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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필구 Nov 21. 2022

한 겨울밤의 추격

길진 않음

새벽이었다. 계절은 햇볕을 가장 많이 품고 있던 가로수마저 마지막 남은 이파리를 떠나보낸 지 한참이 지난 한겨울이었다. 우리는 공장단지가 있는 거리로 출동을 나가고 있었다. 앙상하게 남은 가로수들이 마지막 힘을 놓아버린 거리의 모습은 음산하기보단 고독한 느낌이었다.

공단 거리는 사람들이 생기를 계속 불어넣어 주고 있는 낮시간이 지나 그날의 마지막에 돌아가는 기계가 꺼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몇몇 공장들과 가로등 말고는 어둠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이 된다.  

사람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술 취한 사람들도 어둠이 주는 공포를 느끼는 듯 인근에 유흥업소가 군데군데 있었지만 공단 근처로는 잘 걸어 다니지 않는다.

 사건 사고는 대부분 인위적인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은 그만큼 출동이 잦지 않다. 가끔 나가는 것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기계의 결함이나 전가 기기의 불량으로 화재가 발생하고, 초기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아 대형화재로 번지는 출동이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가 나가고 있던 출동은 교통사고였다. 공단 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곳곳에 유흥업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으로 가거나 또는 돌아오기 위한 길로 공단 거리를 종종 이용했다. 하지만 주도로가 아니고 워낙에 어두운 곳이라 운전자들이 조심하는 탓인지 평소에 교통사고 출동이 잦은 곳은 아니었다. 우리는 출동을 하면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119 구급대원입니다. 사고가 어떻게 났나요?"

"제가 사고가 난 것을 직접 본 건 아닌데 지금 스포츠카 한 대가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트럭을 박은 상태로 있어요."

공단 주변에는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고 도로가 작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시간에는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형 화물차들이 줄줄이 주차되어있었다. 시간대로 보아 주차되어 있는 대형 화물차를 운행 중이던 차가 박은 듯 보였다.

"혹시 주변에 다친 사람이나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이나요?"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는데. 안 보이는 거 같아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승용차 내부 확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터벅터벅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화기 너머로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보기가 좀 힘들어요. 트럭 아래로 들어가야 되는데. 아.. 공간이 좀 있네요. 잠시만요. 한 번 볼게요. 잘 보이진 않는데 안 보이는 거 같아요"

 사고의 충격으로 사람이 튕겨져 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저희 곧 도착하는데 주변에 튕겨져 나간 사람이 있는지 저희가 도착할 때까지만 확인해줄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곧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고 현장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높이가 낮은 스포츠카는 아기 코끼리가 엄마 코끼리의 배 아래에서 걷고 있는 모습처럼 대형트럭 아래에 폭 안겨있었다. 스포츠카 운전자의 졸음운전이었든지, 음주운전이었든지, 또는 길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트럭 앞에서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추돌했음이 분명했다.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차의 상태를 보았을 때 속도가 꽤 있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자동차가 파손된 정도를 보자면 차 내부 또는 최소한 근처에 있어야 할 스포츠카 운전자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인근에 있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신고받은 경찰도 도착해서 사고 조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신고자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혹시 이쪽으로 걸어오시다가 이 주변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거나, 아니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봤습니까?"

 음주운전자가 사고를 냈고,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로 음주운전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현장을 벗어나려고 무리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주운전자를 잡아서 벌주는 것이 우리의 일은 아니었지만 사고를 당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 못한 상태로 걷다가 도중에 쓰러져서 큰일이 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더니 어떻게 해서든 찾아야 했다.

"아뇨 보지 못했습니다."

신고자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자동차의 보닛이 아직 따뜻했기 때문에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구급차를 타고 주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 시간 때의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한 바퀴 다 돌고 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로에서 벗어난 공원이나 주변에 불법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쓰러져 있으면 못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이번에는 같이 출동 나갔던 대원과 흩어져서 찾아보기로 했다.

랜턴을 들고 현장 근처에서 걸어갈만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다치지 않아도 술을 먹은 상태로 길에 누워있다가는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계절이었다. 어딘가 크게 다친 채로 길에 쓰러져 몸이 점점 식어가는 운전자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주변을 계속해서 뛰어다녔다. 혹시 놓친 곳이 있을까 봐 왔던 길도 다시 가보았고 자동차 사이사이도 다시 확인했다. 체력이 바닥나 잠깐 쉬려고 제자리에서 가쁜 숨을 몰아내고 있으면 입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잘 못 봤을까 봐 입을 잠깐 다물고 다시 확인해보았다. 조금씩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꽤 멀리 있던 그 사람을 놓칠세라 다시 크게 심호흡하고 조금 비축한 체력을 다 쏟아부으면서 그 사람에게 뛰어갔다. 외국인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면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물어보았다.

"혹시 이 근처에서 쓰러져있는 사람이나 이상하게 걷는 사람 봤어요?"

"......"

"한국말할 줄 아세요?"

"한국말.. no korea.  no no."

'한국말할 줄 아세요'는 평소 많이 들어봤던 질문이었는지 그 질문에는 그래도 대답을 해주었다. 안타깝게도 할 줄 모르다는 대답이었지만 말이다.

"can you speak English?"

난 다시 물어보았다.

"no English. no.no"

그는 이번에는 더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발견한 사람에게 아무런 질문도 해보지 못하고 보낼 수는 없었다.

"사람! 사람!"

난 사람을 외치면서 이상하게 걷는 동작을 취하고 또는 엎드려있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물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를 점점 더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난 포기한 듯 물었다. 사람 봤어요? 이 근처에서?

"사람? 오. 오. 빨간"

이라고 말하며 그는 본인의 윗도리를 문질렀다.

"네! 사람! 봤어요?"

사람이면 빨간 옷이든 뭐든 아무나 괜찮았다. 누구에게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건물 뒤쪽의 유흥업소들이 모여있는 길로 빠지는 골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난 그가 가리킨 골목으로 다시 뛰었다. 저 멀리서 빨간 니트를 입은 남자가 한 명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 사람에게 다가가 헉헉대며 말을 걸었다.

"저기 선생님."

"네?"

"아 혹시 주변에 쓰러진 사람이나 이상하게 걷는 분이나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분 못 보셨나요?"

난 질문을 하면서도 이 날씨에 잠바 하나 걸쳐지지 않고 니트만 입고 다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몸을 확인했다. 옷 주변이 찢어져있진 않은지, 얼굴에 상처가 나있진 않은 지 등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놓고 그 사람의 몸에 랜턴을 환하게 비추면 실례일 거란 생각에 눈으로만 빠르게 확인했다.

"음.. 못 봤는데요.. 아 잠시만 전화 좀 받을게요."

전화가 왔는지 그는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

"네 여보세요?"

그는 전화를 받으며 다시 골목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걷기 시작한 그가 등을 보이자 나는 랜턴을 켰다. 그리고 걷고 있는 그를 한 번 비추어 보았다.

갈색 바지에 어색한 얼룩이 두세 개가 묻어있었다. 난 혹시 피가 묻은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가까이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저기요 선생님 잠깐만요."

난 그를 불러 세우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는 뒤를 돌아 나를 흘끔 보더니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순간 멍해졌지만 그가 스포츠카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신이 들었다. 그를 쫓아갔다. 그는 한 블록도 채 도망가지 못하고 나에게 잡혔다.

나는 다시 헉헉 대며 그에게 물었다

"왜 도망갔어요?"

나는 질문을 하면서도 혹시 모를 폭력에 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가 혹시라도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난 그에게 질문하면서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설명하고 경찰에게도 알리라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근데 소방관이 왜 잡아요? 경찰도 아니면서."

"네. 빨간 스포츠카 선생님 꺼 맞죠? 사고 난 거?"

그는 대답이 없었다.

"사고 난 빨간 스포츠카 선생님 꺼 맞죠?"

"왜 묻는 건데요?"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의 어색한 질문으로 나는 그가 사고차량의 운전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우선 다치신대 없는지 확인 좀 할게요. 지금 불편하신데 있어요? 어지럽다거나 토할 거 같은 느낌 있어요?

아니면 팔이나 다리, 배 어디든 괜찮으니 불편한데 말씀하세요."

"없는데요?"

"그럼 밝은 데서 좀 확인할게요. 저기 불빛이는 곳으로 같이 가시죠."

그는 갑자기 웃음기를 없애고 나에게 물었다.

"아니.. 왜 소방관이 X랄이냐고."

"그건 조금 있다가 말씀하시고요. 우선 선생님 상태부터 좀 확인할게요."

"아... 이 새 X. 사람 말 무시하냐? 죽고 싶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선생님 어디 다친데 없는지 확인하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사고가 크게 났으니까."

말이 끝나자 그는 팔을 크게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난 끝까지의 그의 팔을 놓지 않았고 그의 눈을 계속해서 같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몸 크게 움직이시다가 다치신대 더 다칠 수 있으니까 가만히 계세요."

"이 씨 XX이!!!"

그때 근처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그는 얌전해졌다. 경찰들이 도착하자 그는 다시 웃음기를 그의 얼굴에 눌러 담기 시작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저 어떻게 되는 거죠?"

그의 이중적인 행동과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난 할 일은 해야 했다.

"경찰분들 잠깐만 이 분 잡고 계시면 저희가 상태 확인 좀 할게요. 계속 협조가 안돼서요."

"네 그러시죠."

그는 생각보다 멀쩡했고 엉덩이에 묻은 피는 차에서 무리하게 내리다가 긁히면서 난 상처에서 흐른 거 같았다.

물론 술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해드릴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어쨌든 사고가 커서 병원에서 검사는 받아보셔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저희 차 타고 병원 가시겠어요?"

그는 대답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나만 아니었음 음주운전 걸릴 일이 없었을 테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래서 나는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네 그럼 조사 잘 받으세요."


한 겨울밤의 추격은 그렇게 끝났다.

그는 지금도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

그때 그 구급대원 놈만 아니었음 걸리지 않았을 거라고.

그런 종류의 욕은 얼마든지 맛있게 먹어줄 수 있다.

난 나의 일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큰 사고에도 사람이 죽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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