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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Feb 17. 2023

술친자

부하직원의 내부고발(?)

 이전에 이야기했던 사고뭉치 동기 놈 때문에 여전히 야근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도 잠자리에 든 시간이 이미 12시를 넘겼었는데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서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가는 지금이 어떻게 보면 힐링하는 시간인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 내가 믿음직해 보이는지 자꾸 일을 준다. 사고 뒷수습에 촉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던 상사들이 요즘 속 편하게 칼퇴를 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대체 뭘 믿고?) 하루하루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되물으며, 작은 실수 하나하나에 '아이고 또 저질렀네' 생각하며, 언젠가는 큰 사고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더 속이 터지는 것은 중간보스의 점심 음주이다. 


 술친자는 작년부터 상사로 모시게 된 사람으로 스스로 상남자임을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본인의 벗은 상체 등근육(?) 사진으로 설정해 두었다. 아주 보기가 싫지만 다양한 개성이 모이는 사회니까 그러려니 한다. 한동안은 눈이 마주치면 윙크를 했다. '처자식도 있는 분이 왜 저런다니'하고 쯧쯧 혀를 차고 말았다. 욱하는 성격에 오지랖이 넓어서 본인 일이 아닌데도 덩달아 분노하며 열변을 토한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뭐 다 좋다. 그런데 점심에 술을 마시는 것이 문제다.


 상사로서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부서 구성에 변동이 있어서 기존에 하던 업무를 다시 적절하게 나누고, 제대로 계획이 나왔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시기에 오래간만에 반가운 얼굴(기존에 같이 일하다가 다른 지부로 옮겨간 동료)을 만났다며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왔다. 신기하게 이 조직은 술에 관대하다. 약간 미친 것 같다. 근태가 이모양인데 사고가 안 터지기를 바란다고? 싶은 느낌이다.


  술친자와는 작년에도 술 때문에 불화가 있었다. 작년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면서 병원의 조언으로 금주를 시작했다. 장기간 금주하면서 내가 그동안 술 때문에 많은 것을 잃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의 영향으로 나도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었던 것 같다. 일의 고단함을 술로 풀면서 그 영향으로 감정이 극에서 극으로 요동치는 것을 생리전증후군으로 생각했었다. 술을 끊은 후 극적인 감정의 변화가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평온함을 되찾았다. 어느 날 술친자는 저녁 술자리를 권했다. 나는 임신을 위해 금주하고 있음을 알리고 거절했다. 술친자는 내가 난임병원에 열심히 다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짐승도 아니고 술을 안 마셔?'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나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술을 그렇게 마시는 당신이 짐승이 아닙니까?'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금주로 마음의 평온을 찾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 이후로 그 상사는 나에게 술친자가 되었다.


 어제 나는 굉장히 패닉상태였다. 문서로 상세하게 정해진 규칙 없이 (물론 문답은 해가며) 사무를 나누면서 6시간 이상 특근을 했지만 정작 한 일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해한 내용이 잘못된 것 같았다.(그 스트레스로 오늘 잠을 설치고 있는 것이고.) 일단 일은 진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지시사항을 오해한 것 같은데 술친자는 만취해서 혀가 꼬이다 못해 풀려있고. 술친자를 조퇴시키고 컨트롤타워가 나에게 넘어왔고, 후배들은 지시를 기다리고 있고, 지시는 하는데 아닌 것 같고. 마감은 오늘까지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오늘 출근하면 다시 정확하게 물어봐야지.


 나는 생각한다. 바람직한 회사의 구성원은 남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제발 네가 맡은 1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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