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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tea Oct 30. 2022

혼자 걷는 길은

"왓 어 쏠로 어쩌고(대충 외국말)!"


제가 뒤돌아보자 황급히 입을 막고 무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쏘리.'

뒤따라오던 무리가 자기들끼리 제 얘기를 했는데, 이 문장을 제가 알아들은 것입니다.

저는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큰 도시를 빠져나가는 지점이었고 다음 마을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보통 걸음으로 두어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도시의 소음으로 혼미해진 정신과 한낮의 태양, 무거운 배낭, 땀에 젖은 옷, 이 모든 것이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외톨이인 저를 놀리던 세 명의 무리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저를 앞질러 갔습니다.


'이게 아닌데...'


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산티아고로 왔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하루 종일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불과 몇 주 전의 일이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도 바이러스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지만 ‘위드 코로나’ 정책에 발맞춰 결국 코로나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리자 제 몸은 바이러스와 면역계의 전쟁터가 되었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니 격리기간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일을 쉬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여행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저는 이런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 글이 동어 반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건 마치 카메라 앞에서 제가 변장을 하고 모습을 조금 달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제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긴 했지만 글을 쓰는 저도 지루해졌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담기 위해 도서관에 갔지만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찰나, 코로나에 걸린 것입니다.


격리 기간 중에 정부는 입국 시 코로나 검사 의무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해외여행을 떠날 좋은 타이밍,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았습니다. 바로 여행지를 물색했습니다.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추천받았던 여행지가 떠올랐고 자료 검색을 마친 후 산티아고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관문에 해당하는 작은 마을, 생장 피에 드 포르에 도착했습니다.

순례자 길을 시작하는 첫날, 피레네 산맥이 높긴 했지만 차가 다니는 길 옆으로 걸을 수 있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섣부른 판단이었지만요.) 1.5리터 물통과 기타 등등이 가득 든 등산 가방을 메고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습니다.

가파른 절벽에 양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산골짜기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새들이 유영하듯 비행을 즐겼습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지만 비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21세기에 두 발로 피레네를 넘는 바보들!'


바보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습니다. 그늘 한 줌 없는 오르막을 걷다가 드디어 정수리를 식힐 수 있는 숲이 시작되었습니다. 숲의 중간쯤 누군가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주앙은 순례자 길을 스스로 탐험하고 싶어 아무런 준비 없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에서부터 출발해 이미 한 달째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동행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와 이야기를 하느라 놓치는 풍경도 있었습니다. 혼자 걸었으면 충분히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앙은 제 이야기에 집중했고 주변 풍경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둘은 금세 숲을 통과했습니다.


오르막이 거의 끝날 무렵, 작은 대피소가 있는 산마루에 도착했습니다. 발아래로 지나온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탁 트인 시야는 피레네의 선물 같았습니다.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제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오줌이 마렵기도 했고 빨리 숙소로 가서 쉬고 싶었습니다. 주앙도 저와 같은 숙소에 묵을 예정이라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새 등산화와 아직 친해지지 못한 발톱에 멍이 들고 스틱을 쥐던 손바닥이 아렸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둘러보았지만 주앙은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은 남들과 다른 속도로 걸어야 했고 그래서 퍽 오랫동안 혼자였습니다.

때때로 혼자 걷는 길은 여행이지만 혼자서만 걷는 길은 벌칙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외톨이로 걷던 저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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