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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초이 Sep 12. 2024

사무실이 생겼다.

공간은 항상 있었지만, 다른 느낌의 공간이다.

대학원 시절 사무실 개인 공간에 대한 생각

교수님은 자신의 방이 있었다. 각자의 방에서 양쪽 벽엔 책이 가득하고, 창가를 등지고 앉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왔느냐고 앉으라 했다. 교수님의 방은 낡았다기보다는 고풍스럽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니 낡았지만 내 눈에 고풍스럽게 보였나 보다. 알 수 없는 읽을 수 없는 한자가 적힌 책, 다 떨어져 가는 책, 가죽 질감의 검은색에 은색, 금색으로 쓰인 석사, 박사 학위 논문들 청소할 때며 하나씩 꺼내서 스르륵 넘겨보며, 나도 빨리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해야지 멋지다. 그런 생각들...


사회에서의 사무실 개인 공간에 대한 생각

직원이 30명 남짓의 작은 회사, 내가 다닌 첫 회사다. 혼자 방을 쓰는 사람은 3명이었고, 2명은 이사, 1명은 대표였다. 나이가 모두 50대였으며, 직종이 영업이라 그런지 오전시간에만 있었고 오후에는 항상 불이 꺼져있었다. 가끔씩 들어가서 결재를 받을 때 책상 하나 들어간 작은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높았다. 나는 낮게 바닥에 붙어있는 느낌, 들어갈 때마다 위압감이 느껴졌다. 

직원이 300명 남짓의 중견기업 내가 다닌 두 번째 회사다. 사법고시를 봤다 하고, 네이버에 검색만 해도 나오는 분이 대표이사였다. 이 방은 체리우드로 꾸며져 있었으며 생각보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보다는 별로였다. 뭐 그랬다. 나중에 이분은 공유오피스에서 만났지만, 소탈하신 모습이 그때나 비슷했다. 

2000명의 직원이 있으며, 자회사가 14개인 기업 회장의 방, 이 분은 10층의 반을 혼자 썼다. 회랑과 같은 큰 곳 입구엔 비서가 계셨으며, 작은 문은 번호로 잠가져 있었고, 이곳을 넘어가려면 비서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위압감보다는 뭐랄까 지나치게 낭비한다는 사치스러움이 느껴졌다.


개인공간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

사회에서 특정 직급은 따로 방을 내어 준다. 그 위치까지 진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그런 방에서 업무를 보고 싶긴 했었다. 이런 공간이라는 것은 한 달 월세를 내고 그냥 써도 되겠지만, 그렇게 돈을 내서 사기는 싫었다. 누군가가 주어지거나, 내가 쟁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24년 6월 군포 오픈스페이스에 왔을 때, 괜히 5층, 6층을 걸어 올라가 봤다. 10평 20평 사무실이 있었고, 언젠가는 나도 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무실 지원사업의 공고를 보았을 때, 월세와 보증금 등이 부담된다 생각하였고 큰 매출도 없었어서 그렇게 까지 가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사무실이 생겼다.

사무실이 생겼다. 군포산업진흥원에서 사무실 공고가 올라왔고, 사업계획서를 써서 냈다. 19장을 정성스럽게 써서 냈고, 서류가 통과되었다. 발표자료는 5분 발표이나, 15장이었으며, 혹시 모를 질문에 대비하여 10장을 추가로 만들어서 제출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분야의 시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내가 진입을 어떻게 할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매출이 언제 발생하느냐 물어봐서 이미 매출은 미미하나 나오고 있으며, 12월에 본 발표내용으로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사무실 공고에서 점수별로 고르는 권한을 준다고 하였어서, 내심 1등을 하고 싶었다. 지난주에 결과가 나왔고, 사무실이 생겼다. 내가 제일 먼저 사무실 호수를 골랐다. 1등이니까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대표님을 공유오피스에서 만났다. 그분은 은퇴하였으며 소일거리로 법무법인에서 자문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가끔씩 업무를 봐야 하기 때문에 공유오피스에 온다고 이야기하였다. 그 공유오피스는 남향이었고, 3-4월 비치는 햇빛이 너무 뜨거웠다. 대표님과 커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경상도 말투로 그러셨다. "사무실은 북향이 좋은 거야, 옛날부터 선비들 서재는 북향을 썼어, 추버야 일이 대그든, 등따시면 일 안 해, 사람은 그래" 사무실을 고를 때 그 말이 생각났다. 휴대폰에 나침반을 설치하고 돌려보니 북쪽이 어딘지 보였다. 북쪽으로 제일 끝 사무실을 골랐다. 


사회에 대한 생각

세이노의 가르침에 사무실에 대한 내용이 있다. 세이노는 거기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자신의 책상은 버린 책상을 주워왔으며, 쓰다 보니 책상 밑에 부적이 붙어있던 것도 있더랬다. 처음 사업을 하게 되면 사무실에 대표이사실이라고 붙여놓고 폼나게 앉아있고 싶어서 이런저런 것을 인테리어라고 할 텐데 그것이 다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동의한다. 나 또한, 인테리어니 뭐니 할 생각은 없다. 당근에서 나눔이라고 써져 있는 책상을 주워오면 어떻게 가져가지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진흥원에서 남는 책상을 주겠단다. 참 감사한 일이다. 마호가니 원목과 체리우드로 꾸며진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 매출액이 더 오르는가? 나의 가치가 더 오를 것인가? 아니다. 그럼 누가, 호화롭게 꾸며놓고 일을 할까? 사기꾼이나 컨설턴트가 그렇게 하더라, 지인 중 하나가 컨설팅을 주 업으로 삼고 있는데, 내 생각에 업무에 대한 지식은 그가 손목에 찬 시계보다 얕다. 그가 주로 착용하는 시계는 5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 시계이다. 그럼에도 집은 월세에 산다. 내면의 허함이 5천만 원 이상인 것 같다.


공유오피스에 대한 생각

아버지가 우리 집에 놀러 와 1주일 정도 지낸 일이 있었다. 갑자기 택배를 보내야 했고, 술을 먹어 아버지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내심 공유오피스를 자랑하고 싶었다. 여기서 일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자랑스러웠으니까, 아버지는 공유오피스를 처음 봤고, 그 표정에서 충격받음을 느꼈다.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돈을 줄 테니 사무실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거절했다. 돈을 자꾸 받게 되면 일을 안 하게 될 것이고, 내가 벌어서 옮기고 싶다고 하였다. 그때 이후로 공유오피스가 싫어졌다. 빨리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명의 지인들이 사무실로 왔었다. 공유오피스에 있느냐며 다들 이야기를 하였다. 마치 내가 가난해서 적선이라도 받아야 할 기분이었다. 언짢았다. 

그러던 중, 선배하나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뜸 한다는 말이 매출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매출은 나오고 있다고 하니, 좋겠다며 비아냥대며 술을 사라고 하였다. 무슨 개 같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새끼는 이제 선배가 아니고 개새끼인 건 정확하게 알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차단해 버렸다. 오늘 그 개새끼가 연락이 왔다. 왜 카톡답도 없고 그러느냐고 무슨 일 있느냐 문자가 왔다. 아, 문자를 차단 안 했구나 문자도 차단했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아니 주변에 많다. 내가 안 좋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주변에서 한다는 말은 걱정하는척하며, 안부를 묻는 척하며 사업이 안되길 빈다. 나도 본인처럼 개 같은 인생을 살길 희망하는 것 같다. 그 개새끼랑은 같은 회사에 다녔다. 술 먹으면서 자꾸 연봉을 까라고 지랄병을 하길래, 통장으로 시원하게 까서 보여줬다. 보더니, 말이 없이 있다가 풀이 죽어서 집에 갔다. 직급은 나보다 높은데 연봉은 천만 원 넘게 차이가 났다. 그 사람은 회사에서 인정을 못 받고 있었다. 아니 받을 인정이 없었다. 일을 정말 병신같이 했다. 130장이 되는 문서가 있고, 이 문서의 5번째 장에 도장을 찍어 스캔 파일을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30장의 word파일을 PDF로 저장한 후, 5번째 장만 도장 찍어 바꿔치기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근데 이 사람은 130장을 한 장씩 장인정신을 발휘해 스캔하고 있었다. 정부과제 제출 시간이 6시까지였는데, 미친 새끼 기다리느라 애간장이 녹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새끼가 매출을 물어본다니 씨발.. 그리고 나는 그것에 답을 해야 한다니 뭐 이런 개 같은 상황이 있겠는가? 예전 같으면 문자로 응 그래 지난주엔 과제가 2,500짜리 지원사업이 됐고, 지지난주엔 500만 원 그리고 오늘은 사무실이 됐다고 약을 올렸을 텐데 그냥 차단했다. 말해봤자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며,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설득 아니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다. 개미새끼는 길바닥을 걸으며 바닥만 본다. 개미새끼한테 내가 십새끼라고 욕을 한들 못 알아듣겠지? 그런 새끼다.

아무튼 개새끼야 나는 잘 지내고 있으며, 너 같은 새끼들한테 더 잘남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 중이다.

이러한, 분노는 나에게 큰 힘이 된다. 늦은 밤에 일을 정말 하기 실을 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정말 쓸개를 씹어먹는 심정으로 일을 처리한다. 때로는, 고맙다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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