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무질서(Chaos) 속의 삼각 편대

ep.12_ 공자님, 유튜버, 그리고 갠지스강의 소

by 김멀똑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5시간 30분.

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후각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향신료, 매연, 땀, 그리고 소똥 냄새가 뒤섞인 기묘한 칵테일. 싱가포르의 라벤더 향은 전생의 기억처럼 사라졌다.


이번 출장의 라인업은 최악이자 최강이다. 나(K), 본사에서 급파된 유교 파리지엥 피에르(Pierre), 그리고 싱가포르에서부터 눈에 광기가 서린 박 대리(Sophia).


피에르는 디올 옴므 슈트를 입고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적힌 부채를 부치고 있었고, 박 대리는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마스크를 두 겹으로 겹쳐 쓰며 거리 측정기를 꺼내 들었다.


“팀장님, 현재 미세먼지 농도, 서울의 8.5배입니다. 시야 거리 50m 확보 불가. 제 폐가 실시간으로 필터 역할을 하고 있네요.”


박 대리가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옆에서 피에르가 혀를 찼다.


“박 대리, 불평이 많군요. 이곳의 기(氣)가 다소 혼탁하나, 이는 ‘인간의 삶’ 그 자체입니다. 무균실 같던 싱가포르보다는 훨씬 정감이 가지 않습니까?”

“정감이요? 피에르 씨, 저기 소가 똥 싸는 거 안 보여요? 위생 점수 마이너스 200점이에요.”





우리를 픽업하기로 한 파트너사 매니저 ‘라즈(Raj)’는 40분째 나타나지 않았다.


“팀장님, 이건 ‘무례(Impolite)’의 극치입니다.”


피에르가 손목시계를 보며 엄숙하게 말했다.


“오시(午時)가 지났습니다. <논어>에 이르기를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으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손님을 길바닥에 세워두다니, 동방예의지국… 아니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피에르, 진정해. 여긴 인도야. IST(Indian Standard Time)라고, 시간관념이 좀 달라.”


내가 달래는 사이, 박 대리는 이미 카메라를 켜고 브이로그를 찍고 있었다.


“여러분, 보이시나요? 미팅 시간 45분 경과. 파트너는 노쇼(No-show). 제 옆에는 유교 사상에 심취한 프랑스인과 멘탈 나간 팀장님이 있습니다. 이거 실화냐? 조회수 떡상 각입니다.”


그때, 찌그러진 스즈키 경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멈춰 섰다.

라즈가 창문을 내리고 해맑게 웃었다.


“Hello my friends! 쏘리, 쏘리. 소(Cow)가 길을 막아서 늦었어요. 소는 신(God)이니까요!”


박 대리가 즉시 거리 측정기를 라즈의 차에 댔다.


“팀장님, 탑승 불가입니다. 뒷좌석 레그룸(Leg room) 15cm. 저기에 우리 셋이 타면 무릎 연골 나갑니다. 산재 처리되나요?”


하지만 피에르는 이미 라즈에게 다가가, 뒷짐을 지고 훈계를 시작했다.


“Mr. Raj. 소가 신인 것은 존중합니다. 허나 약속은 천륜입니다. 사과하십시오(Apologize).”


라즈가 금발 외국인의 유창한 한국어 훈계에 압도되어 합장했다. 박 대리는 그 기괴한 광경을 놓치지 않고 줌인(Zoom-in) 했다.





우리는 구겨지듯 경차 뒷좌석에 탔다.

나는 가운데 꼈고, 왼쪽엔 덩치 큰 피에르, 오른쪽엔 박 대리가 앉았다.


“악! 피에르 씨, 어깨 좀 치워요. 제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 침범했다고요!”

“허허, 좁은 수레 안에서 옷깃을 스치는 것도 인연이라 했습니다, 박대리님. 좀 참으십시오.”


교통 체증은 지옥이었다. 차선은 무의미했고, 오토릭샤와 버스가 엉켜 거대한 똬리를 틀고 있었다.


“Oh my god…”


내가 탄식하자, 피에르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락앤락 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차 안에 시큼하고 강렬한 냄새가 폭발했다.


“으악! 이게 무슨 냄새예요? 생화학 테러예요?”


박 대리가 코를 틀어막았다.

피에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맨손으로 총각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머니(하숙집 주인)께서 싸주신 ‘총각김치’입니다. 인도 향신료로부터 위장을 보호하려면 코팅이 필요합니다. 드시겠습니까?”

“미쳤어요? 지금 밀폐된 차 안에서 김치를? 환기 안 돼요? 미세먼지보다 김치 냄새가 더 독해!”


박 대리는 거의 울상이었지만, 피에르는 ‘아작’ 소리 나게 무를 씹으며 라즈에게도 하나를 권했다.

라즈는 김치를 먹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운전대를 잡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릭샤가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미친, 미친! 방금 거리 3cm였어요! 팀장님, 저 그냥 내릴래요!”


박 대리가 비명을 질렀다.

피에르는 평온하게 씹던 무를 넘기며 말했다.


“박 대리님, 자세히 보십시오. 저 혼돈 속에도 ‘도(Tao)’가 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피해 가는 ‘인(仁)’의 흐름이 보이지 않습니까?”

“개뿔! 그냥 사고 나기 싫어서 피하는 거잖아요!”





미팅 장소인 현지 유통사 사무실. 에어컨은 고장 났고, 선풍기만 덜덜거렸다.

상대방 임원 ‘미스터 싱(Singh)’은 다리를 꼬고 앉아 펜으로 책상을 딱딱거리며 우리를 맞이했다.


“Your price is too high.”


싱은 거만했다. 박 대리는 구석에서 노트북을 켜고 미친 듯이 타이핑을 했다.

회의록이 아니다.


(박 대리의 화면: 빌런 등장. 다리 꼬기 각도 45도. 볼펜 소음 분당 60회. 고막 테러 중. 꼰대력 측정 불가.)


내가 가격 방어에 실패하고 있을 때, 피에르가 조용히 일어났다.

그는 재킷 단추를 잠그고 정중하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미스터 싱. 협상 전에 한 말씀 올립니다.”


싱이 당황해서 멈칫했다.


“방금 펜으로 책상을 치는 행위는 듣는 이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비례(非禮)’입니다. 비즈니스는 이익을 나누기 전에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저희 팀장님은 당신을 존중하여(Respect)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은 저희를 ‘돈’으로만 보시는군요.”


피에르의 푸른 눈이 빛났다.

조선 선비의 영혼이 빙의된 프랑스인의 일갈.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 박 대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싱에게 돌렸다.


“Mr. Singh, 그리고 데이터도 거짓말 안 합니다. 여기 보시면, 당신네 경쟁사들이 우리 제품 못 받아서 안달 난 트래픽 데이터 보이시죠? 저희랑 계약 안 하시면, 경쟁사로 갑니다. 지금 피에르 씨가 예의 갖출 때 사인하시는 게 좋을걸요? 이분 화나면 김치로 따귀 때리는 수가 있어요.”


피에르의 ‘명분(예의)’과 박 대리의 ‘실리(데이터 협박)’가 동시에 들어오자, 싱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Hahaha! I like these guys! Old soul and Smart girl!”


싱은 피에르의 어깨를 두드리고, 박 대리의 노트북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프랑스 친구는 내 아들 예절 교육 좀 시켜주고, 저 아가씨는 우리 마케팅 팀이랑 미팅 좀 해. 가격? 오케이, 인정해 주지.”


협상은 성공이었다. 피에르가 가져온 총각김치는 싱에게 선물로 바쳐졌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박 대리는 녹초가 되어 창문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팀장님, 저 오늘 수명 3년은 줄어든 것 같아요. 퇴사 마렵다 진짜.”

“수고했어, 박 대리. 덕분에 살았다.”


피에르는 텅 빈 김치 통을 보며 아쉬워했다.


“팀장님, 저녁은 커리 어떠십니까? 칠리 파우더 팍팍 쳐서. 한국인은 매운맛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지독한 냄새, 무질서한 도로,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파트너들.

하지만 이 혼돈 속에서, 조선 선비와 MZ 유튜버라는 부조화스러운 조합이 묘하게 통했다.


싱가포르의 무균실보다 더럽고 시끄럽지만, 우리는 오늘 처음으로 ‘팀’처럼 웃었다.


“그래, 가자. 박 대리도 커리 콜?”

“아, 몰라요. 법카로 제일 비싼 거 사주세요. 그리고 제 채널 구독, 좋아요나 눌러요.”


델리의 밤,

세 사람의 그림자가 엉망진창으로 길게 늘어졌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무결점의 함정 vs. 혼돈의 에너지 싱가포르의 '무균실'은 완벽했지만 숨이 막혔고, 인도의 '시장통'은 비효율적이었지만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경영학은 늘 '변수의 통제(Control)'를 가르치지만, 정작 거대한 기회는 통제 불가능한 '혼돈(Chaos)' 속에서 태어나곤 합니다. 당신의 조직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혁신의 씨앗까지 소독해 버리는 '무균실'입니까, 아니면 냄새나고 시끄럽더라도 가능성이 꿈틀거리는 '시장통'입니까?


논리(Logic)와 태도(Attitude)의 무게중심 박 대리의 '데이터(Data)'는 상대의 머리를 끄덕이게 했고, 피에르의 '예의(Etiquette)'는 상대의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숫자가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 믿지만, 결정적인 순간(Moment of Truth)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 당신의 제안서에는 빈틈없는 논리만큼이나, 상대를 무장해제 시킬 '진심의 온도'가 담겨 있습니까?


불편한 동료라는 자산, 조선 선비 같은 피에르와 냉소적인 관찰자 박 대리. 리더 입장에서 이들은 관리하기 피곤한 '비용(Cost)'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가진 이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때로는 꽉 막힌 상황을 뚫는 가장 강력한 파열음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은 '나와 잘 맞아서 편안한 팀'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매일 부딪히더라도 '나 없는 곳을 찔러주는 불편한 팀'을 견뎌낼 준비가 되셨습니까?

이전 12화싱가포르 : 무균실의 계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