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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Apr 26. 2023

아름다운 그대에게

R.I.P

요즘 여가시간에 계속 고 문빈의 이름을 검색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잘 먹고 팬들을 걱정하던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 하루아침에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래서 징후를 찾기 위해 계속 동영상을 뒤지고 있다. 문득문득 보이는 굳은 얼굴이 그 징후였을까.  그러면서 나의 과거를 떠올려본다. 나도 죽음을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2016년 처음 입사한 후 2017년까지 6개월에 한 명씩 총 4명의 상사를 만났다. 그리고 그 상사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처음 만난 상사는 자리에 제대로 앉아있지를 않았다. 늘 어딘가에 가있었고 늦게 오거나 일찍 갔다. 저러고도 안잘리는 것이 신기했다. 어느 날은 보스가 나에게 상사가 어디에 갔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상사에게 불려 가서 혼이 났다.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거나 화장실에 간 것 같다거나 그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잠시가 아니면서.


두 번째 상사는 결정장애가 있었다. 심각하게. 아무래도 과거에 결정에 관련된 사고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모두들 추측만 하더라. 결재를 못하는 분이었다. 사람은 참 좋았다. 본인 입으로도 '나는 사람은 좋은데 말이야'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일을 못하는 상사는 상사가 아니다.


세 번째 상사는 미친놈이었다. 감정기복이 미친 듯이 날뛰어 나에게 한바탕 지랄을 하고는 사무실 밖으로 불러내서 자신의 불행한 가정사를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과 사는 구분해줬으면 했다. '나는 너의 마누라가 아니에요.'하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새 술을 먹고 아침에 출근해서는 술을 마셔서 일을 못하겠다고 퇴근한 적도 있었다. 이전에 사직서를 썼는데 보스가 안 받아줬다는 소문이 있었다. 왜 안 받았을까. 진작 회사에서 나갔어야 하는 사람인데. 그러고도 몇 년을 더 부하들을 괴롭히다가 퇴사했다고 들었다.


네 번째 상사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본인이 본인 입으로 약을 먹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전의 상사들에 비하면 자기 할 일도 잘하고 괜찮은 상사였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점에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구멍가게를 운영하신 적이 있었다. 우리는 구멍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았다. 엄마는 과자를 못 먹게 했다. 몸에 좋지 않으니까. 나는 과자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몰래 과자를 훔쳐서 밖에서 먹고 들어가곤 했다. 부모님은 물론 그 사실을 알고 계셨다. 중학교 때는 귀를 뚫고 싶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못 뚫게 하셨다. 나는 용돈을 모아 몰래 지하상가에 가서 투명피어스를 구매해 귀를 뚫고 단발로 가리고 다녔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해야 하는 고집 센 아이였다. 그런 내가 말도 안 되는 상사들을 만나서 2년간 정신적으로 혹사당한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분명 밝고 장난꾸러기인 내가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는 몸에서 반짝거리던 빛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자꾸 피곤했다. 회사에 출근해서 활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전부 잤다. 러면서도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도 생리전증후군이 심한 편이라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다시 기분이 돌아오곤 했는데 다운만 있고 업이 없었다.


2018년 지부를 옮기게 되었다.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스트레스에 기존의 우울증이 합쳐져서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기는 하는데 너무 하기가 싫었다. 그래도 마이너스 5천이 있으니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근데 너무 하기가 싫었다.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좌절했다. '아, 차라리 죽어버릴까? 죽으면 안 해도 되잖아'까지 생각이 갔다. 엉엉 울면서 일을 했다.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나 지금 이런 상태라고. 매우 놀란 엄마는 그날부터 나를 밀착케어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에 가기 전까지 내 옆에 붙어있었다. 회사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잘 오고 있냐고, 어디까지 왔냐고. 회사에서 돌아오면 나를 데리고 헬스장에 가서  GX 룸에 나를 집어넣었다. 나는 강제로 스피닝이며 줌바, 요가에 참여해야 했다. 헬스장에서 돌아오면 내가 잠이 들 때까지 옆에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죽고자 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회인 동호회에 가입해서 지금의 신랑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오죽했으면 꿈이 사이보그가 되어서 지구 종말의 날까지 살아남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엄마, 아빠가 없으면 나도 죽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질풍노도의 청소년이기도 했다. 그런 모순적인 마음으로 지금까지도 살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의 사망이 너무나 안타깝다. 누구나 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청년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잘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못하는 일이라고.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양이 정해져 있다. 그 에너지를 남을 위해 쓸 것이지 나를 위해 쓸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남을 위해 에너지를 전부 사용하면 나를 위해 쓸 에너지가 없어진다. 그것은 나를 갉아먹는 일이다. 적당히 좋은 면을 보이고 적당히 나쁜 면도 보이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 미움받을 용기가 여전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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