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필사의 말들) 김훈『허송세월』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책보다 사물과 사람과 주변을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p.128)
“세상살이는 어렵고, 책과 세상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기는 더욱 어려운데, 책과 세상이 이어지지 않을 때 독서는 괴롭다. 세상의 길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책 속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p.157-158)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 9시. 오늘은 숭례문학당 독서토론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선생님들과 줌 토론을 하는 날이다. 이 프로그램을 수료한 선생님들의 면면은 나처럼 책을 깊게 읽고 싶거나 이 과정을 수료해 도서관에서 논제 수업을 하고 싶거나 이미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논술 선생님, 칼럼작가 등)에 시너지를 주기 위해 혹은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까지 각양각색이다. 이 과정은 기수별로 진행되는 데 입문, 리더, 심화 과정을 수료하면 기존 선생님들의 토론방인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제목)’에 초대되어 함께 토론할 수 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책에서 논제를 뽑으면서 깊이 있는 책 읽기에 매료된 나는 주저 없이 이 토론방에서 참여해 지금까지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숭례문학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수장 중 한 명이 만든 토론방이기도 하거니와 수년간 책을 읽어온 고수님들이 모인 방이라 책의 난이도 또한 높다. 토론 리더로 활동하는 강사님들이 대부분이라 책을 계속 읽 업그레이드하려는 목적의 모임 특성상 어려운 책들을 선정해 읽는다. 혼자서는 절대 읽지 않을 책들을 함께 읽어가며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 오고 있다. 읽고 있는 자들의 작은 연대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읽은 책들로는 엘리스 닐 외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고병권의 『사람을 목격한 사람』, 한병철의 『서사의 위기』 등이 있다. 수학의 정석을 예로 들면 오프라인 대면 모임이 기본 편이라면 이 모임은 심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모임이 없었더라면 내가 책을 접하는 세계는 지극히 편협했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넓어지진 못했으리라. 아직 미흡하지만 내 기준에 그렇다는 것이다. 두 달 이상 결석하면 방을 나가야 하는 강제성 때문에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책들을 기어이 가까스로 읽어내고야 만다. 책을 좋아하지만(진짜 좋아하나?) 어렵고 머리 아픈 책은 읽기 싫어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꾸역꾸역 읽게 만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방은 나의 좁디좁은 책 읽기에 기둥 같은 역할을 해 주고 큰 카테고리 안에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민이 있다. 독서 토론이 공회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생활의 구체성은 사라지고 추상적인 말들만 오갈 때 그렇다. 토론이 끝난 후 줌 화면 밖으로 사람들이 퇴장하고 나면 한동안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할 때가 있다. ‘오늘도 붕붕 떠다니는 말들만 한 거 아냐?’ 분명 토론 중 나왔던 말들이 맞는 말이긴 한데 말만 번지르한 것 같은 날이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토론한 것들이 일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날이면 이러한 감정은 증폭된다. 읽고 토론하는 행위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살피지 않은 채 지적 허영에 빠져 있는 거 아냐?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김훈의 말처럼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고 있다. 어느 순간 책을 집어 들고 있다.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뭐라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토론에 참여한 선생님들도 격하게 공감한다. 이 책을 추천한 선생님도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우리를 현실이라는 땅에 착륙시키고 싶었나 보다. “거대 담론만 토론해 왔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는 일상의 모습들을 돌아보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녀의 말에 이어 한 선생님도 책만 읽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 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일부러 지인들에게 책 읽는다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책 많이 읽었다고 하면 꼬투리 잡히기 쉽더라고요.”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다. 나 역시 그녀처럼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웬만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 많이 읽었다면서 그렇게밖에 행동 못 해?”라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 자체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책을 읽으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말이다.
여기저기 힘들다는 하소연에 나도 용기를 내어 본다. “필사하는 데 미쳐 2년 가까이 96권을 필사했더라고요. 처음에는 필사하면서 생활에 적용시키려 애썼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머릿속에 마구마구 집어넣기만 하는 필사라는 행위만 하고 있더라고요. 니체의 말이 떠올랐어요.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해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제가 바로 그 도적이더라고요.”
여기저기서 도적이 되었다는 나의 말에 한바탕 뒤집어진다. 막상 도적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나니 요즘 답답했던 체증이 내려가는 것만 같다. 한 선생님은 “96권 필사라니! 저는 선생님이 무섭습니다.” “저도 제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읽고 필사하는 걸 끊어보려 합니다. 도적 같은 책 읽기와 필사에 지쳤나 봅니다. 11월 모임은 참석이 어려우니 양해부탁드립니다. ” (12월은 원래 모임이 없으니 잘릴 염려는 없다. 이 와중에도 잘릴까 봐 전전긍긍이라니!)
말하면서 정리가 된다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그렇게도 좋았던 필사가 세상과 이어지질 않아서 그렇게 괴로웠구나, 그렇게 체한 듯 힘들었구나. 김훈 같은 대작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반갑고 위로가 된다.(물론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토론에 참가한 선생님들의 고민 역시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는 김훈, 선생님들 그리고 나. 모두 독서가 괴롭다. 어쩌면 모든 책 읽기가 세상과 다 연결될 순 없기에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게 독서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필사한 문장들을 일상에 녹이는 글을 쓰고 싶다. 읽고 필사하는 이유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세상과 연결되는 책 읽기를 하고 싶었던 예전의 나를 조금씩 찾아간다면 독서의 괴로움이 조금은 덜어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