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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단 하나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

(필사의 말들) 알랭드 보통 『현대 사회 생존법』

by 하늘

“조용한 삶을 사는 이들은 마음속에서 곰곰이 되새겨보면 단 하나의 경험에서 정말 많은 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0년 전에 다녀온 짧은 여행도 실제 끝난 게 아니다. 여행의 많은 부분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풍부한 기억을 내어 주기 전에 바깥세상이 조용해지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미 겪은 일과 본 것에서 고유의 가치를 끌어내는 법을 안다면 그렇게까지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끊임없이 움직이려는 우리의 충동은 내심 경험을 온전히 처리할 수 없다는 무능력에 대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미 겪은 일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p.196)

말이 앞설 때가 있다. 뜬금없이 웬 쭈꾸미 낚시? 딸과 딸의 남자친구, 그의 여동생 커플로 구성된 무리에 얼떨결에 따라나서게 되었다. “아빠, 쭈꾸미 낚시 갈래요?”라는 딸 전화에 남편이 선약이 있어 안 된다는 걸 옆에서 듣고 있다 “그럼 엄마가 갈래”라고 말해버렸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낚시를 왜 따라간다고 했을까? “그저 조용히 망망대해에 떠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났기 때문이다. 낚시가 아니라 바다에 떠 있고 싶다는 생각, 그런데 왜 망망대해에 떠 있고 싶냐고?

10시에 자리에 누웠지만 설렘인지 기대감인지 정체 모를 이유로 뒤척이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새벽 2시 30분 출발해 태안 근흥에 있는 신진도항에 도착했다. 출조버스라 불리는 대형 버스부터 자가용까지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새벽 3시 반, 하늘에는 새벽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거리에는 어깨에 짐을 둘러맨 채, 한 손에는 아이스박스를 든 낚시꾼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편의점마다 출항 전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면발을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자고 있을 시간, 세상의 한 편에서는 이런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사는 삶은 정말 이 넓은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구, 잠깐 생각했다.

낯선 세계가 신기한 것도 잠시 이 세계의 법칙을 따르기로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배낚시의 세계에 왔으니 이 세계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 세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래야 하는 것처럼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을 먹기로 했다. (배에서 김밥을 드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한강에서나 볼 수 있었던 라면 끓이는 기계가 편의점 중앙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 기계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딸을 포함한 젊은이 넷은 무덤덤한데 나만 이 기계의 낯선 출연에 흥분했다. “오호, 컵라면 말고, 끊여 먹자.” 원래 먹던 진라면을 먹을 것인지 평소에 먹지 않는 신라면을 고를지 마치 대단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몇 초간 라면 앞에 서 있었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 어떤 날은 익숙함을, 어떤 날은 새로움을 선택하는데 오늘은 진라면의 익숙함을 선택하기로 했다. 냄비 말고 라면 끓이는 기계에서 끊여진 진라면의 맛은 어떨지, 끊이는 방식의 차이를 느껴보기로 했다. 거의 안 익다시피 한 면발을 선호하는 내게 라면 기계에서 끊여진 꼬들꼬들한 면발은 취향에 딱 맞았다. 국물까지 ‘후루룩’ 한 모금 들이키고 편의점을 나서니, 배낚시라는 새로운 세계의 일원이 된 듯했다. 고작 라면 하나 먹었을 뿐인데.

이 세계가 작동하는 다음 순서는 승선명부에 이름과 전화번호, 비상 연락망을 적는 것이었다. 비상 연락망에 남편의 전화번호를 적는 찰나 ‘만에 하나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스쳤을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배에 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만에 하나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 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아예 없다는 듯 무심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다들 용감한데? 다음 순서로 낚시용품 가게에 들러 낚싯대를 대여한 후, 배가 정박할 예정이라는 곳에서 대기했다. 배에 타기 전 마지막으로 공중화장실에 다녀오니, 딸의 남자친구가 배에 짐을 옮겨놓은 직후였다. 딸이 먼저 배에 타고 아이가 잡아주는 손을 잡고 드디어 ‘수덕호’라는 이름의 배에 올랐다. 배 옆에는 4.99톤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배 역시 이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배는 쭈꾸미 낚시를 위해 최적화되어 있었다. 배의 좌우를 따라 낚싯대를 꽂는 구멍, 미끼를 놓는 선반, 잡은 주꾸미를 넣는 통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한 사람씩 자리를 잡으면 선장님이 낚시 포인트로 데려간 후, 부저음으로 신호를 주었다. 부저음이 한 번 울리면 낚싯대를 내리라는 신호요, 부저음이 두 번 울리면 낚싯대를 거두라는 신호였다. 그리고 다시 다른 포인트로 이동. 배가 출발해 물살을 가르면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갑판에 누워 있기도 하면서 자유시간을 보내다 배가 멈추고 부저음이 울리면 재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낚싯대를 던지는 사람들.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동네 마실 가는 사람인 양 반소매,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배를 운전하는 선장님.


포인트마다 선장님의 신호에 의해 낚싯대가 던져지고, 낚싯대를 거두는 시스템이 8시간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정해진 규칙이 반복되고 있었다. 부저음 때문인지 낚시가 아니라 마치 어떤 공장에 취업해 쭈꾸미 조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물론 자발적인 낚시였지만 나를 포함한 초보 다섯을 뺀 나머지 분들은 조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저음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쭈꾸미며 갑오징어를 낚아 올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배는 포인트를 따라 계속 움직이고 배의 왼편에는 초보 낚시꾼들이, 오른편에는 경력이 상당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던지고 거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 배뿐이 아니었다. 이렇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을 그득그득 실은 배들이 여기저기 떠 있었다. 낚싯대와 한 몸이 된 검은 실루엣들을 태운 배들이 마치 거울처럼 우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 모습도 저렇게 보이겠군.


원래 낚시가 목표가 아니었기에 이번이 두 번째인 딸의 남자친구가 낚싯대 사용하는 법을 알려줘도 ‘열심히 배워야지’라는 생각보단 대강의 방법만 배우기로 노선을 정했다. 낚싯대를 던지고 미끼가 바닥에 닿는 느낌을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런데 몇 번을 반복해도 미끼가 바닥에 닿는 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느껴져?”라고 물어오는 딸에게 “아니”라는 말을 연발해야 했다. 이렇게 둔할 수가! 거기다 3-5초에 한 번씩 낚싯대를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면서 추의 무게를 알고 그것보다 무겁다 느낄 때 들어 올려야 하는데 낚싯대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행위가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둔한 감각에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반복된 행위. 쭈꾸미를 잡아야겠다는 간절함보단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낚시 자체에 재미를 못 붙게 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조용히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일출로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도 예뻤고, 순식간이어서 안타까웠지만 다른 배 위에 걸쳐 있는 빠알간 해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아, 내가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 떠 있구나! 밤을 꼴딱 새는 바람에 선실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다가도 배의 움직임을 따라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게 좋았다. 내가 배 위에서 자고 있네!


나는 내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쭈꾸미를 잡느라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선실에서 유유자적 자다 일어나 낚시 한 번 하고, 바다 한 번 쳐다보고. 뭘 하지도 않았는데 배는 또 얼마나 금세 고픈지. 분명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딸 남자친구의 여동생이 만든 큼직한 유부초밥을 두 개나 먹었다. 배가 이미 찰대로 차 있었건만 선실 안에 동네 백반집에서 볼 수 있는 점심이 차려지자 ‘선장님이 준비한 도시락을 놓칠 순 없지. ’라는 생각에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공깃밥과 된장국, 네 명에 한 개씩 배분된 반찬통 다섯 칸에는 달걀말이, 마늘장아찌, 오이지무침, 메추리알 장조림, 얼갈이김치가 오순도순 담겨 있었다. 분명 배가 부를 텐데 반찬 하나하나 보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딸이 남자친구의 여동생에게 하는 말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 엄마는 경험주의자야” 그렇다. 나는 경험주의자다. 아니 경험주의 예찬론자다. 무엇이 되었든 경험하는 걸 좋아하고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라는 사람과 이 세계의 부분 부분을 알아가는 걸 좋아한다. 점심을 먹는 사이 선장님을 보니 배의 핸들 앞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한가득 퍼 입으로 가져가고 계셨다. 선장님은 매번 저렇게 점심을 드셨겠구나! 앞으로도 저 자리에서 점심을 드시겠구나!

낚시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 있는 사람인지라 배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선실이 있는 것도, 좁디좁은 화장실 안 변기 속이 바닷물로 출렁거리는 것도 신기했다. 배설물이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는구나! 포인트를 따라 배가 움직이면 뱃머리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 세찬 바람을 정면에서 맞고 있노라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배의 뒷머리에서 배가 지나가는 흔적을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낚시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즐거웠다. 뱃머리에 가만히 앉아 배의 좌우에서 열심히 낚싯대를 넣었다 거두었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들 무슨 생각을 하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각양각색의 생각들을 하겠지. 아니 아예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지도. 쉬지 않고 낚싯대를 던지던 딸의 남자친구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자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햇빛에 타지 않으려고 눈만 빼꼼히 내놓고 다른 부위는 모자 아니면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신기했다.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나서야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는 걸 알았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당 다스 베이더인 줄! 온통 새까맸다. 까만 위아래 상의에 체크 모자, 검정 선글라스, 검정 마스크, 목에 두른 노란 스카프. 맨살을 절대 햇빛에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의 결정체가 바로 나였다.

‘그저 조용히 바다에 떠 있고 싶다.’라는 목적은 이렇게 달성(?)되었다. 그런데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잠시 세상 속 소란에서 벗어나 바다라는 대자연 속에 나를 놓아두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명색이 낚시인데 ‘한 마리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일행 중 가장 잘 잡고 있는 지인에게 양해를 구해 그의 자리에서 낚싯대를 던졌다. 이번엔 정말 잡고 싶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드디어 한 마리를 잡았다. 잡은 쭈꾸미를 들고 인증샷도 야무지게 찍었다. 사진을 보면 다스 베이더로 보이는 사람이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쭈꾸미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다. 낚시비용이 십만 원이니, 십만 원짜리 쭈꾸미다. 귀하고 귀한 그 한 마리로 뭘 했냐면 집에 돌아와 라면에 퐁당 넣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쭈꾸미 라면. 하나밖에 없으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한 마리밖에 못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왜 사람들이 낚시 낚시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더 잡지 못한 게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내년에 한 번 다시 가 볼까?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는 했다. '내년엔 더 잘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는 기대감도 퐁퐁 샘솟았다. 내년엔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니라 쭈꾸미 낚시가 목표가 되려나!

딸이 낚시를 하다 팔에 근육통이 왔다고 한다. 탁구장 지인은 9월 초 무창포에서 금요일, 토요일 연달아 쭈꾸미 낚시를 하다 몸살이 났다 하고. 재미있어서 한다고 하지만 낚시도 엄연히 취미의 영역인데 다들 노동처럼 하고 있다. 내년에 해봐야 알겠지만 나 역시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 자리에 서 봐야 안다. 하루에 350마리씩 잡았다는 지인의 냉동고에는 700마리의 쭈꾸미가 들어 있다고 하는데 놀랍다. 700 마리면 어느 정도 되려나? 쭈꾸미 낚시라고 검색해 보니 이렇게 많이 잡는 분들이 꽤 있었다. 몇 마리 잡았는지 카운터 하는 기기도 있던데, 나는 왜 어느 초보 낚시꾼의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낚시가 아니라 조업이더라고요.”

여기까지가 ‘쭈꾸미 낚시’라는 단 하나의 경험에서 정말 많은 것을 끄집어내려고 한 나름의 시도다. 물론 아직 다 꺼내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으니 언젠가는 꺼내어지리라. 요즘 부쩍 내가 겪은 일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내달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달리고만 있는 것 같아 숨이 차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우리가 이미 겪은 일과 본 것에서 고유의 가치를 끌어내는 법을 안다면 그렇게까지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내게 종을 울리는 문장. 그래서 이렇게 글을 통해 단 하나의 경험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걸 최대한 끌어내려했다. 내가 겪은 일과 본 것에서 고유의 가치를 끌어내는 법을 알기 위한 한 걸음. 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전차에 올라타 멈출 줄 모르고 달리는 내게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 틈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아이러니가 또 없다. 집에 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있어도 될 텐데 굳이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둥둥 떠 있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나? 이미 경험에 중독된 신체가 되어 버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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