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_ 기도는 알라에게, 클레임은 상무에게
오후 2시 10분.
자카르타 수디르만(Sudirman) 대로.
우리가 탄 검은색 알파드(Alphard) 밴은 40분째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창밖은 거대한 주차장이었고, 오토바이 수천 대가 금속 덩어리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다.
"K. 지금 차 머리(Head) 방향이 어디죠?"
뒷좌석의 제니퍼가 나침반 앱을 켠 아이폰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는 에르메스 손수건으로 감싼 소독 티슈가 들려 있었다.
"북서쪽입니다, 상무님."
나는 룸미러로 그녀를 훔쳐보며 답했다.
"아... 젠장(Shit)."
그녀가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
"북서쪽은 '사문(死門)'이야. 기가 막히는 방향이라고. 어쩐지 아까부터 구글 드라이브 로딩 속도가 0.5초 느리더라니. 기사한테 말해요. 차 15도만 틀어서 서쪽으로 머리 돌리라고."
"상무님, 여기 8차선 도로 한복판입니다. 차를 돌리면 뒤차한테 들이 받힙니다."
"그럼 내 미팅은요? 부정 타서 계약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이건 미신이 아니라 '지자기(Geomagnetism) 데이터 기반의 환경 심리학'이라고요!"
그녀는 미신을 최첨단 과학 용어로 포장하는 데 있어 가히 스티브 잡스급이다. 그때, 옆자리의 박 대리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녀는 귀에 에어팟을 꽂은 채, 마치 셀카를 찍는 척하며 카메라 렌즈를 교묘하게 제니퍼 쪽으로 향했다.
'팀장님, 이거 보세요.'
박 대리가 왓츠앱으로 캡처된 사진을 보냈다. 화면 속 제니퍼의 얼굴 위로 붉은색 사각형이 잡혀 있었고, 142 bpm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Target: Jennifer / Heart Rate: 142 bpm / Stress Level: Critical]
'제가 요즘 쓰는 <비접촉 멘탈 케어 앱(rPPG)>인데요. 상무님 지금 심박수가 거의 140을 찍었어요. 테크노 비트랑 일치하는데요? 인간 메트로놈이 따로 없네'
박 대리의 맑은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지금 이 지옥을 데이터로 즐기고 있다.
그때였다.
운전석의 현지 기사 '아구스(Agus)'가 갓길로 차를 대더니, 갑자기 시동을 껐다. 부르릉-. 엔진이 꺼지자 에어컨 바람도 멈췄다. 순식간에 차 안 온도가 1도 상승했다. 제니퍼의 심박수도 145로 튀었을 것이다.
"What? Hey! Why stop?"
제니퍼가 소리쳤다. 아구스는 주섬주섬 운전석 옆에서 낡은 양탄자를 꺼냈다.
"Madam, Sorry. Prayer time (기도 시간입니다)."
그는 차 문을 열고 나갔다. 도로변 중앙분리대 잔디밭에 양탄자를 깔고, 메카 방향(서쪽)을 향해 엎드렸다. 제니퍼의 눈이 만화처럼 튀어나왔다. 그녀는 창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야! 미쳤어? 내 미팅이 30분 남았는데 기도를 해? 신이 밥 먹여줘? 당장 안 들어와?!"
"상무님, 윈도 락(Lock) 걸었습니다. 창문 내리지 마세요."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물론 마음은 그야말로 안절부절.
"기도 방해하면 우리 여기서 돌 맞습니다. 진짜로요. 알라신은 상무님 결재 라인보다 위에 있어요."
"K! 당신 지금 누구 편이야? 내가 기도하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 타이밍(Timing)이 안 맞다는 거지! 신한테도 TPO가 있을 거 아냐!"
그녀는 분노와 더위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손 소독제를 목덜미에 바르며 열을 식히려 애썼다.
"하... 내가 미쳐. 내 완벽한 스케줄이... 저깟 양탄자 하나 때문에..."
박 대리가 중얼거렸다.
"상무님, 아까 서쪽으로 차 머리 돌리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기사님이 지금 서쪽(메카) 향해 절하고 계시니까, 대리 만족 되시는 거 아닐까요? 방향은 맞았네요."
제니퍼가 박 대리를 째려봤다. 박 대리의 앱 화면 속 제니퍼의 스트레스 지수가 'Explosion(폭발)' 단계를 가리켰다.
쥐구멍(Jalan Tikus)을 찾아서 10분 후. 기도를 마친 아구스가 개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제니퍼는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지만, 아구스는 해맑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Madam, God listen to me. Way open! (신이 들으셨어요. 길이 열립니다!)"
그가 갑자기 핸들을 급격하게 꺾었다. 끼익! 육중한 밴이 대로를 벗어나, 오토바이만 다닐 법한 좁은 골목길로 돌진했다.
"악! 뭐야! 납치야?"
제니퍼가 비명을 질렀다.
"구글 맵에 길 없다고 뜨잖아! Red Zone이라고!"
"상무님, 꽉 잡으세요. 이게 그 유명한 '잘란 티쿠스(Jalan Tikus)'입니다."
내가 손잡이를 잡으며 설명했다.
"쥐구멍 길이요. 데이터에는 안 잡히지만, 현지인들만 아는 샛길입니다."
우리는 판자촌 담벼락을 스치듯 질주했다. 닭들이 푸드덕거리고, 빨래를 널던 아줌마가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차가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제니퍼의 몸이 붕 떴다 가라앉았다.
쿵!
그녀의 완벽하게 세팅된 머리가 천장에 부딪혔다.
"K... 이거 뭐냐고... 내 척추... 산재 처리할 거야..."
"상무님, 이게 바로 인도네시아 시장입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썰을 풀었다. 현지 가이드이자 전략가로서.
"대로(공식 규제)는 꽉 막혀 있어요. 식약청 허가, 할랄 인증... 정공법으로 가면 우린 1년 내내 저 도로 위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쿵!
다시 한번 방지턱. 제니퍼의 비명.
"하지만 현지 파트너들은 이런 쥐구멍을 알아요. 공식 루트 말고, 그들만의 뒷문, 급행료라는 샛길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바로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제니퍼는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알았으니까... 제발 천천히 좀... 내 샤넬 재킷 구겨진다고..."
끼익-.
차가 멈췄다. 창밖으로 파트너사의 웅장한 빌딩이 보였다. 미팅 시간 2분 전. 기적적인 도착이었다.
아구스가 뒤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Jalan Tikus, Good?"
제니퍼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의 데이터와 나침반, 그리고 풍수지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승리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꺼냈다. 완벽했던 올림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마스카라는 땀에 살짝 번져 있었다.
"도착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상무님."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소독 티슈로 입술을 닦아내고 다시 립스틱을 발랐다. 붉은색. 아주 진한 핏빛 빨강. 그녀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K. 방금 그 길... 다음에 올 때 GPS 좌표 찍어서 데이터화해요. 'Risk Hedging Route'라고 보고서에 넣어."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Why?"
"내일이면 그 길은 막힐 수도 있거든요. 쥐구멍은 매일 바뀝니다. 그게 이 나라의 리듬이에요. 악보 없는 '프리재즈(Free Jazz)'죠."
제니퍼가 나를 노려보더니, 피식 웃었다. 번진 마스카라 때문에 웃음이 더욱 기괴하고 강렬해 보였다.
"프리재즈? 하... 웃기네. 그럼 오늘은 내가 즉흥 연주 좀 해볼까."
그녀가 차 문을 열었다. 뜨거운 습기가 훅 치고 들어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각또각 걸어 나갔다. 헝클어진 머리를 훈장처럼 휘날리며.
"갑시다, K. 내가 이 구역의 미친년이라는 걸 보여주지."
박 대리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팀장님, 방금 상무님 심박수 안정이 됐는데요? 근데 스트레스 지수는 'Combat Mode(전투 모드)'로 바뀌었어요."
"그래. 오늘 미팅은 성공이네. 독기가 바짝 올랐어."
우리는 헝클어진 마녀의 뒤를 따랐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쥐구멍을 찾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묘한 뻔뻔함을 장착하고서.
여러분은 지금 '예측 가능하지만 멈춰있는 길' 위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예측 불가능하지만 흐르는 길'로 핸들을 꺾을 수 있습니까? 성과를 위해서라면, 당신은 당신의 '매뉴얼'을 어디까지 배신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토록 집착하는 데이터와 루틴은, 정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입니까, 아니면 단지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현대판 '기우제'입니까?
"헝클어진 머리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과 "고고한 자태로 우아하게 실패하는 것". 당신의 비즈니스 미학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