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_ 효율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리고 뗏목을 버리는 법
쿠알라룸푸르(KL)의 공기는 언제나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덮는 듯하다. 가을의 밤바람조차 이 도시 특유의 끈적함을 걷어내지 못했다. 등줄기엔 이미 땀이 흐르고 있었고, 내 마음에도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예약해 둔 최고급 할랄(Halal) 레스토랑 뒷골목, 에어컨 실외기가 웅웅 거리는 구석에 서 있었다. 나와 현지 파트너 잭키(Jackie), 그리고 조 상무.
“K, 꼭 여기서 이래야 해요? 냄새나는데.”
조 상무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끝을 부채질했다. 그녀의 킬힐은 뒷골목의 오수(汚水)를 피해 까치발을 하고 있었다.
“상무님, 잭키가 술을 좋아하는데 식당이 할랄이라서요. 식전주(Apéritif) 딱 한 잔만 하고 들어가시죠.”
나는 편의점 봉투에서 타이거 맥주 캔을 꺼냈다. 겉면에 맺힌 물방울이 내 손을 적셨다. 사실 식전주는 핑계였다. 우리에겐 맨 정신으로 마주하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내기 위한 ‘마취제’가 필요했다. 비즈니스의 냉혹한 진실은 늘 밝은 회의실보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더 명확해지는 법이니까.
“Jackie, cheers.”
내가 맥주를 건네자 잭키가 쓴웃음을 지으며 받아 들었다. 조 상무는 “No thanks”라며 팔짱을 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품위(Dignity)’를 해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잭키가 캔을 땄다.
‘치익-’ 하는 소리가 실외기 소음에 묻혔다.
4년 전, 우리 브랜드가 아무도 모르는 듣보잡일 때, 자신의 트럭에 물건을 싣고 말레이시아 전역을 돌았던 남자. 그가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Jackie.”
나는 차가운 맥주를 목으로 넘기며, 최대한 건조하게 준비된 문장을 뱉었다.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본사 방침이 결정됐어요. 내년부터는 법인을 설립해서 직접 들어옵니다.”
잭키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래서… 계약 연장은 어렵게 됐습니다. 미안해요.”
문장은 짧았고, 침묵은 길었다. 잭키는 예상했다는 듯 남은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얇은 셔츠 위로 드러난 그의 등판은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 K, Jennifer… 축하해요. 당신네 회사가 이제 덩치가 커졌다는 증거니까.”
그는 빈 캔을 손으로 우지끈 구기며 말을 이었다. 알루미늄 캔이 비명처럼 찌그러졌다.
“그런데요, 상무님, 하나만 물어봅시다.”
잭키의 눈이 조 상무를 향했다. 항상 사람 좋은 웃음만 짓던 그의 눈에 처음으로 날카로운 이채가 돌았다.
“현지 법인(Subsidiary)이 들어오면… 그 똑똑한 주재원들이 왓슨스(Watsons) 매대 구석의 먼지까지 체크해 줄까요? 라마단 기간에 프로모션 매대 위치 하나 바꾸려고 매장 매니저랑 30분씩 멱살 잡고 싸워줄까요?”
조 상무는 흔들림 없이 그를 응시했다.
“Jackie, 감정적인 부분은 이해해요. 하지만 이건 ‘Efficiency(효율성)’의 문제예요. 시장 규모가 커지면 Direct Operation(직영)이 맞는 방향이죠. 그게 Global Standard니까.”
“Standard…”
잭키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엔 분노보다 체념 섞인 연민이 묻어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거대한 시스템이 들어오는 순간, 자신과 같은 ‘야전 사령관’의 집요한 디테일은 엑셀 위에서 ‘비효율’로 치부될 것임을.
경영학 교과서는 이것을 ‘내부화 이론(Internalization Theory)’이라 부른다. 대리인(Agent)에게 주는 수수료보다 직접 운영하는 비용이 싸지는 시점(Inflection Point)이 오면, 기업은 가차 없이 파트너를 잘라낸다. 엑셀 위에서는 완벽한 계산이다. 조 상무의 논리는 틀리지 않다.
하지만 엑셀은 ‘로작(Rojak)’을 모른다. 말레이, 중국, 인도계 문화가 과일 샐러드처럼 뒤섞인 이 나라의 미묘한 맛을. 중국계 유통상의 셈법과 무슬림 직원의 기도를 위한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조율해 온 잭키의 ‘감각’은, 재무제표의 ‘판관비’ 항목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는 강을 건너기 위해 뗏목을 탔다. 그리고 강을 건넜으니, 이제 그 뗏목이 짐이 된다며 버리려 한다. 병법으로는 지혜지만, 그 뗏목에 이름이 있고 체온이 있다면 그것은 ‘배신’이 된다.
“Okay. I understand. It’s business.”
잭키가 던진 찌그러진 맥주 캔이 쓰레기통에 ‘깡’ 하고 부딪혔다. 그 소리가 마치 우리 관계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Gong)처럼 골목을 울렸다.
식당 안은 시원하고 조용했다. 그리고 건조했다. 술이 없는 식사는 고문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양갈비만 씹었다. 고기가 고무 씹는 맛이었다. 조 상무만이 우아하게 칼질을 하며, 향후 법인 설립 일정(Timeline)에 대해 이야기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잭키가 조 상무에게 깍듯이 악수를 청했다.
“Good luck, Jennifer.”
잭키의 손은 거칠고 두터웠다. 수천 개의 박스를 나르고, 수백 명의 상인과 악수하며 만들어진 ‘노동의 손’이었다. 반면, 그 손을 맞잡은 조 상무의 손은 하얗고 매끄러웠다. 오직 키보드와 몽블랑 만년필만을 쥐어본 ‘결정의 손’이었다.
그 온도 차이가 내 가슴을 찔렀다. 현장을 뒹군 자는 토사구팽 당하고, 책상 위에서 결정한 자는 승진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서글픈 생태계다.
잭키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씁쓸하게 웃었다.
“ K, 나중에 한국 가면 소주나 한잔 사. 이제 법인 만들게 되면 바빠서 못 만나주려나?”
“잭키… 무슨 소리예요. 오시면 제가 제일 비싼 걸로 모실게요.”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호텔로 돌아가는 그랩(Grab) 뒷좌석. 조 상무는 이미 태블릿을 꺼내 본사에 메일을 쓰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파트너 계약 종료 통보 완료. 법인 설립 준비 착수.]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저 멀리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금속성 빛이었다.
이제 우리는 잭키라는 나침반 없이, ‘효율’이라는 이름의 지도를 들고 이 복잡한 정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오늘 우리가 아낀 대행 수수료는, 내일 우리가 치러야 할 수업료보다 과연 클까?
“K, 뭐해요? 내일 싱가포르 미팅 자료 확인 안 해요?”
조 상무의 건조한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네, 봅니다.”
나는 아이패드를 켰다. 화면 속 숫자들이 춤을 춘다. 비즈니스를 하며 가장 힘든 순간은, 강력한 적과 싸울 때가 아니다. 어제의 아군에게 “이제 당신은 필요 없다”라고 말하며, 미지근한 맥주를 삼켜야 하는 바로 오늘 같은 밤이다.
오늘따라 쿠알라룸푸르의 밤공기가 유난히 쓰다.
당신의 성과는 온전히 당신의 것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뗏목’ 덕분인가요?
효율(Efficiency)을 위해 어디까지 비정해질 수 있나요?
떠나는 파트너의 뒷모습에 당신은 떳떳할 수 있나요, 아름다운 헤어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