와서 간단한 인천 여행을 마무리하고 차 막힘 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원래 위에삥(월병)은 중국에서는 중추절에만 판다. 춘제(구정) 때는 안 먹는데 차이나 타운에서는 관광객들 상대로 중추절과 춘제 구분 없이 판매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