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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필구 Nov 10. 2022

우리들의 일그러진 일상(7)

재진

 "재진아 밥먹어라."

"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때 이혼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도 어디서 어떻게 사시는 지 전혀 몰랐다. 가끔보는 어머니도 나에게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는 가끔씩 아버지 얘기를 해주시긴하셨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여전히 뭐하시고 사시는 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 또한 어디서 아프지 않고 사시는지 정도만 궁금했던 거 같다. 어머니께서는 그냥 '아버지가 너 보고싶어하시더라' 정도의 말씀을 하신다.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을 알게 된 후 친구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나 태도가 바뀔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의 친구들이 그럴꺼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어렸을 때 부터 습관처럼 하던 것이라 그게 편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일을 하셨고, 2주에 한번 내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셨다. 내려오실때마다 외할머니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오셨고, 나에게 용돈도 주셨다. 뭐하시는 지 여쭤보진 않았어도 외할머니가 한번씩 말씀하시는 걸로 봐선 친구가 운영하는 제법 큰 식당에서 일을 하시는거 같았다.

보통 우리 나이때 친구들은 학교가는 걸 너무나 싫어했지만,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좋았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친구들이 독특했다. 

 강호는 조용하면서 한번씩 상황에 맞지 않는 소리(자기딴에는 농담)를 해서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았다. 덩치도 크고 힘도 쎈 녀석이 그렇게 놀림당해도 웃으면서 얼굴이 빨개져 무안해 하는걸 보면 평생 사육사에게 보살핌 받은 호랑이가 같이 자란 강아지들의 장난에 속수무책 당하는거 같다는 느낌이 났다. 순호는 성격이 좋았다.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심성이 착했다. 하지만 착한 성격만큼이나 답답할 정도로 둔감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항상 시내에 나가면 지하상가 상인(우리가 어렸을 때는 지하상가의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심했다.)들에게 열이면 열 다 잡혔고, '도를 아십니까' 2인조의 주요 타겟이 되기도했다. 중협이는 텐션이 높고 이상한 것들을 자주 제시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일상의 무료함을 깨뜨릴 건수(?)를 한번씩 물고온다. 채팅을 해서 인근 여학교의 여학생들을 만난다든지 '재미있는 곳을 알아 놓았으니 학교 끝나고 가보자'라든지의 것들 말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그 녀석이 이상한 표정으로 들떠 있는 날이면 그날은 뭔가 일상을 일탈해야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겉으론 '미XX이냐'며 욕을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걸 즐겼다.

 마지막으로 필구는 처음만났을 때 까칠했다. 필구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대부분이랑 싸울 뻔했다.

그 처음이 난데, 필구와 그의 짝이 주번인 날이었다. 원래 체육시간 전에는 그날의 주번이 마지막으로 교실문을 잠그고 나와야 되는데, 필구와 같이 주번을 맡은 친구가 말도없이 필구를 혼자두고 먼저 운동장으로 나와 놀고있었다.

화가 난 필구가 체육시간 시작전에 운동장으로 나와서 짝에게 뭐라고 말을했다.

"너는 뭔데 먼저 나와있었냐? 넌 주번 아니냐?"

짝꿍이 웃으며 말을 했다.

"먼저 나올 수도 있지. 되게 뭐라하네.ㅋㅋ"

난 몰랐다. 필구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이미 분노가 가슴까지는 차올라와 있었을 거다.

그때 누군가가 옆에서 물었다.

"쟤들 왜 저래는데?"

내가 말했다

"'임마' 둘이 주번인데 얘가 쟤한테 말도 안하고 그냥 나와서, 쟤가 열받은 듯."

이번에는 필구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누군데 나한테 임마점마 거리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왜 나한테 화를 내? 웃긴놈이네."

그때 체육선생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필구는 선생님이 도착하기 전에 같은 주번이었던 친구의 가슴을 주먹으로 힘껏 때리고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체육시간 끝나고 보자."

난 순간 무서웠지만, 애써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체육시간내내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체육시간이 끝나자 필구도 한 시간동안 화가 좀 풀렸는지 바로 나한테 다가오지 않고 교실로 올라가버렸다.

'난 조금 있다가 들어갈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교실에 올라가자 역시 필구는 나를 찾았다.

"야 너 아까 한 말 다시해봐."

난 무서웠지만 다시 말했다.

"왜 내한테 그러냐고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냐 도대체"

"그거 말고 왜 임마점마 하냐고. 너 나 알아?"

"그래 그건 미안하다. 같은 반 친구라서 좀 편하게 생각한거 같네."

내가 사과를 하자 필구는 할 말을 잃었는지 나를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야 같은 반 친구들끼리 왜 그러냐?"

중협이었다. 중협이는 필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이 둘은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 이 둘 사이에도 사건은 있었다. 예전에 체육시간에 중협이가 장난으로 필구 바지를 내렸는데, 그날 하필 그날 평소에 입던 팬티가 없었던 필구가 '빨간팬티'를 입고왔던 날이었다. 그게 부끄러워 들키지 않으려고 친구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 후다닥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고 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보여주기싫었던 팬티를 중협이가 만천하에 공개해 버린 것이었다(그런데 중협이는 필구 팬티 색깔을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필구는 미친듯이 화를 내며 중협이에게 발차기를 날렸다고 했다. 중협이는 처음에 발차기가 장난인줄알고 '호잇' '호잇' 거리며 막았는데 발차기 강도가 장난이 아님을 알게되고, 갑자기 진지한 매치가 성사되었었다고 회고 했었다.

"이 새X 원래 성격 이래. 착한 니가 참아라 ㅋㅋ."

난 마음 속으로 '지는 날 언제봤다고 착하데'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못이기는척 일이 해결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순호는 중학교 때 친구들이 매일 교실로 찾아와 쉬는시간만 되면 그들과 함께 어디로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순호가 말하기를 교실에 혼자 있으면 친구없는 애처럼 보일까봐 친구 많은 척 하려고 그랬다고 얘기했다. 참 솔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필구는 순호와도 마찰이 있었지만, 워낙에 물흘러가듯 흐물거리는 성격이었던 순호에게는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강호는 처음에 말이 없었고, 항상 교실 끝에서 봄 햇살을 받으면서 잠만 자고 있었다. 흡사 교실 창가에 둔 식물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화장실 갈 때 외에는 거의 매일 자고 있었다. 강호는 거의 마지막에 우리와 합류했다. 중협이가 집에가는데 마침 가는 길이 비슷해서 중협이가 먼저 말걸었다고 했다. 생각만큼이나 재미없는 놈인데, 놀릴 맛이 난다고 우리에게 먼저 말해주고는, 그날부터 우린 같이 도시락을 먹게 되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거의 매일을 붙어다녔다. 필구와 순호가 먼저 학원을 다니자 나도 외할머니께 말씀드리고 같이 학원을 다녔다. 강호와 중협이는 학교수업도 지겨운데 학원까지 어떻게 가냐며 학원만큼은 같이 하길 거부했다. 우리 셋이 학원을 다니면서 하교 후에는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학원 가기전까지 중협이 집에 모여서 놀다가 가는 것은 거의 우리만의 룰처럼 되었다.

 강호는 집에 가면 아버지의 공장일을 도왔고, 중호도 아버지가 하시는 음료수 납품 일을 도운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1년의 끝의 시작 자리까지 와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진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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