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지나는 작은 골목의 한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매장이 있다. 짙은 필름으로 코팅되어 있어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는 큰 창에, 그 흔한 간판 하나 달려있지 않아, 대체 뭐 하는 곳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곳이다. 살며시 들여다봤더니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곳에 이런 카페가 있다니...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서는 꽤나 유명한 카페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커피 한 잔을 마시러 문을 열고 들어섰다.
블랙 앤 화이트의 깔끔한 인테리어와 감각적인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 카페를 알려면 그 카페의 화장실을 주목하라는 말이 있는데, 화장실 역시 깨끗하고 곳곳에 주인장의 손길이 묻어있었다. 카페의 겉모습만큼이나 커피의 메뉴, 바 안의 장비등도 트렌디했다. 트렌디, 하다는 것은 지금 커피 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정보를 모으고, 공부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곳의 커피는 맛없기가 힘들다. 이곳이 그랬다.
역시나 아메리카노, 산미 있는 커피를 주문했다. 연하게 드릴까요, 묻길래 진하게 달라고 했다.
- 커피가 맛있네요.
- 산미 있는 커피 괜찮으세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의 손님은 산미 있는 커피를 찾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부터 어디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 이 근처에 어떤 카페가 있으니 한 번 가보라는 추천, 앞으로 커피 시장이 어찌 될지에 대한 전망 등등 커피라는 소재 하나로 처음 만난 바리스타와 긴 대화를 나눴다. 마침 한가한 평일 오전이기도 했고, 손님이 많지 않았다. 내가 커피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래전 커피에 빠져서 많은 커피를 경험해 보고자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서울을 넘어 강릉, 속초, 대전, 대구, 창원, 부산까지 맛있다고 하는 카페는 다 다녀본 것 같다. 그때 가장 기억에 남는 커피는, 바리스타와 대화를 나누며 마신,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은 커피였다. 작은 카페, 동네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주인장의 커피 철학을 들을 수 있고, 그가 내린 커피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 커피는 관계다. 크게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 농부와 로스터의 관계, 바리스타와 손님의 관계, 그리고 너와 나의 관계.
그래봤자 커피 한 잔인데, 그 한 잔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닌가 싶은 사람도 있을 테지만, 오랜만에 낯선 사람과 커피 얘기를 나누는 낯익음에 무엇이 중요한지 되새기게 됐다.
그래서 티 한 잔을 더 주문했고, 티도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