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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Jun 09. 2023

브루잉 세레모니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신이 궁금할 로컬 브랜드들의 이야기 vol.2











대본 대신 로스팅 머신


서사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서사의 결말은 제각각이지만,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일에는 어느정도 약속된 동선과 궤적이 있다. 연극도 그렇다. 정해진 틀이 있고, 대본이 있다. 건조한 단어에 숨을 불어넣는 배우도 있다. 20대 시절, 최완성은 조금 다른 결의 배우로 살아왔다. 


그는 창작연극을 했다. 창작연극에는 또렷한 기승전결만 있는 건 아니다. 형식의 틀을 깨는, 탈드라마 형태도 존재한다. 최완성은 배우가 재연의 형태에 주목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무대 위에서 실존할 수 있을지를 골몰했다.


보통 배우들은 희곡이나 대본을 기반으로 상연(上演)한다. 최완성은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었다. 밥상에서 오가는 생동감 넘치는 일상의 언어들을 무대 위에 올렸다. 툭 튀어나온 말속에서 의미를 발굴해 몸짓으로 번역했다. 그가 활동했던 집단의 이름은 ‘공동 창작집단 툭치다’. 넛지(nudge) 효과라는 개념을 무대 언어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강압하지 않고 부드럽게 개입해 관객들이 세상살이에 감응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기존 서사에는 나름 반기를 들었지만, 연극계를 감싼 공기 같은 관행은 이겨내기 어려웠다.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삶 속에 윤활유를 불어넣었지만 먹고살기 힘들었다. 낮에는 아동 뮤지컬로 생계를 이어가고, 밤에는 꿈을 위해 쉬지 않고 연습했다. 매체 연기를 제안받은 경우도 몇 차례 있었지만 무대를 떠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삶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대본을 쥐었던 손이 로스팅 머신으로 향했다.  


‘대본 대신 로스팅 머신을 잡았다’는 한 문장으로 누군가의 삶을 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사연을 살피려면 시계를 앞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전역 후, 복학을 했을 무렵이에요. 그간의 대학 생활을 돌아보니 제가 너무 연극에만 몰입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교 수업이랑 외부 공연, 심지어 무대 작업, 조명 디자인까지 하느라 달력에 여백이 없었거든요. 좀 더 다른 방식의 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떠올렸어요.” 쉼표 없던 문장에, 쉼표 하나를 그려 넣었다. 모든 걸 멈췄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들을 찾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커피였다.  


커피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히 그 반대다. 대체 왜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는지 의아했다. 이런 경우, 대개는 고개를 돌린다. 최완성은 달랐다. 벽을 치는 대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한 프랜차이츠 카페에서 일하며 커피가 사랑받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게 아메리카노라는 것도,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 원두에 강한 압력을 준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재배된 원두가 동아시아에 도착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이들의 노고와 인고가 필요하단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알아갈수록 세계의 외연이 확장됐다. 그 넓이만큼 커피에 대한 애정도 서서히 커져갔다. 커피가 사랑받는 이유를 찾던 사람이, 어느새 커피를 사랑하게 됐다. 



그 무렵, 또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카페에서 일하는 게 기승전결이 정해진 무대 위 연극처럼 느껴졌던 거다. “카페에서 원두를 소개하는데 뭐랄까. 커피의 맛을 그저 외워서 설명하는 모습이 기계적인 연출처럼 느껴졌어요. 맡은 배역도 그렇듯, 커피 또한 제 식대로 소화해서 표현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것만 같더라고요. 본질을 설명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이후 다시 연극계로 되돌아갔다. 그 후로 수십 페이지의 대본을 읽고, 외우고, 해석했다. 


수 차례 무대 위를 오르다 20대의 끝무렵을 무대에서 맞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삶을 챙길 수 있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 ‘그때 커피가 참 재밌었는데’하고 생각했다. 마침 로스팅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흔한 기회는 아니었다. “연극하던 시절, 이유를 찾으려고 할 때마다 괴로웠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최대한 머릿속을 비워내고, 그저 성실하게 해 보자고 생각했어요.” 


본래 그리던 기법으로 그리는 일. 이는 하나의 스케치를 완성하는 수월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최완성은 익숙했던 도구와 기법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백지의 상태로 돌아갔다.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고 빈 종이를 어루만졌다.


백지는 공허하다. 이를 뒤집으면 공허의 평수만큼의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는 말도 된다. 무얼 기록할지에 대한 주제만 명확하다면 말이다. 최완성에겐 써야만 하는 분명한 글감이 있었다. “언젠가 제가 커피를 소개한다면, 달달 외워 말하는 게 아닌 저만의 언어로 전하고 싶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려면 로스팅을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시간이 선형적이라면, 그의 배우 인생은 완성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중첩된 경험의 다발에 가깝다. 최완성은 켜켜이 쌓아 온 상이한 시간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동선을 그려가고 있었다. ‘대본 대신 로스팅 머신을 잡았다’는 문장 하나가 담지 못하는 이야기다.












호텔리어에서 바리스타로
 

저마다의 삶에는 소설보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하나쯤 있다. 브루잉 세레모니에서 총괄 매니저를 담당하는 김현아. 그의 삶을 ‘바리스타 경력을 쌓은 뒤, 브루잉 세레모니에 합류했다’,라는 문장만으로 끝내기에는 그 이면에 많은 사연이 있다. 우리가 쉽게 흘려보내는 단어들 뒤에는, 그 단어의 수 십배에 달하는 이야기가 농밀하게 숨겨져 있다. 


브루잉 세레모니에 오기 전, 김현아는 7년이란 시간을 호텔리어로 살아왔다. 호텔에는 객실의 숫자만큼 다양한 업무가 존재한다. 크게는 프론트 오피스, 하우스 키핑, 푸드 앤 베버리지, 총 3개 파트다. 김현아는 2,555일이 넘는 적지 않은 시간을 객실 부를 제외한 식음료부와 각종 부대시설의 체크인 및 서비스를 담당했다.



꽤 이른 나이에 발을 들였다고, 그는 말한다. “호텔 관광학과 학생에서 실습으로 시작해 인턴이 됐고, 거기서 정직원이 된 케이스예요. 사실상 제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볼 시간 없이 일을 하게 됐어요.” 어쩌다 걷게 된 탄탄대로의 길. 7년이란 시간을 앞만 보며 쉼 없이 달려왔다. 끝에 도달한 순간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마침표든 쉼표든, 숨 돌릴 장치가 필요했다. 


그런데 왜 하필 커피였을까. “호텔을 그만두고 잠시 프로그래밍을 배운 적이 있는데요. 그때 공부를 하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어요. 그중 한 곳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분이 브루잉에 대해 이야기해 줬어요. 그전에도 브루잉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몰랐거든요. 이후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며 관심이 생겼고, 커피라는 영역을 보다 집중적으로 파고들기로 결심했어요”. 


관심과 탐구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얼마 후, 한 카페에서 단기간 로스팅을 경험하던 김현아는, 그곳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게 됐다. 좋은 기회를 잡아 일하던 카페, 그곳에 최완성이 쿠폰 도장 모으듯 찾아왔다. 바리스타와 손님으로 만난 둘은 틈틈이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일터를 옮긴 김현아에게 최완성이 말했다. 브루잉 세레모니에서 함께하자고. 가던 길을 돌아 새로운 길에 접어든 두 사람이, 커피를 매개로 동행길에 올랐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브루잉 세레모니




브루잉(brewing)은 커피 한 잔으로 향하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다. 무대를 내려온 최완성이었지만 무대인으로 살던 습(習)은 잔존해 있었다. “카페에서 일을 하면 있으면 손님들이 그걸 빤히 바라보셨어요. 미묘한 표정 변화 같은 것들도 보였고요. 이것에 제겐 극(劇)적으로 느껴졌어요. 무대에 오른 것만 같았거든요.” 일상의 언어들을 무대화시킨 것처럼, 커피 또한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다례(茶禮)가 눈에 들었다. 


다례는 차를 대접하는 예절을 말한다. 차 한 잔 건네는 일에도 예가 있나 싶지만, 그렇다. 꽤 심오하다. 다례 안에는 수십 세기 전부터 계승된 역사와 정신이 깃들어 있다. 본질을 탐구하는데 기간도, 품도 많이 든다. 속에 담긴 사유에 대한 접근 또한 쉬이 다가가기 어렵다. 가벼이 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고, 그는 말했다.


단, 그 속에 담긴 가치가 무엇인지는 아주 조금 어림잡을 수 있었다. 그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었다. 나란 사람의 장벽을 허물고, 마주 앉은 이를 위해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 태도가 다례에 담겨 있었다. 어쩌면 커피로도 그런 마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최완성은 생각했다. 다례를 뜻하는 티 세레모니(tea ceremony)에, 티 대신 브루잉(brewing)을 끼워 넣었다. 그렇게 브루잉 세레모니(brewing ceremony)가 탄생했다. 



본래 성수동에서 시작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조금 무서웠던 것 같아요. 당시 굵직한 카페들이 성수동에 많이 몰렸거든요.” 대게 두려움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나 분야를 마주할 때 생겨나곤 한다. 이번에도 최완성은 뛰어들었다. 발걸음을 옮겨 성수역 주변 카페를 드나들었다. 당최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에 발을 담갔던 학창 시절처럼 말이다. 그러다 눈에 띄는 점을 찾았다. “성수역 주변에 로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생각보다 몇 없는 거예요.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고 생각했어요.”


이는 곧 공간에 대한 고민으로 귀결했다. “동네에 나무와 풀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그나마 있는 구두공원도 다소 협소한 편이었고요. 다양한 공간은 많은데, 휴식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찾기 어려웠죠.” 성수동이라는 지역 주변(circum)을 여기저기 살펴보던(spect) 최완성은 이윽고 신중한(circumspect) 마음으로 하나의 결말에 다다랐다. 브루잉 세레모니가 성수동의 안온한 휴식처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골목을 쏘다니는 차량과 오토바이, 화려한 입면들이 어깨동무한 성수동 거리. 이 지역에 쉼터를 만들고자  그가 택한 방식은 외부와 내부의 시차(時差)였다. “바깥사람들이 평상의 속도로 걷는다면, 이곳에서는 슬로모션처럼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브루잉 세레모니는 기존 공간 문법에 어긋난다.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감췄다. 문을 열고 발을 들이지 않으면 내부 구조를 알 수 없다. 짐짓 용감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문을 여는 순간, 시공간이 변하는 듯한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진으론 담아낼 수 없는 공감각의 뒤틀림이 몸을 휘감는다. 



“비 오는 날에는 뭐랄까. 어항 속에 있는 기분도 들어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시공간이 변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으신다고 하더라고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책을 들고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처음엔 공간이 정적이라 낯설어하시는 분들도 적잖았어요. 여기서 대화해도 괜찮냐고 묻는 분들도 계셨죠.” 선형적으로 흐르는 성수동에 다른 차원을 만드는 장소. 브루잉 세레모니라는 공간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다. 











정답 없는 영역


어떤 사안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있다. 가령 ‘맛있는 커피’가 무엇인지 논하는 일이 이에 해당한다. 누군가는 산미 높은 커피를 맛 좋은 커피의 필요조건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은 바디감 강한 원두를 맛있는 커피의 예시로 본다. 물론 이 둘 사이의 교집합을 ‘맛있는 커피’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맛있는 커피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종 심급의 자리에 어떤 가치를 놓느냐에 따라 서술어는 첨예하게 바뀐다. 서양철학에서는 이를 ‘과오 없는 불일치(faultless disagreement)’라 칭한다. 간단하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데,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보통 취향(taste)의 영역이 이에 해당한다. 커피 맛(taste)도 취향의 영역에 속한다. 승강이 벌일 일이 아니다.


대신 커피 맛에 대해 논변하는 일에는 공식 비슷한 게 있다. ‘상황’을 고려하는 일이다. 커피 한 잔을 음미하는 각자의 상황은 가변적이다. 감각 기관, 경험, 그날의 몸 상태 등. 커피를 볶고 내리는 일에는 상황이란 재료를 얼마나 잘 인지하고 편집하는지가 관건이 된다.



최완성은 궁금했다. 주관의 영역처럼 보이는 커피에 정답이 있을까, 하고. 커피가 맛있다는 말의 의미가 궁금했다. 답을 찾기 위해 로스터리라는 글자만 보면 무작정 들어갔다. 머리를 비우고 몸으로 느꼈다. 그러다 무언가를 알게 됐다. ‘난 이런 커피를 좋아하는구나’라는 본인만의 여과물, 나름의 취향을 발견한 것이다. 맛이 좋다, 안 좋다는 이분법으로 서술하기엔 우리 몸이 제각각이었다. 맛이라는 영역에 명확한 정답은 없다는 사실, 이는 김현아 매니저도 같은 생각이었다. 



단 하나의 답이 없을 뿐, 커피의 맛과 향은 분명 현존한다. 브루잉 세레모니는 맛이라는 무형의 감각을 고객에게 어떻게 전할지 궁리했다. 최완성의 말이다. “커피도 연극의 일환으로 생각한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다가간 것처럼, 제가 내린 커피로도 손님들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가 택한 것은 표현의 방식. 최완성은 한 사람이란 필터를 여과해 나온 단어들을 나열했다. 때론 자신의 언어로, 때론 누군가의 문장을 발췌해 기록했다.




브루잉 세레모니 바 테이블에는 하얀 카드들이 정갈히 놓여 있다. 명함 크기 정도 되는 종이 위에는 원두의 원산지부터 가공 방식 등 상세한 설명이 적혀있다. 독특한 건 뒷면이다. 한 카드를 뒤집으니 웬 시 한 구절이 눈에 든다. “이 원두는 처음에는 신맛, 라즈베리 향이 꽤 강하게 올라와요. 그런데 말미에는 짙은 체리의 달달한 느낌, 초콜릿 향도 올라오죠. 이게 뭐랄까, 마냥 밝지만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윤동주 시인의 시가 떠올랐어요. <별 헤는 밤>은 제게 여운이 깊은 시였거든요. 어떤 문장들을 나열하는 것보다, 시 한 구절 옮기는 게 커피 맛을 전하기에 더 용이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이것이 브루잉 세레모니에서만 볼 수 있는 원두 설명이자, 최완성이 관객이란 고객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에디터님이 드신 엘 살바도르 원두는 제겐 매우 투명한 느낌의 맛으로 와닿았어요. 투명하고 섬세한데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 계속 고민했죠. 단어를 붙잡고 씨름하는 찰나, ‘순수함’이라는 단어가 새로이 떠올랐어요. 그때 예전에 적어 놓은 <죽은 시인의 사회> 속 대사가 생각났어요. 그 문장이 커피가 품은 청명한 느낌을 상기시켜 줄 거라 판단했고요.” 커피를 맛본 순간 떠오른 감각의 편린들. 최완성은 이것들을 물성화하고 있었다.












우리 드러내는 방식


물론 한 사람이 가용할 수 있는 언어와 사유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평소 다양한 서적과 신문, 칼럼 등을 읽는 최완성도 '작가의 폐색(writer’s block)’과 비슷한 뭔가를 마주하기도 했다. 당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문장이 찾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마셔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땅한 글귀가 찾아오지 않으면 제 아무리 좋은 원두라도 고객에게 소개하는 일을 뒤로 미뤘다. 그 정도로 진심이었다.


말문이 막힐 때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 작업에서 소스를 얻는 건 더 이상 제 삶이 아니에요. 자기 복제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최근 찾은 복안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시도예요.” 옆에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커피를 마신 순간의 감각들을 나열해 달라고 요청했다. 심상에 맺힌 이미지를 언어로 푸는 일은 어땠을까. 김현아 매니저는 말한다. “처음엔 어려웠어요. 살면서 해본 적 없었거든요.” 맛을 음미하는 건 나름 익숙했다. 맛을 말로 옮기는 일은 달랐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익숙한 지점도 있었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가 있어요. 그 책을 보면 와인 맛을 다채롭고 재밌게 설명하는 걸 볼 수 있어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 춤을 추는 느낌’ 뭐 이런 식의 문장들을 말이죠. 그런데 제가 호텔에서 일을 할 때도 그런 식으로 표현한 적이 있어요. 와인 맛을 설명할 때 추상적인 감각들을 구체화해서 전달하곤 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이 비슷한 것 같아요.” 
  

김현아와 최완성. 두 사람의 이름만큼이나, 각자의 취향 또한 겹치는 지점이 없었다. 이게 상호보완을 일으켰다. “완성 님은 다양한 문헌 속에서 영감을 찾는데, 저는 책을 잘 안 읽어요. 캠핑을 좋아하죠. 이때 얻은 경험들이 커피 맛에 대한 저만의 표현을 시도하는데 도움이 돼요. 그날의 온도, 새소리, 등을 살포시 두드리는 바람처럼 오감으로 느낀 것들을 ‘현아화’할 수 있거든요.” 그가 꺼낸 언어들은, 최완성의 편집과 윤문, 재배치를 통해 형태를 갖춘다. “완성 님이 강조하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기준이나 틀을 잡지 말라는 말이죠. 그저 맛을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를 권하세요. 괜히 더 살을 붙이려고 하면 그 순간 갇혀버리기 때문이죠.” 



어떤 영역이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브루잉 세레모니는 달랐다. 단어로 집을 짓는 일을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 무언가를 표현하고 온전히 느낀 것들을 시각화하거나 작문을 한다거나 이런 일이 많지 않잖아요. 업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늘 재밌게 하고 있죠.”


지난한 고민과 과정을 토대로 세상에 나온 카드는 의외의 장면을 만들어 냈다. “원래는 커피의 맛과 인상을 소개하기 위한 용도로 시작한 건데, 이 카드들을 하나 둘 모으는 손님들이 계시더라고요. 책갈피로 쓰는 분도 계셨고요. 지갑 혹은 휴대폰 케이스에 꽂고 다니시는 분도 봤어요. 본인 삶에 와닿는 문구나 위로가 된 것들을 넣어두시는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는 보다 더 긍정적이고 힘을 북돋을 수 있는 문장들을 담으려고 해요.” 



 


 






커피로  많은 것을   있다고 믿으며


‘우리는 커피를 볶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내립니다. 우리는 커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브루잉 세레모니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원래는 더더욱 검박했다. 커피를 내리고 볶는다는 내용. 두 개의 문장, 두 가지 절(節)만 존재했다. 커피로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문구는 나중에 따라왔다. 


“지금도 커피로 무얼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상업성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라, 커피라는 매개물을 통해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생각하는 것이죠.” 실제로 그랬다. 2022년에는 ‘라이프 세레모니’라는 일종의 매거진을 기획했다. 브루잉 세레모니의 구성원부터, 이곳을 찾는 다양한 손님들의 삶을 듣고 소개했다. 브루잉 세레모니의 바리스타가, 에디터로 옷을 갈아입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북클럽도 열었다. 한적한 토요일 오전, 매장에서 책을 읽다 문득 이 시간대에 사람들과 함께 독서하면 어떨까 생각한 최완성의 아이디어였다. 각각의 책을 들고 찾아온 열댓 명의 사람들이 열댓 권의 책을 읽고 열댓 가지의 삶을 공유했다. 북클럽을 통해 모인 소중한 수익 중 일부는 사회에 환원했다.


“연기를 하던 시절, 잘하냐 못하냐에 함몰되면 괴롭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래서 커피만큼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요. 물론 한 잔 한 잔에 정성을 담고자 최선을 하지만, 커피로 1등이 되자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죠.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소개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커피로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장하려고 고민해요.” 로스터리에서 커피는 대단히 중요하다. 브루잉 세레모니가 이 점을 간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은 결국 커피 또한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완성이 연극 대신 커피로 삶을 매개한다면, 김현아는 호텔리어 시절의 경험을 근간으로 브루잉 세레모니의 애티튜드를 확립한다. “예전에 호텔에서 일할 때 한 손님이 이런 메모를 남겨 주셨어요. ‘오늘 현아 씨 덕분에 음식도 맛있게 먹고, 좋은 경험을 얻고 가요’라고 말이죠. 그 한 마디가 동력이 됐어요. 브루잉 세레모니를 찾는 분들에게도 공간이 주는 분위기,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만드는 경험, 그리고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브루잉 세레모니만의 결을 고스란히 전해 드리고 싶어요.”


브루잉에는 효율성이 누락돼 있다. 재빨리 제조해서 고객에게 빠르게 배송하는 신속성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키오스크라는 편리성도 없다. 대신 넉넉한 시간의 여백이 존재한다. 최완성은 브루잉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순간, 필수불가결하게 발생하는 딜레이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지 궁구했다. “공간이나 커피를 통해 어떤 거대한 담론을 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게 만들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안온하게 쉴 수 있게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든 브루잉 세레모니. 이들은 결국 빠르게 소비되고 흘러가는 시류에 편승하는 걸 거부했다. 느리더라도 손에서 손으로 건네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내외부의 시차라는 브루잉 세레모니의 콘셉트처럼, 그 속에 담은 본질 또한 브랜드의 가치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방향성은 방향성일 뿐. 이 또한 정답은 아니라고, 브루잉 세레모니는 이야기한다.


“본래 브루잉 세레모니가 의도한 방향과 다르게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또 그분 나름의 해석인 거잖아요. 그러니 우리의 방향성을 읽어내지 못하신다고 해도, 정답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한 편의 영화를 100명의 관객이 보면, 100편의 영화가 탄생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브루잉 세레모니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요.”





글, 사진 김승훈

인터뷰 브루잉 세레모니 최완성, 김현아





부로컬리(@boolocally)가 진행하는 <TMI: THE MOST IMPORTANT>는 각자만의 소신을 바탕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로컬 브랜드들의 가치와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기획된 캠페인입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지역은 바로 서울 성수동. 부로컬리는 남다른 콘셉트와 정체성으로 선명한 존재감을 가진 4개의 브랜드를 엄선했습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신이 궁금할 로컬 브랜드들의 이야기', ‘TMI’ 캠페인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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