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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Dec 20. 2023

112. 이미 성공했군요?

“그림이 내게 돈을 안 주는데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감각을 준다면 그림 그리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봐요. 그래서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그림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감각을 준다면 그림 그리는 이유로 충분하다.”라는 그림 유튜버 이연의 말. 사실 탁구에서 눈에 보이는 성공이란 부수 승급이다. 현재 가장 최하위부수인 내가 7부로 승급해야 그나마 작은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6부부터 1부까지 끝이 없다. 어서 승급해 올라오라고 두 팔 벌려 손짓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문을 건다. “너는 할 수 있다”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탁구라는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걸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열심히 한다는 게 꼭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다.  사실 내 생애 5부까지 승급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솔직히 자신 없다. 승급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나는 탁구에 대한 성공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궁금했다. 승급이라는 성공이 아니라면 대체 가능한 뭔가가 있어야 했다. 붙들고 살아야 하는 뭔가가.

      

“행복하게 하는 감각을 준다”가 답일지도 모른다. 인지하고 있지 못했을 뿐  탁구는 이미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감각을 충분히 주고 있다. 파트너와 매번 하는 시스템 연습을 마치고 나면 마치 하루가 단정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연습이 잘 되는 날도 있고 이상하게 잘 되질 않아 꾸역꾸역 하는 날도 있지만 하루의 미션 클리어로 이만한 게 없다. 성공은 못 했지만 성취는 했다는 느낌? 이러한 감각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레슨 역시 비슷한 시스템으로 1년 이상 받아오고 있다. 어제의 연습과 오늘의 연습이 다르듯 오늘의 레슨 역시 지난 레슨과는 미세하게 다르다.  잘 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못내 아쉬운 날도 있다. 온 힘을 다 쏟아낸 날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어지러워 집중이 안 되어 찝찝한 날도 있다. 그럼에도 레슨 시간에는 ‘이 한 몸 불살라 보리라’ 마음먹는다. 레슨이 끝날 무렵 체력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날이면 탈탈 털렸지만 왠지 기분은 좋다. 그런 감각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하루는 99퍼센트의 루틴과 1퍼센트의 이벤트로 이루어진다”라는 <아무튼, 달리기>의 김상민 작가의 말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탁구 치는 일상은 99프로의 루틴이고 부수 승급은 1퍼센트의 이벤트일지도 모른다. 99프로의 일상이 루틴으로서 내게 행복한 감각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일상을 버텨 주는 건 1프로의 이벤트가 아니라 하루 한 번씩 찾아오는 잔잔한 행복이라는 감각이 아닐는지. 이 감각에 취해 나는 오늘도 눈이 펑펑 내리는 빙판길에도 탁구장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나 보다.

     

추신:브런치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그렇다고 글 쓰는 사람이 글 쓰는 걸 멈출 수 있을까?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쓸 때만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감각.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는 충분하다. 글쓰기 일상이 99퍼센트의 루틴이라면 브런치 공모전은 1퍼센트의 이벤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감각을 주는 글쓰기를 오늘도  멈추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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